뒤바뀐 몸과 머리

영원한 인간 수수께끼

토마스 만

 


7

 

한편 밭고랑이란 뜻의 이름을 가진 시타는 혼자 남아 덮개 있는 마차 뒷좌석에 앉아있다. 기다리는 시간이 점점 더 길게만 느껴진다. 안절부절 못하는 그녀의 가슴 속 깊이 터무니없이 불길한 예감이 떠오른다. 그러나 그녀는 이런 괴이한 느낌을 애써 모른 체 해보려고 속으로 생각한다.

 

이건 정말 말도 안 돼. 더 이상 참을 수 없어. 남자들이란 다 같은가 봐. 누굴 누구보다 낫다고 할 수 없으니까. 아무도 믿지 못하겠으니. 한 남자는 또 한 남자와 나만 두고 떠나 어찌된 영문인지 모르게 하지. 그래 또 한 남자를 보내봤으나 해는 점점 하늘에 높이 떠서 뜨거운 햇볕을 내리쬐는데 아무런 소식 없으니 시간만 더욱 가고 갈 길이 멀어 나 정말 미치겠네. 두 남자 다 그 어떤 단 한 가지의 변명도 내게 할 수 없을 거야. 내가 생각해볼 수 있는 사태라면 다른 게 아니지.

 

슈리다만은 기도를 더 오래 하겠다고 고집부리고 난다는 그만하고 돌아가자고 사정하고. 말 안 듣는 슈리다만을 난다가 강제로라도 끌고 왔으면 좋을 텐데. 슈리다만의 의사를 늘 존경하는 난다가 그러지는 못하겠지. 그러려고 난다가 마음만 먹으면 그 힘센 팔로 슈리다만을 어린애 안듯 번쩍 들고 올 수 있을 텐데. 나 혼자서라도 길을 찾아 부모님께 갈 수만 있다면 그렇게 하고 싶지만 남편도 없이 혼자 친정을 찾아간다는 것도 못할 일이고 정말 속 답답해 죽겠네. 이렇게 무작정 기다리고만 있을 수도 없고 그렇다고 나 혼자서 길 떠나갈 수도 없으니 다른 도리가 없지. 내가 두 남자를 찾아나서는 수밖에. 도대체 뭣들 하고 있는지 내 눈으로 똑똑히 알아봐야겠어. 아마도 두 남자가 다투고 있을 거야. 더 있겠다니, 어서 가자니 말다툼하느라고, 이렇게 늦어지고 있는 모양이야. 내가 어서 나서서 두 남자 다 데리고 와야지.”

 

이렇게 속으로 중얼거리고 나서 시타는 마차에서 내려와 두 남자가 차례로 들어가 나오지 않는 굴속으로 들어간다. 그러자 곧바로 그녀는 참혹한 장면에 부닥친다. 그녀는 기절하듯 두 팔을 허공에 내던지며 눈앞이 아찔해 바닥에 쓰러진다. 그녀가 정신을 잃고 있다 해서 상황이 바뀌지는 않는다. 얼마 후 정신을 차린 그녀는 다시 기절하려다가 정신을 가다듬고 돌바닥에 곱송그리어 몸을 움츠린 채 열 손가락을 머리에 찔러 넣고 선혈이 낭자한 바닥에 피투성이로 서로 엉켜있는 두 남자의 시체를 바라본다. 두 남자 다 목이 잘려 몸과 머리가 따로 따로 떨어져 있는 시체를 말이다. 입술이 새파래진 그녀가 정신 나간 여자처럼 속삭이듯 혼자 중얼거린다.

 

, 신들이여, 성인들이여, 거룩한 은둔자 도사님들이여, 저는 어찌 해야 합니까? 두 남자가 동시에 다 이 지경이 되었으니 모든 게 끝나버렸어요. 내게 남자를 알게 해주고 내 몸속에 어린애를 갖게 해준 내 남편이자 주인인 슈리다만이 이렇게 몸과 머리가 두 동강나버렸고 내가 처녀 때 하늘 높이 날 그네 태워주고 슈리다만을 위해 그를 대신해서 내게 구애하고 청혼했던 난다 또한 이렇게 되어 버렸으니 어찌하면 좋겠어요? 특히 그렇게 탐스럽고 남성미 넘치는 난다의 팔과 다리를 한 번이라도 만져보고 그 힘과 아름다움을 느껴보고 싶었었는데 이제는 피와 죽음이 그와 내 부정한 욕망 사이에 장벽이 되고 말았어요. 그가 살아 움직일 때는 명예와 우정이란 것이 우리 서로 끌리는 두 사람 사이를 가로막아왔듯이…….

 

그런데 이제 다시 잘 보니 두 남자가 결투라도 한 것같이 서로의 목을 쳐 죽인 거야! 두 남자의 화가 불처럼 타올라 이 지경에 이른 것이 분명해. 그런데 칼은 한 자루밖에 안 보이고 그 칼이 난다의 손에 쥐어져 있지? 그렇다면 어떻게 둘이서 칼 한 자루 갖고 싸울 수 있었을까? 슈리다만이 그의 이성과 침착성을 잃고 먼저 칼을 집어 들어 난다의 목을 쳐버리자(아니야, 그게 아니야! 그 어떤 이유로 내가 상상만 해도 가슴 설레고 내 몸 속이 짜릿해지는 그렇지만 그렇게 상상하기조차 두렵고 죄스러운 이유 때문에 난다가 슈리다만의 목을 잘라버리자) , 아니야, 그것도 아니야. 그럴 수 없지. 더 이상 생각할 것도 없어. 생각해봐도 아무 소용없는데. 있는 것이라곤 이 신전 동굴 속 한 가운데 가득 찬 피비린내와 어둠뿐이야. 분명한 건 하나밖에 없어.

 

두 남자가 야만인처럼 행동했다는 것, 그리고 단 한 순간도 내 생각을 안 했다는 거야. 아니 내 생각을 안 했다기보다 나를 두고 나 때문에 두 남자가 목숨을 걸고 싸운 거야. 생각하기조차 무서워. 가엾은 남자들이지. 내 생각 했다 하더라도 자기들 자신의 입장에서 한 것이지. 나에 대해 내가 어찌 될 것인지는 전혀 고려하지 않은 거야. 미쳐 날뛰면서 내가 어떻게 해야 할 것인지 전혀 생각하지 않은 거야. 저렇게 머리가 떨어져나간 몸으로 돌바닥에 누워 내 생각 안하고 있는 지금처럼. 내가 뭘 어떻게 한다고?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아무 것도 없지. 난 이제 다 틀렸고 망했어. 제 남편을 잘 보살피지 않아 이렇게 비참하게 죽게 한 몹쓸 년 과부라고 사람들로부터 욕을 먹고 손가락질 받아가며 평생을 살아가야 한 운명인데.

어디 그뿐일까? 그보다 엄청나게 더 심한 사태가 벌어지겠지. 나 혼자서 친정이고 시집이고 간에 돌아가면. 칼은 하나뿐이고 그러니 두 남자가 서러 차례로 죽일 수 없는 일이야. 그렇다면 두 남자를 죽인 범인은 제3자일 수밖에 없고 그게 바로 나지. 사람들은 말할 거야. 내가 남편한테서 버림받아 앙심을 품고 분풀이로 남편뿐만 아니라 남편의 절친한 친구이자 의제義弟까지 죽였다고. 일련의 증거가 완전무결하지. 그게 사실이 아니지만 확증이 있는 이상 내게 아무리 죄가 없다 해도 난 살인범으로 벌 받을 수밖에 없어. 하긴 내게 죄가 없진 않지. 모든 것이 끝장난 게 아니라면 나 스스로를 속일 필요가 있을는지도 몰라.

 

하지만 모든 게 끝나버린 마당에 나 자신을 속여본들 무슨 소용 있겠어. 난 순결하지도 결백하지도 않아. 그렇지 않은 지 오래 되었어. 남편에게서 버림받은 여자라는 얘기도 근거가 있다면 있겠지. 아주 터무니없는 소리가 아니니까. 설혹 보통 사람들이 생각하는 그런 뜻에서는 아니라고 해도. 세상에 잘못된 정의나 응보란 것이 있을까? 그런 잘못됨이 일어나지 않도록 난 나 자신을 정당하게 다뤄야 해. 내 양심의 소리를 따를 뿐이야. 그밖엔 이 세상에 내가 할 일이 남아있지 않아. 내 작은 손으로 저 큰 칼을 휘두를 순 없어. 그러기에는 내 손이 너무 작고 겁에 떨고 있어.

 

그리고 내 부드럽고 매혹적인 몸매도 내 약점일 뿐이야. 그 사랑스럽다면 사랑스런 자태가 안됐지만 여기 목숨이 이미 끊어져 생명 없이 쓰러져 있는 시체들처럼 어서 내 몸도 굳어버려야 돼. 그리하여 다시는 더 이상 그 어느 누구의 어떤 욕정도 불러일으키지 못하도록, 또는 스스로의 타오르는 욕망의 불길 때문에 괴로워 고통 받는 일이 없어지도록. 그렇게 꼭 해야 돼. 그러자면 부득이 희생되는 제물이 늘어나겠지만. 그렇지 않으면 부모 없는 고아가 어찌 살라고?

 

참혹한 불행으로 일찌감치 끝나버리는 에미의 삶인데 그렇지 않아도 너를 임신할 때 괴롭고 고통스러워 내 얼굴이 창백했었고 널 잉태시키는 네 애비를 안 보려고 눈을 감았었으니 네가 태어난다 해도 얼굴이 창백한 장님 일테니 내가 이제 할 일은 너랑 같이 내가 죽어야 해. 이것이 이 두 남자가 내게 남겨놓고 간일이야. 어떻게 하는지 잘들 보시라지.”

 

그러고는 그녀는 몸을 일으켜 비틀거리며 신전 동굴을 미친 듯 빠져 달려 나간다. 산발을 한 채 밖에 나오자 신전 앞에 서있는 무화과나무에 자라는 덩굴줄기를 잡아 댕겨 올가미를 만들어 목에 씌우고 스스로의 목을 막 졸라맨다.

 

 

 


 

 


서문강 기자
작성 2018.11.18 11:30 수정 2018.11.18 11: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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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1-30 10:21:54 / 김종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