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규성 작가의 인명풀이] 한국인의 이름(1)

유리와 유라


 

 




한국에는 유리라는 이름을 가진 사람들이 꽤 많다. 하지만 그 유리라는 이름이 어떤 의미를 지녔는지 아는 사람은 별로 없다. 아니, 거의 없다. [유리]를 표기한 한자가 본래 지닌 뜻이 있으므로 그걸 그대로 해석하여 억지로 의미를 부여해 보기도 하지만, 그렇게 해 봐도 도대체 무슨 뜻을 지닌 이름인지 알 수 없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사실 유리는 순우리말로 된 이름이다. 한자 이름이 아니다. [유리]라는 우리말 이름에 한자를 갖다 붙여 적다 보니 한자이름처럼 보일 뿐이다. [이쁜이]라는 이름을 한자로 立分伊(입분이)’라 쓰는 것과 비슷하다고 생각하면 된다. ‘立分伊라고 썼지만 본래 한자이름이 아니기 때문에 한자를 아무리 해석해 봐도 이름이 지닌 의미를 파악하기는 힘들다.

 

[유리][율이]를 소리나는 대로 적은 것이다. 그리고 [율이][][-]가 붙은 형태이다. 한국인들은 사람의 이름 뒤에 뚜렷한 이유 없이 [-]를 붙여서 말하는 경향이 있다. 다음 예문에서 보듯 A처럼 말하지 않고 B처럼 말하는 경향이 있는 것이다.


A. 민준한테 물어보자.

B. 민준이한테 물어보자.

A. 서연을 좋아하니?

B. 서연이를 좋아하니?


영철, 영숙영철이, 영숙이라 일컫는다. 이들 이름에서 앞글자 을 빼면 [철이] [숙이]와 같은 형태가 된다. []이란 이름 역시 마찬가지다. []의 뒤에다 [-]를 덧붙여 [율이]라고도 부른다. 변천과정을 정리하면 [율이유리]로 되는 것이다. 다시 말해, “유리는 사실상 같은 이름이라 할 수 있으며, 동일한 어원에서 형태만 약간 다르게 변해 정착된 이름이라 할 수 있다.



앞에서 , 유리는 순우리말 이름이라 하였다. 그러면 그 뜻은 무엇인가? 모범적인 사람이란 뜻이다. 표준이 되고 기준이 되는 사람이란 뜻이다. 설명이 번거로워 다 얘기할 수 없지만, 아득한 저 원시시대부터 인류가 사용해온 말 중에 [/nor]이란 것이 있었으니 너른 곳을 가리키는 말이었다. []은 바로 거기서 비롯된 이름이다. 사람들은 [][]이라 발음하기도 했다. [/]이 넘나들고, [/]도 넘나들고, [/]도 넘나들었다. []의 어원은 [/nor]이고, [][]에서 분화되어 나온 것이다.


모범적인 인물을 의미하는 []은 의미가 좋아 이름으로 쓰기에 아주 좋았다. 그래서 우리 조상들은 너도나도 이란 이름을 지어서 불렀다. 가장 대표적인 인물이 임진왜란 때 행주대첩으로 유명한 권율 장군이다.


권율(權慄) 장군의 이름에 쓰인 율()겁이 나서 벌벌 떤다는 뜻을 가진 한자다. 그렇다면 장군의 이름은 겁쟁이란 뜻으로 지은 이름인가? 장군의 부모는 왜 그런 이상한 이름을 지어준 것일까? 아이가 장차 겁쟁이가 되기를 바랐기 때문에? 아니다. 겁쟁이가 되라는 뜻에서 지어준 이름이 아니고 다른 사람들의 모범이 되라고 지어준 이름이다. 전문적인 용어로 말하면, 은 순우리말 이름 []을 음차한 표기일 뿐이다. 한자의 본래 뜻이 무엇이든 상관하지 않고 음이 같은 글자를 빌려 적는 것을 음차표기라 한다. 그렇게 한자의 음만 빌려서 지은 이름을 한자의 뜻에 따라 해석하려 드니까 해석 자체가 이상해질 수밖에 없는 것이다.

 

[유리]()의 모범이 되는 사람을 의미하는 말이다 보니 옛날 왕들의 이름에도 많이 쓰였다. 왕은 모든 사람들의 모범이 되는 인물이어야 했기 때문이다. 고구려 제2, 신라 제3, 신라 제14대 왕의 이름이 모두 유리였다. 저마다 조금씩 다른 한자로 적기도 했지만 이들은 모두 음차표기이므로 그 점은 크게 신경 쓸 필요 없다.


고구려 2대 유리왕 : 類利(류리), 儒留(유류), 琉璃(류리)

신라 3대 유리왕 : 儒理(유리), 弩禮(노례), 儒禮(유례)

신라 14대 유리왕 : 儒理(유리), 儒禮(유례)


이들은 2천 년 전의 인물이다. [유리]라는 이름은 2천 년 전부터 우리 선조들에게 꾸준히 애용되어온 이름인 것이다. 우리 고유의 문자인 한글이 만들어지기 전에는 한자를 빌려서 적다 보니 본래의 이름이 지닌 의미와 어원을 알 수 없게 되어 버렸던 것이고, 후대의 사람들은 어원이나 의미는 알지 못한 채 그냥 옛날부터 사용해온 이름 그대로 [, 유리]라 짓고는 거기에다 적당히 한자를 갖다 붙여 쓰고 있는 것이다.

 

[유리]가 순우리말이라 했지만 사실 한국인만 유리라는 이름을 사용하는 것은 아니다. ‘유리 가가린, 유리첸코등에서 보듯 러시아인들의 이름에도 유리(yuri)”가 들어가는 경우가 많이 있고, ‘유리코, 사유리등에서 보듯 일본인들의 이름에도 유리(ゆり)”가 들어가는 경우가 많이 있다. 이들은 단순히 음만 비슷한 게 아니다. 또한 우연의 일치도 아니다.


앞으로 본격적인 연구가 이루어져야겠지만 이들 이름의 어원은 모두 같다. 동일한 어원에서 지역과 민족에 따라 서로 다른 언어로 분화가 갈라졌지만 [유리]라는 이름은 그 형태 그대로 지금도 쓰이고 있다. 오랜 세월이 흐르는 사이 언어는 심하게 변하고 서로 다른 모습이 되었지만 언어로 지어진 사람의 이름은 여전히 그 모습 그대로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유리]와 비슷한 [유라]라는 이름도 많이 쓴다. [유라][유리]와 같은 []에서 비롯된 이름이다. ‘영철, 영숙의 이름을 부르면 영철아, 영숙아라고 한다. 거기서 앞말을 빼고 부르면 [철아] [숙아]라고 하게 된다. []이란 이름도 마찬가지다. [율아유라]가 된다. 그러니까 , 유리, 유라는 같은 어원에서 비롯된 이름이고 그 의미는 모범적인 인물이라는 얘기다.


남자들의 이름 정률, 성률, 동률에 많이 쓰이는 []도 사실은 같은 어원 []에서 비롯된 말이지만 한자 ()에 완전히 흡수되어 그 어원을 논하기가 어렵게 되어 버렸다 할 수 있다. 그리고 , 유니, 유나, 유리, 유라와 같은 어원에서 비롯되었으며 사실상 이들은 모두 같은 의미를 지닌 이름이라 할 수 있다.

 

    

 

[최규성 작가 ] 계백과 김유신』『소이와 가이』『타내와 똥구디등의 인명풀이 시리즈가 있다.




편집부 기자
작성 2018.11.30 10:58 수정 2018.12.05 16: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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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1-30 10:21:54 / 김종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