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규성 작가의 인명풀이] 한국인의 이름(4)

사리와 사라



지난 회에는 [소리][소라]라는 이름에 대해 설명했다. 이번 회에는 [사리][사라]에 대해 알아보기로 하겠다. [소리/소라][사리/사라]는 사실상 같은 어원에서 분화되었고 큰 차이가 없는 이름이다. 물론 음운과 의미가 점점 세분화되어 상이하게 갈라지는 것이 언어이기 때문에 당연히 차이가 없지는 않다.

 

[소리/소라]의 응집발음은 []이고, [사리/사라]의 응집발음은 []이다. [/]은 서로 쉽게 넘나든다. 그것을 두고 음이 서로 쉽게 부전(浮轉)되었다는 말을 쓴다. 그러나 음이 분화되면서 []은 하늘처럼 높은 것을 뜻하는 말이 되었다. 그리고 []은 한국어에서는 Live()의 뜻을 가진 말 위주로 분화가 되었다.

 

쉽게 말해, 사람을 뜻하는 [/sar]을 연진발음한 [살이] [살아]와 같은 형태가 사리사라라는 이름으로 정착되었다고 할 수 있다. 순우리말 이름이다. 김미연이란 이름이 있다 할 때, 영남지역 노인들은 맨끝 글자만 취해 연이혹은 연아라고 부른다. “사리, 사라는 그와 똑같다.

 

[산이] [산아]도 마찬가지다. 조선시대 인명을 보면 금산(今山), 덕산(德山), 중산(仲山), 막산(莫山 ), 말산(末山)” 등과 같이 이 들어간 이름이 많은데, mountain을 뜻한다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사람을 뜻하는 산이, 산아를 그렇게 쓴 것이다.

 

[/sar]은 인류가 아득한 원시시대부터 사용해 온 말이다. 그러므로 한국인들만 사라라는 이름을 사용하는 것은 아니다. [사라]라는 이름은 언어권을 불문하고 세계 곳곳에서 사용되는 이름이다. 세계적으로 가장 보편적이고 가장 인간적인 이름이라 할 수 있다.

 

(‘사라가 순우리말 이름이라 해놓고, 세계인이 다 쓰는 이름이라니? 도대체 무슨 소리냐고 따지고 싶은 분들 많이 계실 줄 안다. 여기서 한꺼번에 설명하기에는 너무 번거로워 추후에 따로 다루고자 하니 널리 양해하시기 바란다.)

 

사리(=살이)라는 이름은 요즘은 잘 쓰지 않는 편이다. 조선시대에 이나 같은 한자로 표기되다가 한자에 흡수되어 버린 탓이다. “춘생(春生), 금생(今生), 효생(孝生), 말생(末生)” 같은 이름이 아주 많이 쓰였는데, 본래는 한자 [살이]를 쓴 거였겠지만 그 사실을 알지 못하는 후대인들이 한자음 그대로 이라고 읽으면서 [살이]는 사라져 버렸다.

 

사리(살이)”라는 순우리말 이름의 흔적을 짚어본다면, 가장 대표적인 이름으로 신라 명필 김생(金生)을 들 수 있다. 그의 실제 이름이 [사리]였을 것이다. 그리고 무열왕 때의 인물 미지활(未知活)이 있다. 한자 []을 적은 것이다. 한자 살 활자이다. 다시 말해 우리말로 [미지살이]라 일컫는 이름을 未知活(미지활)”이라고 차자한 것이다.

 

참고로, [미치/미티]는 신라 눌지왕의 동생 미토희(未吐喜)나 미추왕(味鄒王)의 이름에서 엿볼 수 있다. [///...] 등으로 부전되었으며 임금과 같이 고귀한 인물을 뜻한다. 받침소리가 약해져 탈락하면 일본어의 경칭접두어 ()”가 된다. 일본어에서는 왕과 같이 높은 존재의 앞에다 ()”를 덧붙이다.

 

조선왕조실록 세조 때의 기록을 보면 미치(未致)”란 인명이 많이 나오는데, 한자의 뜻으로 해석하거나 밑(아래)이라 해석할 이름이 아니다. “미치는 고귀하다는 뜻의 이름이다. “개미치(介未致)”란 이름도 있다. 동국신속삼강행실도에도 있고, 조선왕조실록 순조 때에도 똑같은 이름을 가진 이가 나온다. 개미치란 이름을 개밑, 개똥구멍으로 해석한다면 한심하기 그지없는 사람이다. []는 크다는 뜻이고, []은 고귀하다는 뜻이다. 아주 고귀하다는 뜻의 이름이 [가밑가이미티개미치]인 것이다.

 

이야기가 잠시 딴 데로 흘렀는데, 우리말 이름 [살이]가 한자 에 거의 흡수되어 버리긴 했지만 완전히 사라진 것은 아니었다. 조선왕조실록을 보면 다믈사리(多勿沙里), 자읍사리(者邑沙里), 사읍사리(沙邑士里)”같은 이름이 실려 있다. “다믈사리더불어 함께 사는 사람이란 뜻이다. [더므살이/더브살이]는 같은 말이다. 지금은 얹혀산다는 뜻으로 약간 변했으나, 본래는 동무로 살아간다는 뜻이다. [도모동무]가 된 것이다. 고구려 고주몽의 이름이 바로 이 [토모]로 된 것이고, 용사를 뜻하는 [터믈]과 같은 어원에서 분화된 말이다.

 

자읍사리[자읍][]을 길게 늘여서 발음한 것이다. [/]은 쉽게 넘나들었다. “자읍사리사읍사리는 사실상 같은 이름이라 할 수 있다. []의 연진발음이 [자읍]이다. 순우리말 []아버지, 어른, 큰사람을 뜻하는 말이다. 를 일컫는 말이 아비인데, 그 고형이 자비였다. 고려시대 송나라에서 온 손목이란 사람이 쓴 계림유사에 고려인들은 를 가리켜 子阿秘(자아비)라고 부른다고 기록해 놓았다. 아버지를 [자비/zabi]라고 하더라는 얘기다. [자비/사비]가 변해서 오늘날의 [아비]가 된 것이다.

 

신라의 자비왕(慈悲王)이나 백제의 사반왕(沙伴王)큰 어른을 뜻하는 [/]을 이름으로 사용한 것이고, 백제의 사비성(泗泌城)도 그러한 의미를 지닌 말이며, 충남 예산의 삽다리도 그러한 의미를 지닌 지명이다. “삽달, 삽다리큰 땅이란 뜻이다. 그러므로 사읍사리란 이름을 단순하게 그 음의 유사성만 보고 삽살개를 뜻하는 이름이라 생각해서는 안 된다. 종래의 국어학자와 이름연구자들은 악명위복이란 말로 얼버무리며 이름을 제멋대로 해석하는 일이 많았으나, 앞으로는 그런 엉터리 설명을 함부로 퍼뜨려선 안 될 것이다.

 

요즘은 [사리, 사라]라는 이름을 쓰는 사람이 별로 없다고 했지만, 전혀 없지는 않다. 다만 그 이름이 지닌 의미를 아는 사람이 거의 없다 보니 점점 줄어드는 것처럼 보일 뿐이다.

 

앞에서 [산이, 산아][살이, 살아]와 마찬가지라 했는데, 트와이스 멤버 사나의 이름도 그러하다. 미나토자키 사나(湊崎紗夏). 사나(紗夏)라는 이름을 한자의 뜻대로 해석하려 드는 것은 우스운 일이다. [사리, 사라] 등과 같은 어원에서 분화된 이름이다. 한국인의 이름과 일본인의 이름은 분화된 지가 오래되지 않았기 때문에 유사성이 워낙 많아서 언어의 역사를 연구하는데 큰 도움이 된다.

여기서 설명한 []에서 한국어의 사람, 사랑같은 단어도 분화되어 나왔고, “스즈키상, 욘사마처럼 일본인들의 이름 뒤에 붙이는 경칭인 (さん)’이나 사마(さま)’도 같은 어원에서 분화되어 나온 말이다. 그러니까 사리, 사라라는 이름이 단순히 사람을 뜻한다고 할 것이 아니라 사람을 높여서 부르는 의미가 담겨있다고 파악해야 한다는 말이다.

 

사람의 이름은 세월이 흐르는 동안 음이 워낙 심하게 변해 버려서 그 연원을 추찰하기 어려운 경우가 대부분이다. [미사]라는 이름이 대표적이다. [미사]는 쉽게 말해서 [미지사리]와 같은 이름이라 생각하면 된다. 임금처럼 고귀한 것을 나타내는 []에 사람을 나타내는 []을 합친 [+]에서 받침소리가 모두 약화 탈락한 형태인 [미사]로 정착된 것이다.

 

미사라는 이름은, 그 변천과정을 모른다면 그저 그런 이름에 지나지 않지만 그 연원을 잘 알고 보면 아주 예쁜 이름이라 할 것이다.

 

 


[최규성 작가 ] 계백과 김유신』『소이와 가이』『타내와 똥구디등의 인명풀이 시리즈가 있다. 

 





편집부 기자
작성 2018.12.20 11:28 수정 2018.12.20 11: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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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1-30 10:21:54 / 김종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