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계봉의 산정천리] 히말라야 동쪽 끝 옥룡설산에 오르다

거친 에너지를 쑥쑥 뿜어내는 원시의 산

 

거칠고 황량한 곳. 동시에 은둔의 땅이자 순수 원형의 땅, 내 안의 나를 찾아 떠난 그 곳에서 나시족들의 신()을 만나보고 싶었다.

 

동부 히말리아의 끝 옥룡설산!

 

무조건적인 그리움은 가슴 속을 풀무질을 해대어 심장 온도는 갈수록 올라간다. ‘사람이 아닌 자연에 대한 열망이 이렇게도 클 수 있는 것일까.

 

질리도록 파란 하늘과 흰 눈을 이고 구름 위로 솟은 만년설의 봉우리들. 그 위로 영롱한 빛 화살을 내리꽂는 태양. 가슴은 주체할 수 없을 만큼 방망이질을 하고 온몸은 불에 덴 듯 화끈거렸다. 그곳은 완전히 다른 또 하나의 세계였다.

 

앙드레 지드는 아프리카 여행 중에 모든 구속에서 벗어나 강렬한 생명으로 거듭나는 황홀한 재생을 꿈꾸었다. 나 또한 히말라야가 품고 있는 미지의 땅으로 가서 나를 훌훌 벗고 내 안의 존재를 새롭게 깨우고 싶었다.

 

호도협 트레킹을 하면서 이틀간 껌딱지처럼 지근거리에서 같이 붙어 다닌 옥룡설산. 해발 5,670m, 길이 35km, 너비 12km에 이르는 광대한 산군이다.


중국 남부에 자리한 윈난(雲南)은 구름이 지나는 남쪽이라는 뜻이다. 연중 내내 봄이라는 이름과는 어울리지 않게 만년 설산이 히말라야 동쪽 끝자락에 자리하여 드높은 산맥과 험준한 협곡, 우뚝 솟은 봉우리들이 많기로 유명한 곳이기도 하다.

 

무수한 봉우리 중에서 5,000m 이상의 13개의 봉우리에 눈이 쌓인 모습이 마치 한 마리의 은빛용이 누워있는 모습과 비슷하다고 하여 옥룡설산(玉龍雪山)’ 이라는 이름이 지어졌다.

 

나시족들은 자연물을 숭상하는 동파교(東巴教)라는 원시 종교를 믿고 있는데, 자신들의 수호신으로 여기는 옥룡설산의 가장 높은 주봉 선자두는 등반 허가를 내주지 않는다. 그리고 자연을 그림과 기호로 형상화한 세계 유일의 상형문자인 동파문자를 아직도 사용하고 있다.

 

아직 어둠이 걷히지 않은 옥호촌은 옥룡설산 망설봉을 오르는 산행 들머리다. 오늘 산행은 옥호촌에서 전죽림까지는 말로 이동하고 전죽림에서 망설봉까지 올랐다가 원점 회귀하는 18km 코스로, 10시간이 소요된다.

 

먼저 기마장으로 가서 말을 배정받는다. 우리가 탄 말은 두 필을 빼고 모두 노새인데, 노새는 암말과 수당나귀의 잡종으로 예전에 우리나라에서도 수레를 끌던 말이다. 힘과 덩치가 좋고 건강하며 성질도 온순하여 평생 일만 하다가 죽는데, 생리적으로 정자가 성숙하지 않아서 후손도 남기지 못하니 측은하기 짝이 없다.

 

아침 일찍 올라온 데다 높은 고도 탓인지 본격적인 등반이 시작하기 전부터 한기가 먼저 몰려온다. 이곳 옥호촌 사람들은 야크 방목, 약초 채취, 말 대여 등으로 생계를 유지하는데 시골 마을 치고는 수입이 높은 편이라고 한다.

 

옥호촌 기마장(2,750m). 손님이 오는 순서대로 말을 배정하는 원칙을 철저하게 지킨다. 옥룡설산을 등반하는 외국인들은 반드시 여기서 말을 타고 일정거리 이동해야 한다.

 

기자 덩치가 커서 괜히 처음 만난 노새와 마부인 초등학생에게 미안한 마음이 든다.

 

여명이 밝아오는 옥호촌의 돌담과 돌길이 마치 우리 시골마을처럼 정겹다.


말을 타고 너른 평원을 지나며 유유자적 아름다운 경관을 즐길 때는 좋았지만, 경사가 있는 산길로 접어들면서 고삐를 잡은 손과 팔다리에 힘이 들어가니 온몸이 욱신거린다.

옥호촌에서 노새를 타고 전죽림까지 가는 노정은 즐거움이 아닌 고행의 연속이다. 차라리 걷는 것이 더 편하다.



숲길을 한참 올라온 뒤 만난 목초지의 바위에 '마황패(螞蝗坝)'라고 적혀 있다. 이 근처에 거머리가 많아서 이런 이름이 붙었는데, 여기서부터 전죽림까지 두어군데 경사가 매우 급한 구간에서는 말에서 내려 걸어야 한다. 말이 힘든 탓도 있겠지만 너무 경사가 급한 구간에서 자칫 말이 미끄러져 넘어지기라도 한다면 사고가 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마황패(3,500m)는 말과 마부와 산객이 모두 쉬었다 가는 곳이다.
어느 새 구름 벗겨진 하늘 아래 흰 머리를 들어낸 설산. 손을 뻗으면 바로 닿을 듯한 거리에서 황홀한 모습으로 내 눈 가득 들어온다.
하늘을 뚫을 듯 높이 솟은 산들이 병풍을 두른 듯 굽어보고 있어 제대로 숨을 쉴 수 없다.

 

옥호촌에서 3시간 정도 걸려 도착한 전죽림(箭竹林)은 승마코스가 끝나고 걸어서 오르는 등산이 시작되는 지점이다. 전죽은 화살대를 만드는 대나무를 뜻하는 말인데 주변을 아무리 둘러 봐도 대나무는 별로 보이지 않는다.


옥룡설산 베이스캠프 전죽림(3,670m). 봄, 여름에 망설봉을 등반할 때는 이곳 너른 목초지에 텐트를 치고 낮에는 야생화, 밤에는 별을 보며 야영을 한다.

 

 

이곳 통나무 막사 안에서 마부들이 준비해준 김밥과 컵라면, 뜨거운 국과 디저트로 나온 사과로 든든하게 배를 채운다. 우리가 산행하는 동안 마부들은 그새 약초를 한 바구니씩 캐서 가방에 담아 말에 매달아 놓고 있다. 이들의 약초 수입도 만만치 않다고 한다. 시간을 참으로 유용하게 쓰는 사람들이다.


기압이 낮다보니 1회용 커피 봉지가 터질듯 부풀어 오른다.



전원 등반을 목표로 화이팅을 외치며 망설봉을 향해 호기롭게 출발한다. 제일 선두는 현지 나시족 셀파를 따라 본격적인 산행이 시작된다. 자갈이 많은 급경사의 돌무더기 길을 오르니 금방 숨이 차오른다. 희박한 공기를 마신 폐는 숨차다고 아우성이고 산소가 부족한 피를 공급받은 근육들은 이내 힘을 잃는다.

 

 

몇 해 전 큰불이 나서 그을린 뿌리 잡목 사이로 걷다 보니 마음마저 황량해진다. 황량하지만 숨막히게 아름다운 태고의 고원과 하늘, 척박한 땅. 그러나 헐벗은 땅에서 마음껏 헐벗을 수 있는 내 영혼은 새로워진다.


뒤를 돌아보니 지나온 전죽림과 그 너머로 옥주경천의 넓고도 너른 초지와 리장으로 향하는 쭉 뻗은 직선 도로, 그리고 멀리 리장 시내가 아련하게 보인다.

 

 

전죽림에서 망설봉에 이르는 등로는 거리는 짧지만 경사도가 대단히 높다. 고도가 높아 산소도 적기 때문에 가급적 천천히 자주 쉬면서 꾸준하게 올라야한다. 그러나 한라산 진달래대피소처럼 망설봉은 2시 반까지 오르도록 시간을 통제하고 있어 부담감을 지닌 채 산에 올라야 한다.


모래와 자갈로 이루어져 있어 유사파(流沙坡, 4,000m)란 이름이 붙은 언덕은 그 옛날 빙하가 흘러내린 흔적이다. 발목까지 빠지는 이곳을 통과하기가 만만찮다.


설산 아래 풀이 있는 곳에는 반드시 방목하는 야크 떼가 있다. 해발 3,000m 이하에서는 생존이 불가능한 고산동물 야크는 검은색 야크(black yak)가 대부분이지만 귀한 흰색 야크(white yak)도 간혹 눈에 띤다.

 

장족(藏族)의 아침은 수유차로 시작한다. 수유는 야크 젖을 끓인 후 식었을 때 생긴 지방 덩어리다. 이 수유와 차를 함께 넣고 끓여 만든 차가 바로 수유차다. 장족 여자들은 아침에 야크 배설물로 차를 달이는데 식량이 없으면 사흘을 견디지만, 차가 없으면 하루를 버티지 못한다.”고 한다. 따라서 장족은 야크 없이 살 수 없다.


옥호촌에서 올라온 야크들. 1마리가 우리 돈으로 6백만 원이 넘는다고 한다.


여기 와보면 히말라야 등반대의 정상 공격조가 왜 그렇게 느릿느릿 움직이는지 체험을 통해 알게 된다. 호흡을 고르며 서서히 고도를 높이니 노새처럼 굽은 등 모양을 하고 있는 충초평(蟲草坪, 4,500m)이 나온다. 옥호촌 사람들이 동충하초를 캐는 곳이다. 뒤를 돌라보니 우리가 올라온 길의 오른쪽에 있던 상의봉(尙义峰) 봉우리가 보인다. 저 멀리 녹설해 표지판이 보인다. 일단 저 고개에 오르기 위해 마음을 다잡고 거친 호흡을 토해내며 산오름을 계속한다.


녹설해(綠雪海, 4,900m)는 어느 봄날에 야생화가 지천으로 핀 푸른 초원위로 눈이 내리면 마치 푸르른 바다처럼 아름답다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여기서 망설봉까지 거리가 길지는 않지만 계속 오르막이어서 결코 만만한 길이 아니다. 이곳에서 잠시 휴식을 취하면서 마지막 스퍼트를 위한 힘을 비축한다. 안타깝게도 여기까지 같이 왔던 일행 2명은 고소증세 때문에 더 이상 오르지 못한다.

 

위로 갈수록 오랜 세월 빙하의 침식 끝에 특이한 모습을 하고 있는 바위들로 가득하다. 허파가 터질 듯 헉헉거리며, 납덩이를 매단 듯 질질 끌던 걸음, 신비경 같은 초자연의 풍광들. 질리도록 파란 천공(天空). 고원과 하늘의 무한 지대는 크게 있어’ ‘대유(大有)’라고 해야 할지, ‘크게 비어’ ‘태허(太虛)’라고 해야 될지.



 

하늘과 땅이 만나는 곳. 한없이 넓고 그림 같은 하늘. 빛이 너무 강해 그 안에서 녹아내릴 것만 같다.

 

그러나 심장이 터질 듯하고 호흡은 거칠어져 발걸음이 자꾸 더뎌진다. 드디어 14시 정각 망설봉에 도착한다. 망설봉에 오르니 5,000m가 넘는 옥룡설산 봉우리 13개가 좌우로 도열하여 산객을 반긴다. 용이 날아가는 모습이라는 산 이름에 걸맞게 정상 주위 풍광은 그야말로 압권이다.

 

동행한 나시족 셀파는 오늘처럼 이렇게 맑은 날씨에 산오름할 수 있는 날은 1년에 30일 정도라고 한다. 더구나 이렇게 구름 한 점 없는 날은 더더욱 드물어 당신들은 정말 복 받은 사람들이라고 치켜세운다.


망설봉(5,100m). 우리가 오를 수 있는 마지막 지점이다. '망설봉 대협곡'이라고 붉게 새겨져 있다.

 

 

미동도 않고 계속 설산을 쳐다본다. 수만 생각이 스치지만 아무 것도 거머쥔 것 없는 텅 빈, 멍한 시간. 어쩌면 그것은 정지된 시간이었을까. 어떤 외로움도, 그리움도, 슬픔도 정지된 시간 속으로 사라진다.

 

추락 경고 표지판이 강풍에 떨어져 나간 공간 사이로 보이는 세상은 환희로운 한편의 파노라마다. 뒤로 미답의 봉우리 선자두(5,670m)가 보인다.

 

 

정상 주위에 부는 제법 거친 바람은 두고 온 세상을 나의 의식에서 끌어내고, ‘새로 찾아온 세상을 밀어 넣는다. 바람만이 자유롭게 드나드니 나그네의 티끌 번뇌가 흩어진다.


선자두 아래의 대협곡은 과거 빙하로 가득 채워져 있었으나 지구 온난화로 거의 다 녹아 허연 나신을 드러내고 있다. 서유기의 손오공이 500년 동안 갇혔던 흔적을 한참 찾아본다.



한낮의 햇살에 출렁거리는 산, 주름주름 능선을 휘감는 시늉을 하던 운무가 제물에 질리듯 머리를 풀어헤치고 허공으로 흩어지니 하늘이 완전하게 열린다. 초목 하나 없는 황량한 산, 풍화된 암갈색 지층을 드러내고 아스라이 뻗어있는 황막하면서도 아름다운 산들. 쑥쑥 뿜어내는 원시의 기운이 가슴을 찡하게 두드린다.


망설봉 주위 날카로운 검은 암릉 사이로 하얀 만년설이 깔려있다. 한 번도 가 본 적 없는 고향에 들어선 것 같은 아릿함에 가슴 속이 먹먹해져 온다.


 

2시 반이 되자 셀파가 하산을 독촉한다. 올라올 때는 몽유병 환자처럼 무기력하게 흐느적거리던 몸이 내려갈 때는 물 만난 고기다. 올라올 때 사람 진을 다 빼게 만든 유사파의 모래 경사 길을 복수할 요량으로 스키 타듯이 가볍게 내려간다.


하산하면서 내려다보이는 옥주경천의 너른 벌과 산자락의 옥호촌은 가도 가도 제자리에 있다.


영원히 잃어버린 줄 알았던 순결한 시절, 순결한 마음.

그 무구하던 시절로부터 나는 지금 얼마나 멀리 떨어져 있는지 알 수 없다.

 

뭉쿨한 심정으로 유사파 언덕을 내려오던 내 머리 위로 새 한 마리가 포물선을 그리며 날고 있다. 고원과 협곡을 날개에 담고 유유히 비행하는 저 새는 바로 극락정토의 설산에 산다는 극락조 가릉빈가(迦陵頻伽) 아닌가.

 

히말라야의 주술에 걸린 나는 어느 새 그 새가 되어 바람을 타고 옥호촌 창공을 날고 있었다

여계봉 선임기자





 




편집부 기자
작성 2018.12.31 11:07 수정 2019.01.08 05: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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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3개 (/ 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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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소영님 (2019.01.04 12:15) 
실감...
읽으면서 제가 숨이 가쁠만큼 실감나요~~~ 글도 기자도 사진도 멋집니다.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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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라보인생님 (2019.01.01 09:30) 
리장사랑
히말리아 동쪽끝 나시족 영산. 손오공이 수백년간 갇힌 계곡. 티없이 맑은 창공. 황량한 자연속에서 다시 찾은 자아. 산 아래 사는 나시족은 대자연이 바로 자신들의 종교입니다. 새해 첫날 백지처럼 깨끗한 도화지를 만날수 있어 너무 감사합니다.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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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이조아님 (2019.01.01 08:26) 
옥룡
몇년전 호도협트레킹하면서 만난 산입니다. 저희는 케이블카타고 운삼평에 오른후 초원트레킹을 했는데 기자님 산행기를 보니 정말 부럽습니다. 기회되면 망설봉까지 올라가고 싶어요. 아름다운 사진과 수려한 산행기 잘보고 갑니다. 새해 복많이 받으세요.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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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1-30 10:21:54 / 김종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