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드림의 싫존주의] 왜 그들은 하나같이 롱패딩을 입는가

입력시간 : 2019-01-08 13:43:44 , 최종수정 : 2019-01-08 14:05:09, 편집부 기자

나는 현재 제주의 유명해변 근처에서 요식업을 운영 중에 있다. 낮에 한가한 틈을 타 해변으로 나가면 꽤나 섬뜩한 장면이 연출되곤 한다. 해변을 거닐며 제주바다에 심취해 있는 관광객의 8할 이상이 검은색 롱패딩을 입고 있는 광경이다. 그것은 마치 거대한 까마귀 떼를 보는 것 같은 기분이 들기도 한다. 특히 20,30대 젊은층에서 그 정도는 압도적으로 많다. 그리고는 줄지어서 맛집으로 이름난 식당으로 몰려간다. 그리고 똑같은 메뉴를 시키고 똑같은 사진을 찍은 뒤 sns에 올리는데 내용마저 거의 똑같다. 무슨 복제인간 플래시몹이라도 하는 건가.

 

 


  

사실 이 모습은 딱히 새로울 것이 없는 풍경이다. 해마다 반복되는 모습이니까. 불과 몇 년 전에는 그 대상이 노스페이스 패딩이었고, 그에 앞서는 떡볶이 코트였던 차이일 뿐이다. 한국인에게는 겨울만 되면 의복을 통일하고 싶은 심리라도 있는 것일까. 그럴리가 있나. 문제의 본질은 과연 '남들 다 롱패딩입는데 나만은 다른 걸 입겠다'는 용기를 이 사회가 가르쳤는가의 여부이다. 물론 이 사회는 그런 걸 가르치지 않았다. 가급적이면 남들 눈 밖에 나지 않을 것만을 종용했을 뿐이다.

 

한국의 학교는 전국 어디나 거의 똑같은 모습을 하고 있다. 한국의 아파트 역시 대부분 비슷한 면적에 비슷한 구조를 하고 있다. 그리고 그런 곳에서 자란 한국의 젊은이는 비슷하게 딱히 경쟁력 없는 대학에 눈치싸움하면서 들어가 비슷한 스펙을 경쟁하며 쌓고서는 취업이 안 되어 쩔쩔매는 비슷한 처지가 되고 만다. 유사성의 비극도 이런 비극이 없다.

 

어릴 때부터 '남들처럼'이라는 신화에 매몰되어 끌려가듯이 학원에 가고, 영어를 배우고, 대학에 가고, 토익토플을 준비하던 인간이 '옷차림만큼은 자유롭게 입고 싶어'라고 말할 가능성은 거의 제로에 가깝다. 삶의 대부분을 타인을 흉내 내면서 살아왔으니 옷차림도 타인을 흉내 내는 것은 당연한 이치다.

 

심지어 이 나라의 학교는 더 가관이었다. 학생의 머리스타일을 규제하고 복장을 규제하였다. 과연 그것이 하나의 인간을 성숙한 시민으로 교육하는데 어떤 관련이 있는지 모르겠다. 과거부터 머리스타일과 복장을 규제당한 대표적인 신분은 바로 '노예'였다. 이 사회는 자아가 성숙되지 않은 인간의 복장을 통제함으로써 그들이 커서도 사회에 순응할 수 있도록 의도했다. 독립적이고 개별적인 민주주의 국가의 성숙한 시민을 만드는 것과는 거리가 멀었다.

 

아직도 이 나라의 학교 앞 아침풍경은 생활지도라는 명분으로 등교하는 학생들의 옷차림을 통제하고 있다. 그리고 그 결과값이 해마다 반복되는 집단의 복장 붐이다. 이 나라의 학교는 반성해야 한다. 그들은 수십여 년 동안 인간이 가진 아름다움의 욕구를 말살시키는 우를 범하고 있다. 더 늦기 전에 학생들에게 이렇게 물어야 한다.

 

"너는 어떤 옷을 입을 때 행복할 수 있을 것 같니?"

 

 


  

내게 어떤 옷이 잘 어울리고, 어떤 옷을 입을 때 행복한지를 아는 인간. 곧 자신을 꾸밀 줄 아는 인간이 자신의 삶도 잘 꾸밀 수 있는 법이다. 이것이 스타일이 있는 삶이다. 스타일이 있는 인간은 무엇을 해도 매력적이다. 또 그런 사람들이 많은 도시는 덩달아 매력적이게 된다. 뉴욕이 매력적인 것도 바로 그 때문이다. 서울을 뉴욕처럼 만들고 싶으면 제일 먼저 학생들에게 자유로운 복장을 허하라. 물론 우리는 안 될 거다.




 


 

강드림

다르게살기운동본부 본부장

대한돌싱권익위원회 위원장

비운의 비례대표 국회의원 후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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