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 열전 靑年 列傳] 그림 그리는, 임송

낡고 닳아서 무뎌진 표현을 다시 되새김질 해보는 즐거움


 

 

우리는 끊임없이 다른 사람과 의사소통하며 살아가고 있다. 가장 가까운 가족뿐 아니라 밖에서 만나는 종업원까지 그 대상도 매우 다양하다. 그 과정 중에 사람이 사람과 만나 접촉할 수 있는 방법은 수백 가지인데, 생각해보면 왜 하필 그런부위를 그런방식으로 닿게 하여 그런의미를 갖게 하는지 의문을 갖게 하는 것들이 몇 있다.

 

1) 하이파이브. 상대방의 손바닥과 내 손바닥을 정확히 맞부딪혀 커다란 소리를 낸다. 이 행동의 목적은 최대한 찰지고 큰 소리를 내서 흥을 최대치로 끌어올리는 것이다. 또한 동시에 화려하게 그 상황을 마무리 짓는 행위이기도 하다. 서로의 손바닥이 정확히 맞지 않아 삐끗하거나 경쾌한 소리 대신 둔탁한 소리만 나게 될 때 잘 안 맞네라는 소리를 괜히 한 번 한다. 이때 잘 안 맞는 것은 상황 그대로 손바닥의 합이 될 수도 있지만 그 둘 관계를 일반적으로 설명할 수 있는 쿵짝임을 슬쩍 내포하고 있다.

 

2) 엉덩이 토닥토닥. 칭찬이나 위로를 전하는 사람이 받는 이의 엉덩이 한 쪽을 손바닥을 이용해 반복해서 친다. 인체 부위 중 가장 크게 접히면서 뒤로 길게 내뺄 수 있는, 그리고 우리의 몸이 피곤해질 때 가장 먼저 어딘가에 의지하고 싶어 하는 부위가 엉덩이이다. 바로 이 안주의 아이콘에 자극을 주면서 긍정의 말을 더한다. 의자나 바닥에 닿지 못하게 그 사이에서 손을 펄럭펄럭 움직이며 방해한다. 결국 그 대상은 긍정적인 말과 함께 하는 손바닥의 자극으로 계속해서 나아갈 힘을 얻는다.

 

3) 시선이 부딪히다. 실제로 우리의 눈에 보이지 않는 시선이 마치 길을 따라 가다가 상대방의 그것과 만난 것 것처럼 표현한다. 중요한 사실은, 시선이 항상 직선으로 움직인다는 것이다. 곡선 길을 따라 구불구불 나아가는 것은 시선과 어울리지 않는다. 쭉 뻗어 나가다가 반대쪽에서 오는 것과 부딪힌다. 직접적인 물리적인 변화는 없지만 쾅!하고 큰 소리가 난 것도 같다. 뭔가 묘한 긴장감이 함께 흐르는 상황일 때가 많고 뒤에 이어질 흥미로운 일의 도입부처럼 그려진다.

 

4) 꿀밤을 먹이다. 간단한 벌로 상대방의 이마에 주먹을 갖다 박는다. 주먹 끝은 꿀밤이 되고 그걸 굳이 상대의 이마에 떠먹여준다. 이마는 얼굴에 있는 부위 중 가장 광활한 평지이다. 입처럼 갈라지는 곳 하나 없는 이곳으로 무언가를 어떻게 먹일 수 있을까? 또 이름만 들어도 달콤할 것 같은 꿀밤을 이마에 먹여주는 것을 굳이 벌로 하는 이유가 무엇일까? 이렇게 터무니없으면서도 뭔가 귀여운 행위는 순식간에 진행된다. 이마로 꿀밤을 먹었던 사람은 분명 체벌을 받은 것이지만 행위의 이름이 갖고 있는 모순됨과 아기자기함에 실제 받은 물리적 충격을 온전히 체감하지 못할 수 있다. 본인이 당한 고통이 실제보다 진지하게 느껴지지 않을 수 있다는 것이다. 단순히 이마를 때렸다는 사실보다 꿀밤을 먹였다라는 것이 덜 심각하게 다가온다.

 

현재 우리가 함께 살아가는 이곳에선 말 뿐 아닌 다양한 방식으로 대화를 한다. 그 방식들은 각각 나름의 상징성을 띄고서 원활한 소통을 가능하게 한다. 즉 이렇게 암묵적으로 합의된 행동들이 사람간의 대화를 더 구체적이거나 풍요롭게 하는 것이다. 하이파이브라는 행동이 격려를 해주는 상황보다는 상대방과 마음이 맞는 순간에 더 어울린다는 것과, 꿀밤을 먹이는 행위가 칭찬이나 위로를 전하는 순간보다는 가볍게 충고할 때 더 적절하다는 사실을 우리는 긴 고민 거치지 않고 바로 알 수 있다.

 

앞에서 예를 든 관습적인 행동뿐만이 아니다. 우리가 소통을 하는 데 쓰는 가장 대표적 매체인 언어자체에서도 비슷한 모습을 볼 수 있다. 말 하나가 만들어지면 사람들은 그것에 의미를 부여한 후 서로 약속한다. 우리는 상대방이 암묵적으로 합의했다는 가정 하에 그 말들을 사용하여 의사소통을 할 수 있게 된다. 사용빈도가 높은 표현일수록 사람들은 말 자체를 그대로 보기보다는 그 너머의 의미에만 집중한다. 그렇기에 긴 사고 과정 없이 짧은 시간 내에 한 번에 서로의 말을 이해하고 반응할 수 있다. 아무리 추상적인 말이라 하더라도 그 언어를 모국어로 사용하는 사람이라면 바로바로 꺼내 사용할 수 있는 것이 그것 때문이다. 그만큼 많은 이들이 그 표현을 학습하고 다수가 합의한 방향에 맞게 사용하고 있다는 뜻이다.

 

하지만 만약 전혀 다른 문화권에서 이방인, 혹은 외계인이 이곳에 왔다고 가정해보자. 위와 같은 표현들을 보고 그 의미를 바로 추론하는 것이 가능한 일일까? 타지에 갑자기 떨어진 외국인이 낯선 그 땅의 언어를 포함한 많은 표현을 바로 이해한다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한국을 잘 모르는 외국인에게 꿀밤을 먹인다라는 표현이 주먹 끝으로 이마를 살짝 쳐서 가벼운 벌을 주는 것이라고 한 번에 받아들여질 수 없을 것이다. 또한 그 말 자체 표현보다는 의미에 바로 집중해왔던 우리가 표현에서 의미로 넘어가는 그 과정을 합리적으로 설명하는 것도 쉽지 않은 일이다. 표현들이 각 의미에 닿기 위해서는 생각보다 많은 과정이 필요하다. 가끔 의미와 아무런 연결 고리가 없는 표현도 존재한다. 나아가 생각해보면, 우리는 이렇게나 추상적이며 모호한 표현을 관습적으로 사용하며 오해의 가능성이 다분한 세상에서 살고 있다.

 

머리가 무겁다’, ‘코웃음 치다와 같이 말로 표현될 수 있는 관습적인 표현을 표면적으로만 보았을 때 얼마나 다양한 이미지로 나타낼 수 있는지 알아보는 것이 요즘 필자의 최대 관심사이며 작업의 주제이기도 하다. 작업 과정을 간단히 설명해 보자면 다음과 같다. 먼저 아주 일상적이면서 자주 사용되는 표현을 하나를 선정한다. 그리고 그것이 갖는 통상적인 의미를 모르는 사람처럼 접근하고 순수하게 추론해본다. 예를 들어 시선을 공유하다라는 말을 주제로 작업을 진행한다고 하면, 그 말 내면의 의미는 모르는 척 하며 말 그대로를 보려 노력하는 것이다. 추상적 단어인 시선이라는 것을 어떻게 공유할 수 있을지, 그리고 어떤 모습으로 공유할 수 있을지 생각해본다. 그 후 관찰의 결과물을 이미지로 무작정 나열해 본다. 이러한 과정을 거쳐 나온 이미지는 다음과 같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완성된 그림과 주제가 되었던 을 최종적으로 비교하며 그 사이에서의 간극을 발견해본다.

 

이미 흔하게 쓰여 낡고 닳아서 무뎌진 표현들을 다시 되새김질 해보는 과정은 꽤 큰 즐거움을 준다. 그리고 그동안 얼마나 무관심하게 습관적으로 많은 것들을 지나쳐 왔는지 스스로에 대한 반성도 가능케 한다. 이 모든 과정은 일상 속에 숨어 있던 재미를 느끼게 해준다는 것만으로 큰 의미를 가진다. 언어란 항상 옆에 있고 숨 쉬듯 사용되는 너무나도 익숙한 매체이다. 그리고 우리는 이러한 언어를 그저 의사소통을 위한 도구로만 봐 오면서 많은 재미를 지나쳐 버렸는지도 모른다. 사고를 전환시켜 언어라는 것을 단순한 놀이를 위한 도구로 봐 보는 것도 흥미로운 시도이다. 이미 충분히 합의된 표현들을 의심해보고 마음대로 해석해보는 과정을 통해 지루한 일상을 흥미롭게 전환시킬 수 있다. 앞으로도 좀 더 다양한 방식으로, 긴 시간을 거쳐 지금 우리의 입에까지 오르내리게 된 말들이 어떤 일들을 겪으며 그런 모습으로 다듬어진 것인지 자유롭게 상상해보려 한다.



전명희 기자
작성 2019.02.14 08:47 수정 2019.02.14 09: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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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1-30 10:21:54 / 김종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