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차영의 대중가요로 보는 근현대사] 장한가

논개가 그리워라 남강물 푸르러

장한가

  

논개가 그리워라 남강물 푸르러

신불출·문호월·윤백단

  

1933년은 우리나라 대중음악사에 금지곡 1차 분수령이다. 그해 5월 일본제국주의 조선총독부는 <축음기레코드취체규칙>을 발표한다. 경술국치 이후 23년 만의 문화예술적치욕이다. 그들이 조선민족문화 말살정책의 강압적 단추를 채운 것. 이유는 치안방해(治安妨害)와 풍속괴란(風俗壞亂)이다.

 

어지러운 바람에 풍속이 무너진다? 그 시절 우리민족에게 어지러운 바람을 일으킨 장본인은 바로 일본제국주의 그들 스스로이다. <아리랑>, <황성옛터>, <목포의 눈물>, <눈물 젖은 두만강>, <꿈꾸는 백마강>등이 치안방해 이유로 줄줄이 금지되었다. 이 노래 <장한가>도 같은 이유다. 그 해 신불출이 지은 노랫말에 문호월이 곡을 붙여서 윤백단이 부른 노래. 중국 시인 백거이의 시 장한가(長恨歌)가 같은 제목 <장한가>이다.

 

논개가 그리워라 남강물만 푸르러/ 촉석루 옛 다락에 옷깃 잡던 바람이/ 지금에 어느 하늘 흐르고 있느냐// 계월향 그리워라 모란봉만 높구나/ 능라도 버들로도 그대 매기 어려워/ 갸륵한 일편단심 볼 길이 없어라// 황진이 그리워라 박연폭포 물소리/ 비류직하삼천척 의시은하락구천/ (飛流直河三千尺 疑是銀河落九天)/ 어데 가 그대 문장 짝진 단 말인가.(가사 전문)


https://youtu.be/GgPY_IJvezI

 

이 노래는 19338월 금지를 당하여 음반판매가 불가해진다. 그래서 오케레코드사는 두 달 후 <장한가>가 실려 있던 음반에 <신개성난봉가>를 대체하여 재발매를 했다. 가사 가운데 논개·계월향 등 임진왜란 당시 일본 장수를 죽인 사람들이 등장하는 것이 금지역 속내였을 것. 그 해 10, 같은 음반번호에 <장한가> 대신 <신개성난봉가> 수록된 음반이 나왔다.

 

노랫말의 키워드를 풀어보자. 1절은 논개·남강·촉석루다. 이 세 단어를 합치면 임진왜란(1592~1598) 당시 1·2차 진주성전투(1592.11, 1593.7). 2절은 계월향·모란봉·능라도이다. 이 세 단어를 합치면 임진왜란 당시 평양성전투(1592.6.~1593.1). 3절은 황진이·박연폭포인데, 이 둘을 합치면 절개(節槪). 논개는 2차진주성전투에서 왜놈 장수 게야무라 로쿠스케를 익살(溺殺)시켰고, 계월향은 당시 평안도 병마절도사 김응서로 하여금 왜놈 장수 소서비(小西飛)의 목을 베게하고 자결한다.

 

작사가 신불출의 창작적 기치(旗幟)를 칭송해야할 절세절사(節世節辭). 1930년대 초반 춘원 이광수는 일간신문에 <성웅 이순신 칼럼>을 실었었다. 이러한 민족의식 거양(擧揚)을 필치(筆致)가 대중가요 노랫말 작사에 투영되었다는 것이 필자의 생각이다. <목포의 눈물> 2절이 이순신 장군을 서사했음이 그 징표라고 할 수 있다.

 

신불출은 본명이 신영일, 신흥식·신상학이다. 1905년 개성에서 출생하여 1976년 북한에서 저승인이 되었다. 만담가로 잘 알려진 북한의 연극인. 송도고등보통학교를 중퇴하였고, 신불출 예명은 본인이 지은 것. 나라를 강탈당한 시대에 차라리 태어나지 말았어야 한다는 의미, 불출(不出). 그는 1947년 북한으로 갔다. 해방정국기(1945~1948) 치안교란과 연합국비방 죄로 징역 1년을 복역한 후.

 

작곡가 문호월은 1905년 김천에서 출생했다. 나화랑·고려성 형제와 동향이며, 1953년 대구에서 타계했다. 작곡가 손목인과 4촌지간이라는데 고종인지 이종인지가 불명이다. 1933년은 그들 종형제가 작곡가로 히트를 한 해다. 휘문고등보통학교 졸업하였으며, 대표작은 <섬색시>, <노들강변>, <앞 강물 흘러흘러>, <관서천리>, <천리타향>이다. 그의 고향인 김천에는 그의 히트곡 <노들강변> 노래비가 세워져 있다.

 

윤백단(1913~?)은 출생 성장이력이 불명이다. 1920년대부터 연극배우로 극단 토월회와 조선연극사 등에서 활동했다. 배우이면서 노래를 잘하여 막간가수로 활약을 했고 음반도 발표한다. 첫 음반은 1932년 태평레코드의 <할로 서울>이다. 1933년 오케레코드 음반이 이 곡 <장한가>.

 

이 노래와 같은 제목 장한가(長恨歌) 시를 쓴 중국시인 백거이(白居易)는 백낙천(白樂天). 그의 세 벗은 시(()거문고()이다. 취음선생(醉吟先生), 향산거사(香山居士)라 불린 그는 772년 당나라 뤄양(洛陽) 신정(新鄭)에서 출생하여 84674세로 타계했다. 그의 대표적인 장편서사시는 장한가(長恨歌)와 비파행(琵琶行)이다.

 

장한가(長恨歌)는 현종(玄宗)황제와 양귀비(楊貴妃)의 비련(悲戀)에 관한 내용으로 총 4장으로, 1장은 황제와 양귀비와의 만남, 2장은 안녹산(安祿山)의 난으로 몽진하는 길에 양귀비를 어쩌다 죽게 한 황제의 뉘우침과 괴로움, 3장은 환도 후에 양귀비 생각만으로 지내는 황제를 묘사했다. 4장에서는 도사의 환술(幻術)로 양귀비 영혼을 찾아 사랑의 맹세를 확인했으나, 천상(天上)과 인계(人界)의 단절에서 느끼는 뼈저린 아픔과 한탄을 노래했다


양귀비는 현종의 18째 아들 부인, 며느리를 부인으로 맞이한 현종을 어찌 생각해야 하나. 백거이의 장한가, 당나라 현종과 양귀비를 엮은 절창 한 구절을 보자. ‘聖主朝朝暮暮情(성주조조모모정)/ 황제는 아침저녁 양귀비 생각에 잠겨/ 行宮見月傷心色(항궁견월상심색)/ 행궁에서 보는 달에 마음 절로 상하고/ 夜雨聞鈴腸斷聲(야우문령장단성)/ 밤비 방울소리는 애간장 끊어는 소리



유차영 선임기자 / 솔깃감동스토리연구원장

 


 


편집부 기자
작성 2019.02.21 10:38 수정 2019.02.22 11: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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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1-30 10:21:54 / 김종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