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사기행] 미륵산 미래사



미륵산 미래사

 

 

나는 보다 더 단순하고 소박하게

그리고 없는 듯이 살고 싶다.

나는 아무것도,

그 어떤 사람도 되고 싶지 않다

그저 나 자신이고 싶다.

지난겨울이 나에게 고마운 것은

이런 결단을 내리게 해 주었기 때문이다.

 

1983년 샘터사에서 나온 법정스님의 산방한담초판이 나올 무렵 나는 우울한 시대의 중심에서 어쩔 수 없는 젊은 날들을 겨우 보내고 있을 때였다. 위태롭고 위험한 세상을 꾸역꾸역 건너며 이념 따위의 고통이 전부인 냥 그렇게 괴로워하고 있었다. 그래도 세상은 나아지지 않았고 나도 새로워지지 않았다. , , , 소녀, 무지개 같은 아름다운 이름보다 혁명, 데모, 운동 같은 이름들을 더 많이 부르며 나의 젊은 날들은 속절없이 흐르고 흘렀었다. 물론, 나는 그때의 법정스님을 알지 못했다. 그땐, 심장이 뜨거웠다. 종교는 뜨거운 심장에 씨알도 먹히지 않는 빛나는 환각일 뿐이라고 여겼었다. 그랬다. 그땐 그랬다. 1983년 법정스님은 산방한담에서 아무것도 그 어떤 사람도 아닌 나 자신이고 싶다고 뜨거운 고백을 쏟아냈을 때 나는 다만 주체할 수 없는 젊음을 껴안고 시대를 건너고 있었다. 그리고 많은 시간이 흘렀다. 나는 돌아와 누님 앞에선 국화처럼 겸손해졌고 인생에 대해 뭘 좀 아는 나이가 되었다. 그때, 나는 책장 속에 먼지를 뒤집어쓰고 잠들은 법정스님의 산방한담을 꺼내 뒤적이다 그 겨울의 법정스님을 만났다. 불현 듯 빛줄기 하나가 가슴을 훑고 지나갔었다.

 

문득, 바다가 보고 싶었다. 나는 통영으로 차를 몰았다. 동양의 나폴리라는 통영은 활기찬 도시다. 한려수도의 다도해가 아름답게 수놓은 통영은 예술과 역사의 고장이기도 하다. 임진년에 일어난 왜란에 맞서 이순신장군이 조선을 수호한 곳이며 근대사의 예술을 장식한 윤이상 선생과 박경리 선생, 그리고 청마 유치환 선생의 고장이기도 하다. 그렇다. 예술은 통영에서 활어처럼 번뜩 거리고 태평양과 맞닿은 바다의 낭만을 이해 할 수 있었다. 바다는 단순하고 소박했다. 그러고 보니 내 마음속엔 법정스님이 그 겨울에 깨달은 단순하고 소박한삶을 사모했나보다. 아무것도 가지지 않았던 법정스님의 나는 보다 더 단순하고 소박하게 그리고 없는 듯이 살고 싶다.’는 문구가 바다에 와서도 자꾸 떠올랐다.

 

은빛으로 반짝반짝 빛나는 통영 강구안을 둘러보고 나는 미륵산을 올랐다. 바다를 배경으로 우뚝 솟아있는 미륵산 산길을 굽이굽이 오르자 미래사가 있었다. 빽빽하게 들어선 편백나무 숲 사이로 햇볕이 잘 드는 곳에 고즈넉하게 앉아 있는 미래사의 일주문을 열고 들어섰다. 절 안에 들어서자 얌전한 삽살개가 꼬리를 흔들며 반갑게 맞이해 주었다. 절집 개들은 불경을 많이 들어서 그런지 다 도통한 듯 한 표정인데 미래사의 삽살개도 착하고 착한 개였다. 젊은 스님이 지나가다가 삽살개와 한바탕 장난을 치는데 그 모습이 어찌나 천진하고 아름다운지 나는 내내 마음이 평온하다 못해 겸양해졌다.

 



 

대웅전에 들어가 삼배를 마치고 나오는데 젊은 학생들이 우르르 몰려와 참배를 하고 있었다. 누가 불교를 늙었다고 할 수 있을까. 저렇게 참한 젊은이들이 불심의 불을 지피는데 불교는 지금 막 피어나는 꽃봉오리다. 참으로 아름다운 꽃봉오리다. 나는 젊은이들의 참배를 한 없이 부럽게 바라보다가 미소를 가득 머금고 나왔다. 내 젊은 날은 온통 시대적 고통으로 얼룩져 있었지만 이 젊은이들의 세상은 아름답고 행복한 시대의 주인이 되리라 믿고 또 믿고 싶었다.

 

미륵부처가 오실 미륵산의 미래사는 법정스님이 머물며 수행한 절이다. 일제 강점기 때 판사를 하다가 독립군에게 사형언도를 내리고는 너무 괴로운 나머지 엿장수가 되어 전국을 떠돌던 중 금강산에서 머리를 깎고 중이 되었다는 효봉스님이 이 미래사를 세웠다. 효봉스님의 상수제자 구산스님이 주석하셨고 미산스님, 법흥스님, 보성스님, 여진스님, 원명스님, 그리고 지금은 환속하여 시인이 된 고은과 무소유를 실천하고 돌아가신 법정스님이 계셨던 곳이다. 미래사는 불교를 중흥시킨 효봉문중의 발상지다. 통영의 진산 미륵산에 있는 미래사에서 나는 우리시대에 만난 선각자들의 발자취를 더듬으며 그들의 치열했던 수행의 길을 바라보았다.

 

미래사 참배를 마치고 나오는데 삽살개가 꼬리를 흔들며 가지 말라고 한사코 붙들었다. 부처가 다 된 절집 개들의 착한 심성이 이내 부럽고 아름다운데 모든 살아있는 생명은 존귀한 부처의 마음일 것이다. 부처의 마음이 곧 사랑 아니겠는가. 사랑하는 마음이 곧 부처인데 미래사를 나오며 한 없이 꼬리를 흔드는 삽살개의 모습이 오랫동안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미륵산은 바다를 배경으로 그림처럼 앉아 있고 나는 미륵산의 미래사에서 아득하고 아득한 수행의 길을 나 자신에게 묻고 또 물었다. 산을 내려오는데 어디선가 법정스님이 나직이 말하는 듯 했다.

 

나는 아무것도,

그 어떤 사람도 되고 싶지 않다

그저 나 자신이고 싶다.

 



전승선 기자
작성 2019.06.12 14:26 수정 2019.06.12 14: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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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1-30 10:21:54 / 김종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