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세계인의 화두, 자유

홍콩 시위를 주시한다

입력시간 : 2019-06-24 12:16:33 , 최종수정 : 2019-06-24 15:07:13, 이봉수 기자


일찍이 패트릭 헨리는 "자유가 아니면 죽음을 달라"는 명연설을 했다. 자유는 인류의 보편적 가치이며 민주국가에서 보장해야 할 가장 중요한 기본권이다. 홍콩에서 200만 명이 참가한 대규모 시위가 일어났다. 겉으로 보면 범죄인인도 법안에 반대하는 것이지만, 그 본질은 자유수호에 있다. 자유는 물고기에게 물과 같은 것이다. 물속에 있을 때는 그 소중함을  모르지만 물 밖으로 나오면 물고기는 당장 숨을 헐떡이며 죽는다.

지금 자유를 마음껏 누리고 사는 신세대들은 과거 군사독재에 항거하며 자유를 위해 피를 흘린 선배들의 절박했던 심정을  잘 이해하지 못한다. 반면에 한국전쟁 당시 북한 공산치하에서 죽음을 무릅쓰고 남한으로 내려온 사람들은 자유의 소중함을 누구보다도  잘 안다. 이처럼 인간도 물을 떠난 물고기처럼 자유가 없는 곳에 살아 보아야 그 소중함과 절박함을 알 수 있다.

평등도 인류의 보편적 가치임에는 분명하지만 자유에 비길 바는 못된다. 자유 없이는 어떠한 평등도 실현될 수 없기 때문이다. 평등을 강조하는 사회주의 국가들이 자유를 탄압하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북한이 정치범수용소를 운용하는 것이나 중국이 직업훈련소로 가장한 위구르족 수용소를 운용하는 것이 대표적인 예다. 사회주의 국가들은 휴머니즘으로 포장한 평등을 내세워 생산수단을 국유화하고 창출한 부를 공평하게 분배한다고 선전했지만 결과는 일부 공산당 간부들 배만 불린 가장 불평등한 시스템으로 전락하고 말았다.

자유는 생산성과 효율성, 기술혁신 등 경제적 측면에서도 중요한 역할을 한다. 협동농장 보다 개인 텃밭에서 더 많은 수확량이 나오고 실리콘밸리와 같은 자유분방한 곳에서 세계를 선도할 신기술이 나온다. 인간은 자유로울 때 스스로 일할 맛이 나고 창의성이 발현된다. 개인의 자유를 말살하고 억지로 노역을 시키면 생산성과 효율성이 나올 리 없다.

자유가 없는 곳에는 희망이 없다. 국내여행을 다니는 데도 국가의 여행 허가를 받아야 한다면 무슨 재미로 살겠는가. 청년 시절에 국방의 의무를 지고 겨우 2년간 군에서 복무하는 것도 지겨워 죽을 지경이라는 것은 자유가 없기 때문이다. 종교의 자유, 양심의 자유, 언론의 자유, 집회 및 시위의 자유, 표현의 자유, 거주이전의 자유 등이 없다고 가정해 보자. 숨이 막혀서 하루도 살기 힘들 것이다. 죄인을 감옥에 가두는 징역을 자유형이라고 하는 이유는 인간에게 가장 소중한 자유를 빼앗는 형벌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자유의 진정한 의미는 무엇일까. 한 마디로 자유는 자기 마음대로 하는 것이다. 남의 간섭을 받지 않고 자기 마음대로  살아도 되니 얼마나 기분이 좋은가. 그러나 여기에는 전제조건이 하나 있다. 남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 범위 내에서 마음대로 하는 것이다. 남에게 피해를 주는 행위는 자유가 아니고 방종이다. 노상방뇨를 자유라고 하지는 않는다.

자유는 그냥 주어지는 것이 아니다. 이번 홍콩 시위에서 시위대들은 "우리 모두를 다 죽일 수는 없다."는 피켓을 들고 나왔다. 자유가 아니면 죽음을 달라는 말이다. 그래서 자유와 민주주의는 피를 먹고 자라는 나무다.

지금 세계는 자유주의와 전체주의의 대결로 되돌아가는 신냉전의 시대가 되었다. 피로써 쟁취한 자유를 지킬 것인가, 아니면 전체주의의 노예가 되어 살 것인가? 이것이 세계인의 화두로 떠오르고 있다.


이봉수  논설주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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