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사기행] 봉화 지림사




봉화 지림사

 

나는 한때 한 여자를 알았지. 아니, 그녀가 한때 나를 알았다고 얘기해야 할지도 몰라. 그녀는 내게 자신의 방을 보여주며 말했네. ‘좋지 않아요?’라고. 그녀는 내게 그곳에 머물러 달라고 청하면서 어디에든 앉으라고 말했네. 그래서 난 주위를 돌아보았지만 거기에는 의자가 하나도 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어. 난 양탄자 위에 앉아서 시름을 잊고 그녀의 포도주를 마셨다네. 우리는 두 시까지 얘기했어. 그녀는 이제 잠자리에 들어야 해요.’라고 하면서 내일 아침에는 일해야 한다고 내게 말하며 웃기 시작했다네. 나는 내일 일을 안 해도 된다고 얘기해 주면서 잠자리에 기어 들어갔다네. 내가 깨어났을 때 나는 홀로였고, 새는 날아가 버렸다네. 그래서 난 불을 지폈지. 좋지 않아? 노르웨이 숲에서.

 

비틀즈가 노래한 노르웨이 숲이 떠오른다. 몽환적이고 신비스러운 음색은 젊은 날의 고뇌를 감싸주기에 충분한 노래였다. 세계의 젊은이들이 좋아하는 일본 소설가 무라카미 하루키의 소설 노르웨이의 숲도 아마 그럴 것이다. 비틀즈의 노르웨이 숲에서 영감을 얻어 썼다는데 노르웨이라는 어감이 주는 느낌은 묘한 그리움 속을 넘나든다. 지평선 저쪽에서 달려온 바람 한 점이 관능으로 흐르는 노르웨이 숲에서 속된 사랑은 몽환처럼 사라지고 말 것이다. 사라지는 것은 다 아름다운 것이기에 사라지고 말 사랑이나 그리움 같은 것들의 환상 속으로 기꺼이 들어가지 않던가. 노르웨이 숲을 떠올릴 때마다 나는 봉화군 물야면의 지림사를 생각했다. 지림사라는 이름 때문이기도 하지만 소백연봉을 내달리던 바람이 물야면 들판을 지나 지림사 숲으로 귀순하고야 마는 관능의 피안 같은 느낌의 절이기 때문이기도 했다.

 

따지고 보면 지림사는 노르웨이 숲보다 더 신비롭고 아름다운 숲일 것이다. 물야면의 너른 벌판을 한참 걷다 보면 나지막한 산이 하나 보이는데 그 산 아래 고요하게 앉아 있는 절이 지림사다. 지혜의 숲이라는 이름답게 지림사는 벌판을 마주보며 뒤로는 은자의 거처 같은 숲을 두고 있다. 지림사를 동양의 노르웨이 숲이라고 해도 틀린 말은 아닐 것이다. 절에서 들판을 바라보면 거침이 없이 확 트인 푸른 벌판이 놓여있고 또 벌판에서 지림사를 바라보면 작은 숲을 병풍처럼 두르고 있다. 첩첩오지의 봉화에서 몇 안 돼는 너른 들판을 정원으로 둔 지림사는 노르웨이 숲처럼 언어의 등에 올라타서 서정을 풀어내는 숲이 아니라 자연과 인간이 만들어낸 인본주의로 소통되는 조화로운 숲인 것이다.

 

계절의 여왕이 납신 오월 초에 봉화로 여행을 떠나면서 봉화 초입에 있는 지림사를 둘러보지 않을 수 없었다. 작년 겨울이 시작될 무렵에 한 번 다녀왔었지만 그때 지림사의 겨울은 노르웨이 숲처럼 온몸을 찌르는 전율과도 같은 몽환적인 느낌을 지울 수가 없었다. 그래서 다시 찾아왔다. 이 봄에, 계절의 여왕 오월에 봄 향기의 선율을 품어 내는 지혜의 숲에서 부드럽고도 명랑한 미소를 지닌 마애불여래좌상을 만나고 싶었다. 바위를 뚫고 나와 중생의 고뇌를 다 없애 주려는 듯 현현한 저 눈빛을 보며 나는 지림사에 다시 온 것을 다행이라 생각했다.

 

대웅전에서 기도를 하고 있는 부지런하고 깔끔한 비구니 스님의 등 뒤에서 조용하게 삼배를 마치고 나왔다. 작년에 지림사에 왔을 때 비구니 스님과 긴 시간 이야기를 나눴는데 그때 참 부지런하시고 깔끔한 스님이라는 걸 알아볼 수 있었다. 자분자분 일을 얼마나 하셨는지 손마디에 군살이 배기고 얼굴은 햇볕에 그을려 있었다. 그래도 어찌나 미소가 맑고 향기롭던지 비구니 스님과 이야기 나누는 내내 나의 마음까지 맑고 향기로워지는 듯 했었다.

 

 



부처님 오신날을 앞두고 지림사의 마당엔 연등이 봄바람에 휘날리고 있었다. 저마다 소원 하나씩 품고와 매달아 놓은 연등은 하늘높이 날아가 부처가 되고 말 것이다. 어린 아이의 소원도 늙은 부모의 소원도 모두 연등처럼 빛나는 지림사에 봄볕은 유난히 찰랑거리며 연등위에 내리고 있었다. 어린 아이를 유모차에 태우고 온 젊은 부부가 마애불여래좌상 앞에서 오랫동안 기도를 드리고 있었다. 그 모습이 아름답고 경건해서 나는 차마 볼 수가 없었다. 애써 태연한 척 했지만 내 기도의 초라함과 어눌함이 저 젊은 부부의 뒷모습과 겹치면서 나는 괜히 먼 들판으로 눈길을 돌리고 말았다.

 

태백산 줄기를 따라 흘러오다가 소백산에서 낙동강 상류를 품고 있는 봉화는 빼어난 자연을 숨겨둔 아름다운 곳이다. 산이 깊이니 물도 깊고 바람도 쉬이 산을 넘지 못하는 물야면의 지림사는 부석사로 가는 길목에 있다. 신라의 부처를 경배하고자 500여명의 수도승들이 있을 정도로 큰 사찰이었지만 정조 때 저술한 신증동국여지승람에 적혀 있는 것을 보면 지림사는 문수산에 있다라는 기록이 있는 것으로 보아 조선 중기까지 큰 사찰의 면모를 잃지 않고 있었던 것으로 추측된다. 하지만 불타 없어졌다느니 축서사 때문에 사세가 기울어서 없어졌다라는 소문만 무성하게 전해오고 있었다. 그러다가 1949년경에 한 승려가 법당을 세우고 수월암이라고 불렀다고 한다. 그 후 땅속에 묻혀 있던 국보201호인 마애불여래좌상을 발견하여 지림사라는 이름을 되찾아 불사를 다시 하고 전통을 이어 오고 있다.

 

노르웨이 숲이 떠오를 때마다 나는 지림사를 생각한다고 한 그 생각 속을 걸어 나와 지림사를 다시 보니 이름과 이름 사이의 의미는 기억과 추억 사이의 관념일지 모른다. 때때로 그렇다. 기억이 그렇듯이, 추억이 그렇듯이, 물야면 지림사를 생각할 때마다 나는 아마 지혜의 숲이라는 관념 대신 마애불여래좌상을 생각하고 부처를 생각하게 될 것이다. 그럴 것이다.







전승선 기자
작성 2019.07.01 10:26 수정 2019.07.01 10: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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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1-30 10:21:54 / 김종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