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계봉의 인문기행] 트라카이성에서 자유와 열정의 리투아니아를 만나다

리투아니아의 자존심, 트라카이(Trakai)


발트 3국은 서로 비슷하지만 다른 사람들이 살고 있다. 라트비아, 에스토니아와 달리 중세 무렵 강성한 통일 왕국을 건설하여 십자군의 동방 진출을 저지하고, 러시아의 서부 확장을 막아 발트 해에서 흑해까지 영토를 확장하여 동유럽의 맹주로 군림했던 나라.


역사가 있는 나라.

유럽 농구 최강인 나라.

눈보다 마음으로 느낄게 많은 나라.

 

리투아니아의 시초는 공국으로 출발한다. 13세기 중반 민다우가스가 즉위하면서 통일 국가의 면모를 갖추게 된다. 그는 최초의 리투아니아 왕이자 최초의 기독교 세례를 받은 왕이기도 하다. 승승장구 하던 리투아니아 공국은 동유럽 최강 국가가 되지만, 폴란드-리투아니아 연방국이 되면서 사실상 리투아니아가 폴란드에 예속된다. 1차 대전 직후 리투아니아는 최초로 독립을 이루었으나 폴란드에게 수도 빌뉴스를 불법 점령당하고, 2차 세계대전이 발발하던 때까지 카우나스가 리투아니아의 임시수도가 되어서 현대사의 서곡을 알리는 역사적 사명을 수행하기도 한다.

 

리투아니아의 두 번 째 도시 카우나스에서 트라카이 가는 길은 작은 구릉이 이어지는 언덕길이다. 발트 3국 중 위도가 제일 낮은 탓인지 자작나무는 덜 보이고 밀밭, 수수밭 농장, 사과밭 과수원들과 크고 작은 호수들이 계속 보인다. 구릉이 많다 보니 호수도 28만개나 된단다.

 

 


 

카우나스를 출발한 지 1시간 만에 트라카이의 호숫가에 도착한다. 아침 햇살이 갈베 호수 위로 퍼져간다. 고딕 양식의 붉은 벽돌로 지어진 트라카이 성빛의 삼원색 속에서 호수 가운데 도도하게 자태를 뽐내고 있다. 이 모두가 동화 속 한 폭의 수채화다.


갈베 호수 숲의 초록색, 하늘의 파란색, 트라카이 성의 붉은색. 오래도록 발길을 멈추고 하염없이 호수를 바라본다. 언어로 옮기기 힘든 감흥이 그렇게 시나브로 시작된다. 우거진 숲들의 향기가 꽃들처럼 피어나고 수십 개의 호수가 빛으로 가득 찬 환희의 세상이 연출된다.

 

호수는 물을 담고 마음을 담는다.

호수는 아름다움이고 그리움이다.

호수 속의 성은 이제 흥망성쇠의 희노애락을 다 내려놓고 있다.

 

트라카이는 14세기 초 빌뉴스(Vilnius)로 천도하기 전까지 리투아니아의 수도였다. 독일 기사단 침입에 대응하기 위해 케스투티스에 의해 공사가 시작되었으며, 1430년 그의 아들인 리투아니아의 영웅 비타우타스에 의해 준공된 성은 난공불락의 요새였다.


독일기사단들의 침략이 한풀 꺾이고 수도마저 빌뉴스로 옮겨가자 트라카이 성은 쇠락의 길을 걷게 되고, 그 이후로 수십 차례의 전쟁을 겪으면서 완전히 폐허가 된 채 역사 속에서 잊혀 진다. 하지만 20세기 초 성 주변에서 다양한 중세 유물이 발견되면서 학계의 관심을 끌게 되었고, 1960년대부터 본격적인 복원과 발굴사업을 거치면서 현재의 모습으로 다시 태어나게 된다.


 


하얀 요트는 푸른색 천연 물감을 풀어 놓은 갈베 호수 위를 유유히 가른다. 40대 초반의 핸섬하게 생긴 요트 선장은 침이 마르도록 트라카이를 자랑한다. 200여개의 호수, 울창한 숲, 섬 가운데 붉은 성, 중세를 배경으로 한 여러 영화의 촬영지, 수심 40m의 호수 아래에서 올라오는 맑고 깨끗한 용천수, 유럽 최강 리투아니아 농구까지...


슬로베니아의 블레드 섬과 분위기가 비슷하다고 얘기했더니 말도 안 되는 소리라고 펄쩍 뛴다. 선장의 유별난 트라카이 자랑은 요트를 탄 30분 내내 계속된다.


요트는 붉은 깃발이 힘차게 휘날리는 트라카이 성에 우리를 내려놓는다. 14~15세기에 걸쳐 세워진 이 성은 지어질 당시에는 지금보다 해수면이 2m나 높아서 섬이 세 개로 나뉘어져 있었다고 한다

 

트라카이 성의 본채로 들어선다. 붉은 벽돌이 주는 강한 첫 인상과 다르게 성 내부는 유럽의 화려하고 거대한 성들과 다르게 소박하고 어두운 편이지만, 성의 곳곳에 작지만 강한 리투아니아의 역사가 켜켜이 쌓여있다.


 

 

독일의 위협에 대응하기 위해 요가일라 대공은 폴란드 앙주 왕조의 여왕 야드비가와 결혼해 폴란드와 동맹관계를 수립하고, 그 결과 튜튼 기사단을 무찔러 독일의 침략을 저지하지만 동맹 조건의 하나로 로마 가톨릭교를 수용하게 된다. 이 과정에서 폴란드와 동맹을 못마땅하게 여긴 비타우타스와 갈등을 겪게 된다.

 

성은 방어용 성채지만 예배당, 감옥, 생활 주거 공간을 갖추고 있다. 본채의 안뜰. 외부에서 다리나 계단을 타고 성안으로 들어갈 수 있지만 위급 상황 시는 외벽에 설치된 회랑과 계단을 제거하여 외부인이 성내로 들어올 수 없게 되어 있고, 탑의 꼭대기에는 대포를 설치했다고 한다.

 

 


 

성 안에는 이 성의 주인이었던 리투아니아의 대공작들 초상화와 과거 기사들이 착용했던 방패, , 칼 등의 병기들이 진열되어 있다. 요가일라의 조카이자 후계자인 비타우타스는 벨라루스와 우크라이나, 그리고 러시아 일부를 포함해 발트 해에서 흑해까지 영토를 확장시켜 리투아니아 최고의 전성기를 이루고, 1430년 이 성에서 사망한다.

 

 

 

성 구경을 마치고 타타르인들의 전통요리 키비나이를 먹기 위해 호숫가 식당으로 이동한다. 성을 방어하기 위해 용병으로 이곳에 이주해 온 터키계 타타르인들은 이 지역의 주거와 음식 문화에 큰 영향을 미치게 된다.


호숫가에는 아기자기하게 나무로 지은 타타르인 전통 가옥 모양의 예쁜 키비나이 식당들이 많다. 빵에 고기 채워 오븐에 구운 만두 모양의 키비나이는 겉은 밀가루 반죽을 구운 바삭바삭한 빵이고, 속에는 시금치, 치킨, 고기 등 다양한 재료가 들어간다.

 

 


 

트라카이에서 30분 거리에 있는 빌뉴스의 구시가지는 향기 나는 도시라고 부른다. 붉은 벽돌로 휘감긴 고풍스러운 바로크 양식들이 주를 이루는 빌뉴스의 역사 지구는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등재되어 있는데, 폴란드, 벨라루스, 우크라이나 등 주변 국가들의 문화적 중심지로 활약하던 중세 시대부터 이어진 역사의 숨결이 골목마다 은밀한 향기를 내품으며 우리를 유혹하기 때문이다.

 

 




이제 빌뉴스 구시가지 새벽의 문을 통해 600여 년 전 중세 도시를 떠나야 할 시간이다.

 

통한과 절망의 늪에서도 고유의 문화와 언어를 지켜낸 발트 3국과 암울한 식민지 시대를 극복한 우리나라.

그들의 광장에 새겨진 발트의 길과 우리의 촛불 항쟁이 서로 오버 랩 되면서 느끼게 된 시공을 초월한 공감들.

그동안 발트 3국의 하늘을 뒤덮었던 검은 구름은 물러나고, 눈 보다 더 하얀 구름이 하늘을 채우리라.

 

이들 세 나라의 추억들을 잠시 복기하는 동안 어느새 비행기는 파란 하늘 아래 빨간색 지붕, 초록빛 나뭇잎이 한데 어우러진 빌뉴스 상공을 힘차게 날아오르고 있었다.




여계봉 선임기자

 




 












편집부 기자
작성 2019.07.15 10:32 수정 2019.07.15 10: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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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1-30 10:21:54 / 김종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