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사기행] 중국 상해 정안사




중국 상해 정안사

 

그곳을 향하는 길, 고요하고 편안한

 

중국 동방항공 비행기의 트랩을 오르면서 나는 저물어가는 이천십사 년의 마지막 날을 서울과 상해에서 사이좋게 보내고 있었다. 겨울답지 않게 포근한 날이었지만 두꺼운 오리털파카를 입고 상해로 가는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친절하지만 미소가 적은 중국승무원들의 바지런한 움직임은 비행 내내 계속되었고 나는 그들의 덜 세련된 서비스를 무심하게 바라보면서 상해에 도착했다. 상해는 특별한 인연의 도시다. 그 특별함은 상해와 서울을 가족이라는 하나의 울타리 안으로 관계를 묶어주었다. 사람 사는 세상이 다 그러하듯 상해에서의 며칠은 설렘과 기대로 무난하게 보냈다.

 

상해에서의 일정 중에 나는 정안사를 순례하는 것에 가장 큰 중점을 두었다. 상해 정안사역에 도착했을 때 나는 좀 놀랐다. 도시 한가운데에 역과 절이 사이좋게 공존하고 있었고 그 둘레엔 빌딩들이 호위하듯 쭉 둘러쳐져 마치 현대와 고대가 나란히 손을 잡고 있는 것 같았다. 근대에 중국은 공산주의와 문화혁명을 거치면서 종교를 배격하고 파괴했지만 그 유구한 문화의 정신은 꺼지지 않고 살아남아 지금도 당당하게 사람들의 마음을 위로하고 있었다. 정안사도 그렇게 종교적 맥을 유지하며 이천십사 년 마지막 날까지 살아서 나를 반기고 있으니 참으로 대견했다.

 

나는 서울에서의 요란스럽고 번로했던 마음을 정안사까지 끌고 온 것이 미안해 얼른 대웅전으로 들어가 부처 앞에 내려놓고 두 손을 모아 합장을 했다. 나는 매번 연말쯤이면 현기증 나는 두통에 시달리며 한해의 마무리를 힘겨워했었다. 출판생태계에서 강자는 늘 강자로 군림하고 약자는 항상 허덕이며 출판의 함정에 빠져야 하는 것에 넌덜머리가 나 있었다. 착한 자본주의의 환상에 사로잡힌 나의 정신적 유희를 과감하게 버릴 때가 되었다고 입버릇처럼 내뱉고 다녔지만 난 여전히 사리분별에 약한 판타지형 인간이었는지 모른다. 이 지난한 인생에 그런 판타지라도 없으면 어떻게 사느냐고 스스로 위로하면서 말이다. 상해 정안사 부처님이 나의 마음을 다 아시는 듯 나를 물끄러미 바라보는데 얼굴이 화끈거려 대웅전 밖으로 나오고 말았다.

 

밖에서 바라보는 정안사는 웅장하고 아름다운 건축의 미가 돋보였다. 대륙다운 면모를 드러내며 힘없고 고달프고 괴로운 인생들을 한껏 품어줄 것 같았다. 모두 이곳에 오면 구태여 눈감고 기도를 하지 않아도 뇌가 명량해져서 진리는 깨닫지 못할지라도 세상쯤은 깨달을 수 있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사람들은 저마다 고뇌덩어리를 한 짐씩 지고와 부처 앞에 내려놓으며 간절한 기도를 올리는데 나는 한 없이 맑고 푸른 상해의 하늘을 올려다보며 서울에서의 지난한 일들을 저 하늘로 털어내려고 안간힘을 쓰고 있었다.

 

 



순례는 대담하게 여행은 섬세하게

 

삼국지에 나오는 오나라의 손권이 지었다는 이력대로 정안사는 상해사람들과 동고동락을 같이한 절이다. 강남지역에서 가장 오래된 역사를 지닌 정안사는 원래의 이름이 중원사로 오송강 북안에 있었다고 한다. 세월을 따라 여러 이름으로 바뀌어 불리다가 북송의 태종 때 지금의 정안사로 안착되었다고 한다. 그러나 원래의 절터가 있던 곳이 강물이 범람하는 바람에 지금의 상해 도심으로 이전했는데 특히 원나라 때는 불교가 번성하여 사람들이 많이 찾는 아주 큰 절이었다고 한다.

 

절이나 국가나 사람이나 영원한 것이 없듯이 정안사도 역사 속에서 흥망성쇠를 거듭 하며 긴 시간을 이어 지금까지 내려오고 있다. 한때는 사찰 내에 정안8경이 생겨나고 명태조가 동종을 만들어 지금까지도 사찰의 보물로 전해지고 있지만 1860년에는 태평천국의 군대가 상해로 진격해와 대부분 절이 파괴되었다. 그러다가 1880년에 여러 사람들이 공동으로 돈을 출자해서 다시 중건했다고 한다. 그러나 1966년 문화대혁명 시기에 절의 모든 것들이 철저하게 파괴 되었고 주지스님은 강제로 환속을 해야 하는 박해를 받았다. 이후 1984년부터 중건을 하여 지금은 대륙에서 가장 중요한 밀종인 진언종의 도량이 되었다고 한다. 이 얼마나 불완전한 시간 속에서 완전한 가능성에 도달하고자 하는 역사의 수레바퀴인가.

 

나는 고요하고 편안한 정안사의 곳곳을 둘러보며 오나라의 손권이나 중화민국의 모택동이나 절 앞에서 일없이 서성이는 누추한 어느 중국인이나 서해 바다를 건너온 나 자신이 실은 같은 사람이 아닐까 하는 의문에 사로잡혔다. 이 의문에 유혹당하지 않으려고 머리를 가로저어 보았지만 이런 의문을 이미 다 알고 있는 정안사의 부처는 보일 듯 말 듯 한 미소만 건네주고 있었다. 그래, 나는 그저 중생의 범주 안에서 순례를 다 하는 것이 여행의 목적이 아니던가. 복잡하고 다단했던 마음을 명량하고 깨끗하게 정화시켜 다시 돌아가 새롭게 살아낼 서울의 날들을 만나면 되는 것이다. 인식의 비약을 접어두고 저 진리의 보편성으로 나아가는 일주문을 지나 정안사 밖으로 나왔다.

 

저녁 해가 뉘엿거리는 정안사역으로 걸어가는데 인산인해를 이루는 대륙의 거대한 사람물결을 보았다. 저 많은 인파속을 걸으며 나는 마치 시간여행자 같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었다. 어느 시간별에서 한번쯤 만났을 것 같은 사람들이 나를 지나쳐 갔다. 생각해 보면 이 우주에 있는 지수화풍이 골고루 그들과 나를 감싸고 있지 않았던가. 그러하기에 마치 언젠가 만난 적이 있는 것 같은 느낌을 들었을 것이다. 모두가 인연의 실타래에 묶인 인드라망 같은 존재라는 생각에 미치자 정안사를 다녀오는 나의 마음이 한결 가벼워졌다.





전승선 기자
작성 2019.07.22 08:30 수정 2019.07.22 08: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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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1-30 10:21:54 / 김종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