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계봉의 인문기행] 노르웨이 트롤퉁가(Trolltunga), 그 혀끝에 서다

인생에서 또 하나의 버킷 리스트가 실현되는 순간


2013년쯤 인가? 우연히 유튜브를 통해 동영상 하나를 보자마자 그냥 심장이 벌렁대기 시작한다. 길게 혀처럼 쑥 빠져나온 700m 바위 끝에 맨손으로 달랑 매달려 있는 어떤 남자의 모습을 보고 무섭고 충격적이다는 느낌보다 신선하고 파격적이다는 생각을 하게 되고, 바로 인터넷 검색에 들어간다. 그리고는 가슴 속 버킷 리스트에 적어 넣는다.

 

기다려라. 트롤! 네 혀끝에 서는 그날까지.

 

트롤(Troll)’은 도깨비 형상을 한 노르웨이의 요정이다. ‘퉁가(tunga)’는 혀를 의미한다. 그래서 트롤퉁가는 악마의 혀로 불린다. 이곳은 아무 생각 없이 쉽게 뒷동산 올라가듯이 갈 수 없는 곳이다. 왕복 22km10~12시간이 걸리는 여정이다. 무엇보다 조건이 까다로운 것은 눈 때문에 6~9월 사이에만 갈 수 있다는 사실이다. 10~5월 사이에는 등산로에 꽂혀있는 길이 2m 이상 되는 나무 막대가 보이지 않을 정도로 눈이 많이 온다. 그나마 가이드 없이 갈 수 있는 시기는 7, 8월 두 달 뿐이다. 5, 9월 두 달은 유료 가이드를 동행해야 올라갈 수 있다. 그리고 올라가서 먹을 식사와 간식도 챙겨야 한다. , 물은 필요 없다. 빙하 녹은 물이 중간 중간에 지천으로 널려 있기 때문이다.

 

노르웨이 시골 마을 오따에서 하루를 묵은 우리 일행은 아침 일찍 차로 20분 정도 달려 트롤퉁가 주차장인 스케르달에 도착한다. 이른 아침인데도 위쪽 주차장은 만원이다. 할 수 없이 제일 아래 주차장에 주차한다. 여기서 제일 위 주차장 까지는 2km를 걸어서 가야 한다. 그러면 왕복 26km를 걸어야 된다. 계획보다 4km를 더 걷게 되어 입이 나온 일행들을 다독거린 후 원기 넘치게 파이팅을 외치고 출발한다.

 

1시간 정도 대관령 고갯길 같은 꼬불꼬불한 산길을 지루하게 오른다. 높은 곳이라 그런지 큰 나무가 보이지 않고 마치 외계 행성 같은 황량한 벌판 사이에 난 길을 계속해서 걷는다. 4km 지점에 도착하니 표시판에 ‘1시 이후에 도착하면 돌아가시오.’ 라고 적혀 있다. 한라산 진달래 대피소에 있는 표시판과 어찌 내용이 이리 같을까. 이 시간대에 이곳을 지나며 표시판을 보는 사람들 심정은 한라산을 등반해 본 사람이라면 모두 다 안다. 우리는 일찍 출발해서 시간이 넉넉한데도 이 표지판을 본 순간 본능적으로 발걸음이 빨라지기 시작한다.

 




트레킹 중에 갈증이 별로 없는데도 길가에 고여 있는 빙하 녹은 물을 수시로 마신다. 언제 또 수 만 년 전 태고의 순수 그 자체인 빙하수를 마실 수 있단 말인가.

3시간쯤 트레킹을 계속하자 발 아래로 멋진 호수가 나타난다. 발전용으로 만든 인공 댐 링게달 호수다. 위에서 보니 마치 노르웨이를 상징하는 피오르드 같다. 오늘 우리 남정네들이 땀 흘리며 10시간 이상을 트레킹 하는 동안에 마누라들은 저 호수에서 유람선을 타며 희희낙락 한다. 진정 누가 행복한 사람들인지는 잠시 후 트롤퉁가를 만나는 순간 결판이 난다.

 

링게달 호수가 내려다보이는 전망대 바위 위에서 영국에서 온 한 무리의 젊은 남녀 대학생들과 점심을 같이 먹는다. 이 학생들은 어제 이곳에 도착해서 주차장 위쪽에 텐트를 치고 밤을 보냈다고 한다. 자유롭고 호기로운 이들의 청춘이 부럽다. 같은 시절이 있었건만 아르바이트 해서 학비와 용돈 버느라 아등바등하다 보니 청춘은 어느 새 우리와 작별하고 말았었지.

 

한국 라면 자랑한다고 맛만 보여준 컵라면을 이 친구들이 몽땅 접수하는 바람에 말라빠진 빵조각만 씹게 된다. 그런데 사진 전공하는 학생 하나가 트롤퉁가 바위 위에서 우리 인증 샷을 작품 수준으로 찍어서 메일로 보내주는 바람에 라면 값을 결국 몇 배로 돌려받게 된다.

 

트레킹을 시작한 지 거의 5시간 만에 오늘의 목적지인 해발 1,200m의 트롤퉁가에 도착한다. 바위 위쪽에 오르기 위해서는 철근으로 만든 사다리를 타고 내려가서 기다려야 하는데 전 세계에서 온 50 여명의 사람들이 인증 샷을 찍기 위해 줄을 서서 대기하고 있다. 기다리는 게 뭐 대수인가. 자기 차례 까지 한참을 기다려야 하지만 바위 위에서 인증 샷 찍고 있는 사람의 동작 하나 하나에 환호하며 박수를 치고 있다. 이곳에 온 모두가 국적과 인종,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서로 즐기고 있다.

 

 


드디어 내 차례다. 사실 출발 전에 인증 샷 준비를 많이 했다. 물구나무서기, 바위 끝에 걸터앉기, 가부좌 틀기, 점프 샷... 등등. 바위 가운데에서 가부좌는 한방에, 점프 샷은 서너 차례 시도한 끝에 OK 사인이 떨어진다. 여기저기 박수 소리가 터져 나온다. 그런데 바위 끝 걸터앉기에 도전하기 위해 바위 끝으로 다가서니 700m 아래 아찔한 절벽 너머로 깊고 푸른 호수가 삼킬 듯이 다가온다. 두 다리가 사정없이 떨리고 오금이 저려온다. 순간 2015년 호주 여학생이 여기서 셀카 찍다가 떨어져 사망한 사건이 불현 듯 떠올라 짧은 망설임 끝에 과감하게 돌아선다.

절반의 성공. 하지만 즐겁고 행복하다.

 

내 인생에서 또 하나의 버킷 리스트가 실현되는 순간이다.

 

 

본문의 삽화는 카툰 캠퍼스에서 고구마 선생님(본명 이대호)으로부터 6개월간 만화를 배운 후 그린 어설픈 작품이다.

 


 


여계봉 선임기자

 

 












 



편집부 기자
작성 2019.07.22 08:46 수정 2019.07.22 08:46
Copyrights ⓒ 코스미안뉴스. 무단 전재 및 재배포금지 편집부기자 뉴스보기
댓글 0개 (/ 페이지)
댓글등록- 개인정보를 유출하는 글의 게시를 삼가주세요.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2023-01-30 10:21:54 / 김종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