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사기행] 중국 항주 영은사

 



중국 항주 영은사

 

 

궁즉통窮卽通, 궁하면 통한다.

 

궁하면 변하고, 변하면 통하고, 통하면 오래간다고 주역에서는 우주법칙을 들어 설명을 하고 있다. 최선을 다해 노력해야 변화가 생기고 변화가 생겨야 비로소 길이 뚫리며 그러한 노력의 결과라야 오래도록 지속된다. 이천십오 년 새해 벽두를 항주에서 시작하면서 나는 오랫동안 마음에 담고 있던 항주 영은사를 순례하기로 했다. 궁즉통의 소망이 발현되기를 기원하며 내 삶의 새로움의 시작을 영은사로 택했다.

 

밝아오는 새해의 기운을 담아 천축산으로 가는 길은 겨울답지 않게 따뜻했다. 이천십오 년은 내안의 의미와 가치를 새롭게 재편성하는 해가 될 것이라고 스스로 예견했다. 그것은 궁즉통의 원리와 같은 것이다. 오랫동안 나는 생각의 집에서 내 삶의 가치를 키워왔다. 가치의 나무에 물을 주고 햇살도 받게 해주고 바람이 잘 통하도록 꾸준히 살피며 노력해왔다. 나는 이런 나의 사유를 신뢰했다. 그러므로 새해 벽두에 항주 천축산으로 가는 발걸음은 가벼웠고 마음은 어린아이처럼 들떠 있었다. 새해의 염원을 담아 천축산으로 밀려드는 항주사람들의 행렬 속에 끼어 낯설고 물설은 항주 땅을 밟으며 올라갔다.

 

멀리 있는 지인들은 내가 항주여행을 왔다고 하자 자못 걱정스런 문자를 보내왔다. 중국인들의 기에 눌리지 말라느니, 혼자가면 십리도 못가서 발병이 난다느니 하면서 놀리기도 했지만 나는 그들의 귀여운 메시지에 오케이 이모티콘을 넣어 전송하면서 이 아름다운 항주를 진작 오지 못한 것을 아쉬워했다. 산이며 들이며 호수며 옛사람들의 발걸음이 머문 곳마다 스토리텔링이 살아 숨 쉬고 있는 항주는 그야말로 문화콘텐츠의 도시라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수많은 이야기들이 역사를 타고 이어져 내려오면서 신화가 되고 설화가 되고 때론 전설이 되어 항주를 항주답게 만들고 있었다. 나는 기회가 닿는다면 항주의 스토리텔링을 발굴하여 새로운 문화콘텐츠로 만들고 싶다는 생각이 강렬하게 일어났다.

 



 

'하늘에는 천국, 지상에는 항주'

 

월나라의 아름다운 여인 서시西施를 서호에 비유해 노래한 소동파도 아마 서호의 아름다움에 빠져 헤어 나오지 못하고 이런 시를 남겼나 보다. 오나라를 망하게 할 정도의 미모를 갖춘 아름다운 여인 서시西施라면 분명 소동파뿐만 아니라 외계인이라도 유혹당하지 않았을까 싶은 생각이 불현 듯 들었다.

 

물빛이 빛나고 맑으니 마침 좋고

비 오는 모습과 어우러진 산색이 또한 기이하네.

서호를 서시에게 비교한다면

옅은 화장이나 짙은 화장이나 다 아름답다

 

나는 서호에게 빼앗긴 마음을 추스르고 천축산 영은사 입구에 도착했다. 영은사 맞은편 비래봉에는 환상적인 동굴이 있었다. 동굴로 들어가 보니 쟁반만큼 둥글게 뚫린 곳으로 푸른 하늘이 금방이라도 내려올 것 같았다. 비래봉 옆 절벽에는 330개가 넘는 석굴 조각상이 촘촘하게 새겨져 있었는데 인도의 스님 혜리가 비래봉을 보고 봉우리가 마치 부처께서 세상에 계실 적에 신령이 되어 숨어 지내던 영취산 같다고 하여 영은사라는 이름을 붙였다고 한다. 비래봉 절벽을 따라 쭉 올라가면서 석굴에 새겨진 부처님께 경배하다보니 어느새 대웅보전 앞에 다다랐다. 영은사의 대웅보전은 중국 단층건물 중에서 가장 높은 건물로 한때는 3,000명을 넘는 신도가 부처의 가르침을 따르고자 드나들었던 곳이다. 지금은 규모가 많이 작아지고 신도도 줄었지만 중국의 다른 사원들보다 웅장하고 아름다운 자태를 보여주고 있다.

 

중국불교의 선종십찰禪宗十刹 중의 하나인 영은사는 청나라의 강희제가 쓴 운림선사云林禅寺라는 편액이 걸려있고 1956년에 주은래 총리의 지시로 만든 높이 19.6m의 부처 연화좌상이 있다. 중국불교문화의 집합체 같은 각종 유물들이 이곳을 찾는 사람들의 시선을 사로잡는데 마치 이천오백 년 전 인도 천축국에 와 있는 느낌이 들었다. 아마도 불심이 자리하고 있는 중국인들의 마음속 깊은 곳에 영은사는 그들 삶의 또 다른 모습이 아닐까 생각해 보았다.

 

다시 발걸음을 옮겨 오백나한전으로 갔다. 청동으로 만들어진 오백 명의 나한들이 각기 다른 인간고뇌를 극복하고 아라한이 되어 영은사에 모셔져 있었다. 그런데 오백나한 중에는 우리나라의 조사선사 중의 한명인 무상선사가 있다고 한다. 455번째가 바로 무상선사인데 신라의 스님이다. 동양불교에서 그토록 섬기는 육조혜능도 500나한에 포함되지 않았는데 당당하게 신라스님인 무상선사가 포함되었다고 한다. 이는 동아시아의 불교사를 뒤엎고도 남을 만한 역사적인 일이라고 한다. 우리나라 역사학자들 중심으로 발족된 무상발굴팀에서 수 없이 많은 현지답사를 통해 발굴해낸 것이라고 한다. 이러한 사실은 천축산 영은사를 다녀온 후에 우연히 자료를 찾아보고 알았다. 진작 이 사실을 알았더라면 500나한전에서 455번째 있는 무상선사 앞에서 경배하고 왔을 것인데 아쉬웠지만 덕분에 무상선사에 대한 공부를 좀 더 할 수 있었다.


차나 한 잔 하시게

조주선사의 이 한마디가 천오백년 전 무상선사를 깨우친 것처럼 내게도 새해의 화두가 될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전승선 기자
작성 2019.07.29 10:31 수정 2019.07.29 10: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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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1-30 10:21:54 / 김종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