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계봉의 산정천리] 신들의 정원, 중국 황산(黃山)

비 개인 오후의 수채화 같은 황산 속으로 빠져들다


신들의 정원 황산을 보기 위해 여름날 새벽 일찍 황산 시내 호텔을 나선다. 명나라 여행가 서하객(徐霞客)황산에서 돌아오면 오악(五岳)을 보지 않고, 오악에서 돌아오면 산을 보지 않는다.”라고 황산을 찬미했다. 중국 안후이성(安徽省)에 있는 황산은 그다지 높은 산은 아니지만 기암괴석과 낙락장송이 일품이고 운해가 낀 풍경은 마치 신선들이 사는 선계를 연상하게 한다. 산신들의 발자국을 따라가다 보면 과연 그들의 초옥 앞마당에 깃들 수 있을까.

 

황산 톨게이트에서 경대고속도로로 들어서자 도로 좌우로 차밭이 2시간 동안 끝없이 이어지는 모습은 과연 황산이 차의 도시임을 실감나게 한다.

간간이 대지 위에 뿌리는 빗방울에 나그네 마음에는 강물이 흐른다. 길을 나서면 늘 마음이 조급한 까닭은 아직도 풍진(風塵)을 떨쳐내지 못한 탓일까.


다행스럽게 황산 입구에는 비가 내리지 않는다. 100명 정원의 태평케이블카를 타고 송곡암역에서 단아역까지 오른다. 황산은 일 년 내내 비가오고 구름이 끼는 날이 많아 산 정상에서 보면 구름바다(雲海)가 연상되어 동서남북을 나누어 바다()라고 부른다. 흐렸다 맑았다를 반복하던 날씨가 산정에 오니 금새 구름에 덮인다.

 


케이블카에서 내려 매표소에서 표를 구입한 후 서해대협곡으로 들어선다. 서해대협곡은 황산 트레킹의 하이라이트다. 케이블카도 없던 1979, 76세의 나이로 걸어서 황산에 오른 중국 지도자 덩샤오핑이 서해대협곡을 보고 감탄하여 개발을 지시했고, 설계와 공사기간을 거쳐 2001년에야 비로소 완성되었다.


간신히 한두 명이 지나는 좁은 돌계단을 따라가 보면 어느새 대협곡 깊은 곳에 들어와 있다. 서해대협곡에는 일일이 파서 만든 인공동굴들이 부지기수다. 동굴 천정 위로 철근도 보인다.





아직도 대협곡은 운해에 잠겨 있어 그 속살을 드러내지 않고 있다. 황산을 찾는 많은 사람들은 이곳에서 맑은 날씨를 보고자 함이 아니다. 안개와 구름을 보기 위해서다. 안개가 자욱한 날이면 눈앞에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것 같다. 바로 그때 안개가 조금씩 움직이기 시작한다. 마치 마법처럼, 솜사탕 같은 뿌연 장막 뒤에서 거친 바위 봉우리가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한다. 그리고는 몇 초 동안, 부드러운 백색의 바다 위에 신비롭게 떠 있다. 구름이 움직이면 이 몽환적인 풍경도 모습을 감춘다.

 



배운정에서 협곡 아래까지 5km의 잔도를 따라 내려가면 둥근 바위에서 솟아오른 뾰족한 칼바위가 먼 곳에서 찾아온 산객에게 집도의 예를 갖추고, 발 아래로 대협곡의 최저부인 배운계역과 상부의 천해역을 잇는 모노레일이 가는 막대기처럼 아련하게 내려다보인다. 이제 비 개인 오후의 수채화 같은 풍경 속으로 들어간다.

 

 


 

바위와 봉우리들 허리를 감싸고 있던 구름들이 이제는 지쳤는지 물러나기 시작하자 그동안 구름에 인질로 잡혔던 대협곡이 드디어 속살을 드러내기 시작한다. 직벽을 따라 사람들이 만든 나선형 잔도는 대협곡의 제일 깊숙한 저부로 이어진다. 그럼에도 그 길은 결코 따로 놀지 않는다. 원래 거기에 그렇게 있었던 것처럼 자연스럽고 친화적이다.


 


 

모노레일이 운행하면서 협곡 저부 배운계역에서 상부 천해역까지 불과 5분이면 올라 갈 수 있다. 모노레일로 오르는 중 운무가 짙어져 대협곡이 다시 운해에 잠긴다. 천해역에서 내려 백운호텔로 가서 점심식사를 한다. 산정 부근에는 4성급 이상 호텔이 7개나 있다. 이렇게 험한 산정에 한꺼번에 수백 명을 수용할 수 있는 대형 식당이 있다니 신기하기만 하다.


식사 후에는 일출로 유명한 광명정(1,860m)으로 오른다. 광명정 암봉 난간의 안전 쇠고리줄에는 자물쇠들이 빼곡하게 달려있다. 변치 말자고 사랑을 맹세하는 약속의 신표로 여기 황산의 쇠줄에 자물쇠를 채우고 열쇠는 절벽으로 던져 버린다. 과연 저 자물쇠의 주인공들은 지금도 그 약속을 잘 지키고 있는지.

 

 


 

운무에 쌓인 비래석(飛來石)은 황산을 대표하는 랜드마크인데, 손오공이 먹다 버린 복숭아가 떨어져 바위가 된 것이라 전해진다.


서해호텔을 지나서 단결송으로 간다. 56개의 가지가 한 몸에 붙어있듯 중국내 56개 민족이 서로 단결하라는 뜻이 나무 이름에 담겨있다. 우리네 금강송과도 다르고 낙락장송과도 다른 이색적인 황산송이다.


북해호텔을 지나면 몽필생화(夢筆生花)가 나온다. 붓끝 모양을 한 한그루의 소나무가 서 있다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검은 호랑이가 앉아 있는 모습이라 이름 붙여진 흑호송(黑虎松)을 지나면 절벽에 뿌리를 내려 수백 년간 살아남은 기이한 소나무 군락이 지천이다. ‘천상의 분재원이라는 말이 실감난다. 백아령에서 8인승 운곡케이블카를 타고 운곡사로 내려간다. 오전에 태평 케이블카를 타고 뒷산을 오를 때보다 훨씬 장엄하고 환상적인 풍경이 펼쳐진다. 기기묘묘한 동해의 소나무와 봉우리들이 발밑으로부터 깔려서 밀려오는 운해를 감싸 안으며 시시각각으로 변화를 연출하는 절묘한 조화를 볼 수 있으니 여기가 바로 천상이다.

 

 

대자연이 연출하는 천해의 기암괴석과 노송이 빚어내는 오케스트라다. 일단 호흡부터 가다듬고 백아령에서 운곡사로 내려서는 협곡 좌우에 기암으로 이루어진 봉우리들을 보며 황산의 매력 속으로 빠져들기 시작한다. 그리고 구름 안개가 서서히 걷히면서 뿌옇던 시야가 트이고 황산의 모습이 보석처럼 드러나기 시작한다. 빗물로 말끔히 세수한 듯 청신한 기암과 노송이 어우러진 황산의 진면목을 대하는 순간 선경 속의 신선이 된다. 베일에 가려져 있던 것이 벗겨질 때의 짜릿하고 오묘한 맛을 느끼게 되는 순간이다.

 

높은 봉우리와 아득하게 깊은 계곡의 조화, 옅은 구름과 피어오르는 안개에 싸여 유토피아가 펼쳐진다. V자 대협곡사이로 피어오르는 운해, 그 신비로운 비경 속으로 풍덩 빠져들고 싶은 충동에 사로잡힌다.


마침내 황산 등정의 종점 운곡사역에 도착한다. 7시간 동안 12km의 돌계단 길을 오르고 내린 황산 대장정이 끝나는 순간이다. 가슴이 먹먹해지고 뜨거운 무엇인가가 치솟아 오르는 것은 주체할 수 없는 벅찬 희열 때문일까. 황산의 백미(白眉)라는 운해가 낀 선경을 마주할 기회가 흔치 않은데 오늘 그 호사를 누렸으니 그럴 수밖에.

 

여름 한가운데에서 황산을 오르면서 가슴에 담아온 뜨거운 기억들은 마음속에 지워지지 않는 화인으로 오랫동안 남게 되리라.



 

여계봉 선임기자

 





















편집부 기자
작성 2019.08.03 12:20 수정 2019.08.03 12:22
Copyrights ⓒ 코스미안뉴스. 무단 전재 및 재배포금지 편집부기자 뉴스보기
댓글 0개 (/ 페이지)
댓글등록- 개인정보를 유출하는 글의 게시를 삼가주세요.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2023-01-30 10:21:54 / 김종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