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동규 기자의 눈] 학생선수들에게 필요한 것은 다양성

개성발현을 위한 다양한 길이 제시되어야

 



2006년에 삼성 라이온스에 입단해 한화 이글스에서 활약한 후 롯데 자이언츠에서 2017년에 은퇴한 야구선수 이여상이 언론에 크게 보도되었다. 이여상은 자신이 운영하는 야구교실에서 불법 약물을 수강생에게 투약했다. 10대 학생 선수들의 단기적 성적 향상을 위해서 이여상은 스테로이드와 남성호르몬 등을 불법 투약하고, 그 대가로 1년 동안 16000만원 상당의 이득을 챙겼다. 실제 이여상의 야구교실에 다닌 한 유소년 선수는 성인 기준치의 10배가 넘는 스테로이드가 검출되기도 했다.

 

그동안 학교체육의 지나친 경쟁위주의 문화에 대한 완화책으로 2011년 주말리그 도입 등 학생 선수들의 학습권을 보장하는 정부정책이 시행되었지만, 최고만 살아남는 엘리트체육의 현실은 변하지 않았다. 스포츠 아카데미는 공교육이 아닌 사교육의 범주에 포함되어 있기에, 법적으로 운영에 아무런 제약이 없었다. 사업허가는 물론 등록도 필요 없는 감시와 규제를 받지 않는 사각지대였기에, 이러한 스포츠 아카데미는 기존 경쟁 위주의 엘리트체육을 답습했다. 이여상 야구교실의 이번 사건은 극단적으로 발현된 엘리트체육의 현주소이다.

 

결국 그동안 경쟁 위주의 엘리트체육교육을 벗어나게 하려는 다양한 교육정책들은, 학교에서의 엘리트체육이 학원체육으로 넘어가게 했을 뿐 엘리트체육에서 생활체육으로 넘어가는 것을 추구하는 목적은 달성하지 못했다. 현실적으로 좋은 의도의 교육정책을 펴도 진학이나 취업의 흐름이 변하지 않으면 생각하지 못했던 부작용들이 발생할 수 있다. 엘리트체육에서 생활체육을 강조하는 정책을 추구하더라도, 스포츠에서 진학할 수 있는 분야가 한정되어 있고 재도전의 기회가 사실상 부재하기 때문에 실질적으로 도움이 되지 못했다.

 

운동선수를 꿈꾸는 학습자들은 프로선수를 꿈꾼다. 프로야구의 경우 프로선수가 되는 것이 우선이고 대학에 진학하는 것은 차선으로 여긴다. 하지만 그 문은 좁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한 번 있는 드래프트나 대학진학에 실패하면, 기적적인 경우를 제외한 보편적인 선수들은 재도전의 기회를 받지 못한다. 매년 고등학교를 졸업한 선수가 배출되는 현실에서, 한번 경쟁에서 낙오된 선수가 다시 기회를 받는 경우는 불가능에 가깝다.

 

재도전의 기회가 없기에 유소년선수들 및 학부모들은 잘못된 줄을 알면서도 이번 사건과 같이 불법적인 행위를 하더라도 대학입시 및 프로팀 입단을 하기 위해서 물불을 가리지 않는다. 이여상의 야구교실이 수면위로 올라왔을 , 단순 학교교육에서만 생활체육을 강조하는 것과 이여상을 비난하는 것만으로는 본질적으로 문제를 해소하기 어렵다. 체육은 건강을 목적으로 하는 교육이다. 그러나 지금은 본래의 의미는 사라지고 성적 향상이라는 목적만 남았다. 이러한 상황은 개선되어야 한다.

 

운동선수들은 프로 진출 및 대학선수가 되는 길을 제공받고, 원칙상은 재도전이 가능하지만 사실상 한 번뿐인 대학입시와 프로지명에서 떨어지면 운동선수로의 생명이 끝난다. 입시생이 다른 길로 나갈 수 없는 구조가 본질적 문제이다. 이를 해소하기 위해서 운동선수를 희망하는 학습자들에게 다양한 길을 제시해야 한다.

 

학교체육에서는 단순히 학습자의 학습권을 보장하는 것을 넘어, 선수들에게 운동선수의 길만이 아닌 스포츠 행정가나 에이전시 등과 같은 다양한 진로를 제시하고 그에 대한 맞춤형 지원이 마련되어야 한다. 또한 대학에 진학한 학습자에 대해서도, 체육만 강조하는 것이 아닌 복수전공, 부전공, 융합전공 등을 통해 학습자들이 졸업 후 삶의 방향성을 찾을 수 있는 등의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 마찬가지로 학교교육의 범주를 넘은 평생교육 및 재교육도 그들의 개성 발현에 큰 도움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배려에 대해서 일부는, “일반 사람들도 취업이 힘든데 운동선수들만 보호하는 것 아니냐.”라고 이야기 할 수 있다. 하지만 정규교육의 틀에서 다른 길을 찾기 쉬운 일반 사람들과 달리, 운동선수들은 입시 및 프로팀 지명만을 보고 달려왔기에 최종목표가 좌절되면 방황하는 경우가 많다. 그들이 배우고 닦은 능력이 사회에서 쓰이지 못하는 것은 사회적으로 큰 손실이다. 더불어 사는 따뜻한 공동체를 만들기 위해, 그들이 자신의 능력을 최대한 활용할 수 있도록 사회적 차원에서 논의되고 방안이 제시되어야 한다.

 

 

양동규 기자 dkei82.nara@gmail.com

 


편집부 기자
작성 2019.08.17 11:09 수정 2019.08.17 13: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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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1-30 10:21:54 / 김종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