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사기행] 대둔산 태고사




대둔산 태고사

 

봄비, 차갑다. 그런데 생명은 더 차갑다. 차가워서 생명은 봄비다. 봄처럼 꿈꾸는 것들은 차가움으로 빛난다. 이미 차가운 봄비가 내리고 말았는데 나는 아직도 겨울 앞에서 서성이고 있었다. 그랬다. 아마 그것 때문인지 모른다. 겨울가뭄이 푸른 안개를 품어 올리며 대지 위를 어슬렁거릴 무렵 나는 시집 한권을 냈었다. 언어의 반역에 시달리다가 시도 때도 없이 사방천지를 싸돌아다니며 건저올린 문장들을 뽑아들고 백여 편의 시를 묶어 세상 밖으로 던져 버리고 말았다. 나는 꽉 막힌 속을 뚫고 나온 트림처럼 속이 후련할 줄 알았는데 이상하게 마음이 자꾸 결려 왔다. 결려오는 마음의 멱살을 잡고 나는 또 다시 길을 떠났다. 그 길 위에 봄비가 내렸다.

 

차가운 봄비를 맞고 대지위의 초목들이 춤을 추고 있었다. 덩실덩실 춤추며 온몸으로 받아들인 차가운 봄비는 이내 따뜻한 생명으로 빛나고 있었다. 그러니까 생명은 차갑거나 따뜻함의 분별이 아니라 생명 그 자체인 것을 이제 겨우 알았다. 겨우 알았으니 얼마나 다행한 일인가. 몰라서 행복하다면 더욱 좋고 알아서 번뇌라도 나쁠 건 없지 않은가. 봄비도, 생명도 내 무지가 만들어낸 무정과 유정 사이를 건너느라 마음 바깥의 경계를 떠돌고 있는 듯 했다. 그러다가 이제 겨우 알게 된 내 마음 안으로 들어온 봄비는 겨우내 목말라 있었던 대지위로 자박자박 내리고 모든 생명 있는 것들은 비로소 생명파티를 벌이고 있었다. 그랬다. ‘생명파티라고 쓰고 나니 결핍이 줄어들고 생명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언어의 마법이다. 세상에 던져 논 나의 시집 한권만큼의 언어로도 나는 이제 생명을 이야기해도 좋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무진장, 깊고 깊어서 도무지 그 깊이의 자연을 이를 말이 없을 때 누군가 무진장이라는 말을 만들어 냈는지 모른다. 무주, 진안, 장수를 이르는 이 무진장을 찾아 나는 무주를 여행하고 있었다. 무주 어딘가에 순수를 뒤집어쓰고 산이 된 바위가 있다고 누군가 알려줬고 나는 그 바위를 찾아 무주를 갔다가 산 어깨를 받치고 있던 이름 모를 바위와 대면하고 말았다. 그냥이다. 그냥 바위 하나쯤은 내 안에 들여놓고 싶었다. 그게 다다. 바위에게 기대고 싶었고 바위에게 아무 말이나 하고 싶었었다. 하고 많은 바위를 두고 하필 무주에서 나는 바위를 만났다. 그리고 아무 일도 없는 듯 다시 서울로 올라오고 있었다.


 




이십여 년 전 동년배의 어느 시인이 대둔산에 들어가 옹기 같은 시를 구우며 도연명처럼 살고 있노라는 전언을 지인으로부터 들었었다. 나는 그 시인의 귀거래가 부럽고 부러웠었다. 그 시인은 지금쯤 신선이 되었을지 모른다는 생각을 하며 산속 어디쯤에서 나는 길에게 길을 물었다. 순전히 그냥이었다. 길을 묻는 나에게 길은 이정표를 내어 주었다. 두 갈래 길에서 불쑥 나타난 이정표에는 태고사 가는 길이 적혀 있었다. 대둔산 태고사가 산길을 돌고 돌며 방황하고 있는 내게 길을 내어주고 있었던 모양이었다. 나는 한 번도 가 본적 없는 태고사를 가보기로 했다. 마침 봄비가 내리고 있었다. 신선이 되었을지 모르는 그 시인의 집에도 봄비가 내리고 있을지 모를 일이다. 그러고 보니 봄비와 대둔산 그리고 시인은 참 잘 어울리는 풍경이다

 

하늘만 보이는 첩첩산중으로 올라가자 대둔산의 정수리가 보였다. 이 고요하고 적멸한 산중에서 나는 생각의 거처를 빠져 나오지 못하고 있었다. 해발 878m 마천대 능선을 깔고 앉은 태고사에 다다를 때가지 나는 생각의 거처에서 나오지 못한 채 깎아지른 석문 앞에 서서 절벽을 바라보고 나서야 비로소 생각의 거처를 빠져 나올 수 있었다. 여기 태고사는 석문이 곧 일주문이다. 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인 번뇌 따위는 다 벗어놓고 석문을 통과해서 대웅전으로 올라갔다. 구름이 대둔산을 휘돌아 다니다가 태고사에 와서 지극한 불심으로 내려앉았는지 모를 일이다. 그러지 않고서야 어찌 이토록 곧추선 절벽위에 72칸의 웅장한 절을 짓고 인도에서 들여온 향근목의 불상을 봉안하였겠는가. 그러하기에 12승지의 하나로 꼽은 원효도, 술독에 빠져 살며 무애행을 하던 진묵대사도, 그리고 도의 길을 알고자 했던 송시열도 대둔산 태고사에 형형한 흔적으로 남아 나그네를 반겨주고 있었을 것이다.

 

나는 대웅전 부처님께 인사를 올리고 나와 툇마루에 앉아서 내리는 봄비를 하염없이 바라보고 있었다. 봄비 속을 휘저으며 목탁소리가 애잔하게 들려왔다. 목탁 치는 스님의 뒤를 따라 영정사진을 든 가족들이 비속을 가로질러 가고 있었다. 그 가족들은 봄비 속에 추모제를 지내고 있었다. 봄에도, 차가운 비가 내리는 날에도 누군가는 죽고 누군가는 태어난다. 죽음이 먼저인지 삶이 먼저인지 도무지 알 길이 없다. 삶에서 죽음이 나오든 죽음에서 삶이 나오든 지금 봄비가 내리고 있었다. 차갑게 내리고 있었다. 대둔산 깊은 산중의 봄비는 삶이며 죽음이다. 따뜻한 차 한 잔을 내어준 노 보살님의 마음이며 무심하게 내리는 봄비를 바라보고 있던 착한 고양이의 눈빛이다.

 

101세에 입적하실 때까지 낮에는 일하고 밤에는 참선을 하셨다는 도천스님의 이야기를 풀어놓는 노 보살님의 얼굴엔 경외심이 묻어나고 있었다. 나는 몇 번이고 차를 우려 마시며 태고사의 히스토리를 듣다가 어느덧 해는 지고 갈 길이 멀어 일어서려는데 노 보살님과 어린아이처럼 맑은 눈빛의 노 스님이 저녁공양을 하고 가라며 한사코 붙잡았다. 따뜻한 산중 인심에 저절로 환희심이 일어났다. 노 보살님을 따라 저녁공양을 마치고 석문을 내려오는데 그 무엇이 자꾸 마음속으로 차오르는 것을 느꼈다. 아마 이 경이로운 자연과 그리고 부처를 닮은 따뜻한 산중 사람들과 태고사에 오길 잘했다는 안도감을 것이다. 봄비가 고마웠다. 이유는 알 수 없었다.

 

태고사에 가보지 않고는 순례를 말하지 말라

 

만해의 말이 맞았다.





전승선 기자
작성 2019.08.27 08:24 수정 2019.08.27 08:25
Copyrights ⓒ 코스미안뉴스. 무단 전재 및 재배포금지 전승선기자 뉴스보기
댓글 0개 (1/1 페이지)
댓글등록- 개인정보를 유출하는 글의 게시를 삼가주세요.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2023-01-30 10:21:54 / 김종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