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간세설] 달무리

이태상

 


한번 생각해보자. 짝사랑과 스토킹의 차이가 무엇인지. 짝사랑은 누군가를 혼자 좋아하는 것이지만 스토킹은 상대를 괴롭히는 게 아닌가. 청소년 시절 셰익스피어의 오셀로를 읽다가 그 작품 속의 주인공 오셀로가 그의 부인 데스데모나를 의심하면서 증오와 질투심에 불타 아내를 목 졸라 죽인다. 그러면서 그녀를 너무 사랑하기 때문이라는 말을 한다.

 

나는 그 오셀로의 그 괴변에 펄쩍 뛰었다. 사랑은 무슨 사랑인가. 오셀로의 행위는 사랑과 정반대 짓이다. 사랑이라는 가장 숭고하고 아름다운 인간의 진실을 더할 수 없이 모독하고 모욕한 어불성설이다.

 

젊은 날 미국 음악영화 로즈 마리를 보다가 그 끝 장면에 무릎을 치면서 스토리의 결말이 좋아 나는 쾌재를 불렀다. 백인 기마대가 어느 인디언 원주민 부락을 습격, 남녀노소 가리지 않고 죄다 학살했는데 한 어린 소녀가 살아남은 것을 이 기마대 상사가 거두어 자식같이 키웠다.

 

이 아이가 커서 아리따운 처녀가 되자 상사는 이 처녀를 마음속으로 사랑하게 되었다. 처녀는 상사 아저씨를 생명의 은인으로 고맙게 생각하고 존경하면서 은혜에 보답하기 위해서라도 상사 아저씨가 원하면 그와 결혼하겠다고 마음먹는다. 그러던 어느 날 처녀는 뜻밖에 어떤 젊은 사냥꾼을 만나 서로 사랑하게 된다. 상사 아저씨를 저버리고 젊은 사냥꾼을 따라갈 수 없어 고민하는 처녀를 상사 아저씨가 제일 좋은 말에 태우고 그 말 엉덩이를 손바닥으로 탁 쳐서 처녀를 기다리고 있는 사냥꾼에게 보내준다.

 

3대 독자에다 유복자로 태어나 자식을 열다섯이나 보신 나의 아버지는 우리들을 극진히 사랑하셨다. 우리 자식들뿐만 아니라 모든 어린이들을 아낌없이 사랑하시어 동요와 동시, 그리고 아동극본을 저술해서 일제강점기 때 우리말로 아동낙원이라는 책을 자비로 500부 출간하셨다. 그런데 단 한 권 남아있던 것마저 6.25 전쟁 때 없어지고 말았다. 글을 처음 배우면서 읽은 아동낙원속의 금붕어란 동시 한 편만은 잊혀지지 않는다. 어느 비 오는 날, 어항 속 금붕어를 들여다보면서 어린 아이가 혼잣말 하는 내용이다.

 

헤엄치고 늘 잘 놀던 금붕어 네가

웬 일인지 오늘은 꼼짝 않고 가만있으니

너의 엄마 아빠 형제들 그리고 친구들 모두

보고 싶고 그리워 슬퍼하나 보다.

저 물나라 네 고향생각에 젖어

밖에 내리는 빗소리 들으며

난 네가 한없이 좋고 날마다 널 보면서

이렇게 너와 같이 언제나 언제까지나

한집에 살고 싶지만 난 널 잃고 싶지 않고

너와 헤어지기 싫어 난 너와 떨어지기가

너무 너무나 슬프지만 정말 정말로 아깝지만

난 너를 놓아주어야겠다.

너의 고향 물나라 저 한강물에.

 

그토록 어린 나이에 받은 깊은 인상과 감상 때문이었을까. 이때부터 나는 금붕어 철학을 갖고 살아온 것 같다. 어려서 벗들과 놀 때 어떤 친구가 조금이라도 싫다 하면 아무리 하고 싶은 일이었어도 당장 그만두곤 했다.

 

이렇게 놓아주는 일로 인해 잃어버린 기회가 아주 많았다. 청년시절에는 놓쳐버린 아가씨들이 부지기수였다. 흔히들 여자가 노No 하면 메이비Maybe, 메이비하면 예스Yes, 새겨들으라지만 나는 고지식하게 상대방의 말을 곧이곧대로 받아들여 낭패만 보았다.

 

사람은 누구나 자기 자신에게 솔직한 것 이상으로 진실할 수 없다면, 싫다는 사람을 억지로 좋아할 수는 없다. 저 어린 왕자의 저자 쌩떽쥐베리의 말처럼 삶이란 있을 법하지 않은 것을 추구하는 것이라면 세상에 그 어떤 기쁨도 참된 인간관계 밖에서는 맛볼 가망조차 없으리라.

 

어렸을 때 읽은 동화가 평생토록 잊혀지지 않는다. 벌이 나비를 사랑하게 되었다. 하지만 나비는 벌을 거들떠보지도 않고 꽃밭으로 아름다운 꽃들만 찾아다녔다. 그러다 어느 날 밤하늘에 두둥실 떠오르는 보름달이 나비로 보여 벌은 하늘로 높이높이 날아올랐다. 그리움에 사무친 벌의 숨이 차다 못해 달무리가 되었다는 이야기다.

 

 


편집부 기자
작성 2019.09.19 13:02 수정 2019.09.19 13: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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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1-30 10:21:54 / 김종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