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드림의 싫존주의] 창창한 나이 서른, 나는 왜 깡촌으로 귀농을 했는가

입력시간 : 2019-09-26 12:02:53 , 최종수정 : 2019-09-26 12:23:01, 편집부 기자

[사진 : 강드림이 체험살이를 하고 있는 경북 예천의 한옥]



도시란 본디 ‘모여 사는 곳’이다. 싫든 좋든 내 옆에, 내 뒤에, 내 앞에 그걸로도 모자라 내 위 아래까지 인간들이 모여 산다. 서로 다른 인간들이 모여 살면 당연스럽게도 소요가 발생된다. 별의 별 인간들이 갑작스럽게 모여 살다보니 별의 별 일이 생기는 것은 몹시 자연스러운 일이다. 왜냐면 우린 각자 나름의 별자리를 갖고서 나름의 빛을 내는 존재들이기 때문이다. 우리가 은하계를 보면서 황홀해 할 수 있는 것은 그 수많은 별들이 언뜻 보면 다 똑같아 보이지만 실은 모두 각기 다른 빛을 내는 까닭이다. 허나 언젠가부터 이 나라의 도시에서는 내가 용납하기 힘든 별 일이 눈뜨고 벌어지고 있다.


어떤 학부모들이 시위를 한다. A초등학교와 B초등학교가 있는데, B초등학교는 임대아파트 아이들이 주로 다니기 때문에, 자신들의 아이는 반드시 A초등학교에 입학시켜 달라는 요구다. 아니 지랄이다. ‘요구’란 어떤 합리성을 바탕으로 할 때 성립할 수 있는 말이다. 이 경우는 요구라는 표현보다는 ‘지랄’이라는 표현이 더 어울린다. 당연히 이 학부모들은 자신의 아이가 임대아파트의 아이와 놀지 못하게끔 격리한다. 이런 학부모를 부모로 둔 아이는 임대아파트 아이를 휴거(휴먼시아 거지)라고 부르면서 혐오한다. 요즘은 아파트 주소나 차량 모델을 포털에 검색하면 친절하게 시세가 안내되는 세상이다. 어릴적부터 휴거를 입에 달고 살던 아이는 살아가면서 자신의 만나는 타인의 주소를 검색해보고 시세에 따라 처신을 달리 할 것이다. 나보다 낮으면 깔보고 나보다 높으면 괜히 시무룩해지고. 내가 실수로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는다면 나는 유력한 가능성으로 임대아파트 입주를 알아보게 될 것이다. 그러나 나는 이 따위 풍토가 존재하는 도시에서 아이를 기를 생각이 눈꼽만치도 없었다.


어떤 집주인들도 시위를 한다. 대학생을 대상으로 원룸을 임대하는 것이 주 수입원인데, 대학교 기숙사가 새로 생기면 자신들의 소득이 줄어드니 기숙사 건립을 막아달라는 요구 아니 지랄이다. 사회의 보편적 가치에 대한 일말의 고민 없이 오로지 자신들의 이익에만 천착하는 저 모습. 저들 역시 누군가의 어버이가 되어 그들의 자식으로부터 어버이날에 카네이션을 저격당하고, 억지존경도 받으며, 탈모와 류마티즘 따위로 고통받는 그냥저냥한 우리네 부모들일 것이다. 나는 저 따위 임대업자가 존재하는 도시에서 저들과 이웃으로 지내고 싶은 마음이 눈꼽만치도 없었다.


어떤 비장애인들 마저 시위를 한다. 우리 마을에 장애인 특수학교가 생기는 것을 막아달라는 요구 아니 -이제는 말 안해도 알겠지- 지랄이다. 장애인 학교가 들어서면 도대체 무슨 근거로 치안이 불안해지고, 집값이 하락하는지 모르겠지만 그들은 온갖 이유를 갖다 대면서 혐오를 내뿜는다. 더욱 참을 수 없는 것는 담당공무원이 이들에게 허리를 숙여가며 사정을 설명하고, 장애인 학부모는 저 지랄인들에게 무릎을 꿇고, 지역 정치인은 정쟁의 대가로 이용하는 모습이다. 도대체 이게 어째서 협의하고, 애원하고, 설득해야 하는 일인가? 그냥 하면 되는 것이다. 몹시 자연스럽게. 장애는 특별해 보일지 모르지만, 장애인이 우리 마을에 사는 건 극히 자연스러운 일이다. 허나 이 나라의 도시사회에서는 그것이 용납할 수 없는 치욕이 된다. 어쩌면 진짜 중대한 장애를 지닌 것은 바로 저들이다. 시민사회를 살아가는 최소한의 인격을 갖추지 못한 장애 말이다. 나는 이따위 인격장애자들을 이웃으로 두고 더불어 살아가고 싶은 생각이 눈꼽만치도 없었다.


지나치게 극단적인 예를 갖고서 일반화 시켰다는 말은 하지 말길 바란다. 위에서 내가 언급한 사례들이 여전히 해결되지 못하고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바꾸어 말하자면 앞으로 유사한 사례가 일어날 가능성이 무궁무진하다는 뜻이기도 하다. 제대로 된 사회라면 저런 일들이 벌어졌다는 사실 자체를 부끄러워하고 재발되지 않기를 반성할 수 있어야 한다. 허나 대부분의 사람들은 씁쓸한 표정과 함께 그냥 묻어둔다. 타짜의 곽철용 대사가 떠오른다.


“묻고 더블로 가”


저런 지랄들이 벌어질 때마다 우린 대부분 묻어 둔다. 그것이 더블이 되어 얼마 뒤 더 큰 새로운 지랄들을 낳는다. 그러한 결과물이 나 같은 이들을 도시를 떠나게 만들었다. 나는 광산의 카나리아 같은 것이다. 남들보다 참을성이 현저하게 떨어지기 때문에 불쾌한 냄새가 나자 일찌감치 도시를 떠난 것이다. 이런 나라에서 결혼을 않고 자식을 낳지 않는 것은 젊은이들이 이기적이라서가 아니라 지극히 합리적인 행동이다. 이민비자를 받으면 안타까워하는 것이 아니라 축하를 해주는 나라. 이런 나라에서 미래를 얘기하는 것 자체가 우습다. 자, 조영남이 부릅니다 ‘도시여 안녕’.





 



[강드림]

다르게살기운동본부 본부장

대한돌싱권익위원회 위원장

비운의 비례대표 국회의원 후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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