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간세설] 코스모스 바다로 돌아갈거나

이태상

 


영국 사람으로 태어났으나 미국의 정치가 벤자민 프랭클린의 권유와 초청을 받고 미국으로 건너와 17761월 발간된 상식(Common Sense)’이라는 팸플릿을 비롯해 일련의 책자를 집필하고 발행한 탐 페인(Thomas Paine1737-1809)은 영국에 저항해서 미국의 독립을 쟁취할 것을 독려했다. 그리고 프랑스혁명에도 관여했고, 노예제도에 반대함은 물론 여성의 해방을 주창한 선구자다.

 

기독교와 성서를 비판한 그의 이성(理性)의 시대(The Age of Reason)’라는 글에서 그는 이렇게 천명한다.

 

한 하나님 이상의 신을 나는 믿지 않는다. 세계가 나의 나라이고 선행을 행하는 것이 나의 종교이다. (I believe in one God and no more. The world is my country and to do good is my religion.)”

 

20세기를 대표하는 지성으로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영국의 수학자이자 철학자이며 사회비평가인 버트런드 러셀(Bertrand Russell 1872-1970)은 그의 자서전의 서문 뭘 위해 내가 살아 왔나(What I Have Lived For)’에서 이렇게 말한다.

 

세 가지 단순하나 압도적으로 강렬한 열정이 내 삶을 지배해 왔다. 사랑과 지식과 인류가 겪는 고통에 대해 견디기 힘든 연민의 정이다.(Three passions, simple but overwhelmingly strong, have governed my life: the longing for love, the search for knowledge, and unbearable pity for the suffering of mankind.)”

 

여기서 그가 말하는 사랑은 남녀 간의 사랑이고, 지식이란 진리탐구이며, 연민이란 인류애를 뜻한다. 이는 우리 모두에게 가장 중요한 일 아닌가. 그러니 생전에 그는 또 이런 말도 했다.

그 어떤 신중함보다 참된 행복에 가장 치명적인 것은 어쩜 사랑에 신중함이다.(Of all forms of caution, caution in love is perhaps the most fatal to true happiness.)”

 

우리 링컨이 남녀 간의 사랑에 대해 한 말을 음미해보자.

 

어떤 여인이 나와 운명을 같이 하기로 결정한다면, 나는 나의 전력을 다해 그 여인을 행복하고 만족하게 해주리라. 이렇게 하는데 실패한다면 이보다 더 나를 불행하게 하는 일은 없으리라.(Whatever woman may cast her lot with mine, should any ever do so, it is my intention to do all in my power to make her happy and contended; there is nothing I can imagine that would make me more unhappy than to fail in the effort.)”

 

 

이것은 그동안 내가 마음속에 그려온 우리 모두의 자화상이다. 어렸을 적 나는 성미가 까다로워 하찮은 일에도 신경을 너무 쓴다고 어른들로부터 꾸중을 듣곤 했다. 사내자식이 깨알처럼 좀스럽고 좁쌀영감 같다고 했다. 누나들한테 큰 사람이 되려면 마음을 크게 먹고 대범해지라고 핀잔을 많이 먹었다. 조숙했던 탓인지 아니면 완벽주의자로 태어나기라도 한 것 같이 속 좁다는 말에 마음이 크게 상한 나는 어떻게 해서든지 내 이름값을 해야겠다고 굳은 결심을 했다.

 

내 이름이 한자로 클 태()’자에다 서로 ()’자인데 다 알다시피 재상(宰相), 수상(首相) 할 때도 쓰는 나무 ()’변에 눈 ()’을 합한 것이다. 그런데도 큰 사람, 큰 인물로 세상을 호령하기는커녕 나는 82년을 살도록 한결 같이 소인 중에 소인으로, 소시민의 삶을 살아 왔을 뿐이다. 그렇지만 속으로는 언제나 바다를 꿈꾸면서, 바다처럼 넓게 생각하고 바다처럼 깊게 느끼면서, 바다의 마음을 가져 보려고 해심(海心)’이란 자작 아호까지 만들어 시건방지게 자칭해 왔다. 그리고 젊은 날 한때 서울에서 해심(海心)’이란 이색 주점 대폿집을 차려 경영했었다. 이렇게 해서 지은 자작시 하나가 바다라는 제목으로 남아 있다

 

 

바다

 

영원과 무한과 절대를 상징하는

()의 자비로운 품에

뛰어든 인생이련만

어이 이다지도 고달플까.

 

애수에 찬 갈매기의 고향은

출렁이는 파도 속에 있으리라.

인간의 마음아 바다가 되어라.

내 마음 바다가 되어라.

 

태양의 정열과 창공의 희망을 지닌

바다의 마음이 무척 부럽다.

순진무구한 동심과 진정한 모성애 간직한

바다의 품이 마냥 그립다.

 

비록 한 방울의 물이로되

흘러흘러 바다로 간다.

하늘하늘 바다로 간다.

우리의 코스모스바다로.

 

이렇게 내가 나의 어머님 뱃속에서, 아니 태곳적 옛날 바다의 품속에서 받은 태교육을 이 세상에 태어난 다음에도 계속 받고 자란 덕인지 내 나이 열 살 때 지은 이 동시 아닌 주문을 밤낮으로 쉬지 않고 숨 쉬듯 아직도 외고 있나 보다.

 

내 마음도 네 마음도

밀물 썰물 파도치듯

우리 가슴 뛰는 대로

우리 고향 저 바다로

우리 다 돌아 갈거나

저 코스모스 바다로.

 

 

 

 

 

 


편집부 기자
작성 2019.10.03 13:37 수정 2019.10.03 19: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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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1-30 10:21:54 / 김종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