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차영의 대중가요로 보는 근현대사] 사랑은 계절 따라

사랑은 떠나가도 계절은 돌고 돌아

가람 작사 · 민인설 작곡 · 박건 노래

 


설악산 주 봉우리 대청봉에서 첫 단풍 소식이 들려온 지도 며칠이 지났다. 아침저녁으로 귓불에 스치는 기운도 서늘하다. 야속한 사랑은 떠나가서 아직 돌아올 기약이 없는데, 지난해에 떠나갔던 그 가을이 순연히 돌아올 기미를 보이는 것이다. 윤절섭리(輪節攝理 )이다. 사랑은 떠나가도 계절은 돌고 돌아 세월의 궤적 위에 나이테를 하나 더 휘감아 돌린다. 1969년 이 절기에 사랑과 계절을 읊조린 노래가 가수 박건이 부른 <사랑은 계절 따라>이다.

 

큐피트(cupid)의 사랑은 고정된 대상이 필요하다. 내 사랑의 화살을 명중시킬 과녁, 그 고정된 표적이 없으면 공중에 날아다니는 지푸라기를 향하여 화살을 마구 쏘다가 한 마리 새를 맞추어도 명사수라는 말을 듣지 못함과 같은 원리다. 이 곡은 사랑하는 연인을 떠나보낸, 사랑을 잃어버린 서정을 계절에 은유한 노래다. 여름에서 가을로, 가을에서 겨울로 이어지는 가락. 노랫말처럼 사랑하는 연인들은 대다수가 이별을 맞이한다. 회자정리(會者定離). 사랑이 계절 따라 흐르듯이, 세월 따라 변하는 게 인생이고 사람의 마음이고 신의 섭리다. 이 세상에 한 번 왔다 한 번 가는 덧없는 인생이지만, 선택과 관계 속에서 만남과 공유하는 사랑의 가치는 무한하다. 사람, 사랑은 떠나가도 계절은 떠났다가 되돌아오기를 반복하며 영원하다. 이러한 섭리는 불가에서는 원형의 회륜(回輪)으로 개신가에서는 일선형 지평(地坪)으로 설명하는데, 박건이 부른 노래 속에서 이를 음유해보자.

 

여름에 만난 사람 가을이면 가버리고/ 가을에 만난 사람 겨울이면 떠나가네/ 어디서 왔다가 어느 곳으로 가는지/ 계절이 다시 오면 그대 오려나 그대는 오려나/ 그대는 떠나가도 계절만은 돌아오고/ 사랑은 떠나가도 그대만은 못잊겠어요// 웃으며 만났다 웃으며 떠난 그 사람/ 계절이 다시 오면 돌아와 주오 돌아와 주오/ 그대는 떠나가도 계절만은 돌아오고/ 사랑은 떠나가도 그대만은 못잊겠어요.(가사 전문)


https://youtu.be/FI4eund3S0U 

 

당시 28, 본명 홍몽희. 가수 박건은 1941년 함평에서 출생하여 1971년에 이난영 가요상, 1974년에 KBS 10대가수상을 수상하였다. 대표곡으로는 <두 글자>, <그 사람 이름은 잊었지만>, <사랑은 계절 따라>, <청포도 고향>, <낙엽을 밟으며>, <사랑하는 마음뿐>, <꼭 한번 만나고 싶다> 등이 있다. 그는 출중한 인물뿐만 아니라 한국적 정서와 향기가 그득한 매력적인 가수이며, 배호가 저음이라면 그보다 좀 고음처리가 맑고 아름다운 미성에 더 가까운 노래를 주로 불렀고, 오아시스레코드 전속으로 활동하다가 2000년대 후반까지 낙원동에서 작곡가 겸 가수 트레이너로 활동하였다.

 

이 노래가 나온 1960년대 말과 1970년대 초반 시대 상황은 이농향도(離農向都, 농촌을 떠나 도시를 향해 감)가 시대 정서였다. 그 시절 청춘남녀를 불문하고 대처를 향해서 일탈하듯 떠나가는 꿈을 갖지 않은 이가 있었을까. 아니 6.25 전쟁 후 봄 산 너울에 부풀려진 수풀처럼 늘어난 식구들, 한 입이라도 들면서 산업화에 편성하던 시대가 그 시절이다. 사랑은 목구멍을 채우고 난 다음의 낭만이라, 물방앗간 뒷전 사랑의 짝꿍과 헤어져 대처로 나가면서 겪어야 했던 가슴 아린 사연이 바로 이 노래, <사랑은 계절 따라>이다. 이 노래는 사랑은 소꿉장난이 아니라 현실의 아픔을 수반하는 삶의 과정임을 보여준다. 동구 밖에서 한나절 소꿉놀이를 하면서 진흙으로 밥을 짓고 나뭇잎으로 국을 끓여서 만찬을 나눈 뒤에도 저녁때가 되면 집으로 돌아가서 엄마, !’을 외치는 것 같은 현실이다. 사람들이 애창하는 노래의 끝자락에는 노래가 불리어진 시대가 매달려 있다. 책을 읽으면 하늘 밖에 하늘이 있음을 알게 되듯이, 그래서 노래를 부르면 지나간 그 시절을 묵시적으로 알아차릴 수가 있는 것이다. 유행가가 역사를 품고 있는 마력이 바로 여기에 있다.

 

이 노래는 이별 곡조다. 이별이 어디 남녀 간만의 일인가. 조선 중기 동갑내기 선비 송강 정철(1536~1593)과 약포 이해수(1536~1598)의 이별 정한을 읊은 시에 대중가요 가락을 걸쳐보고 싶은 마음이 솔솔 타오른다. 둘은 선조 임금을 모신 정치적 동지이고, 마주 앉아 술 마시기를 즐겼던 지기지우(知己之友)였다. 약포는 술 마시기를 긴요히 하고, 송강은 바닷가 냇물 들이마시듯 했단다. 또 약포는 진종일 과묵해서 참선하듯 하였고, 송강은 하루 내내 왁자지끌 좌중을 놀라게 했단다. 술을 냇물 마시듯 했던 송강의 권주가 장진주사(將進酒辭)가 그냥 읊조린 시가 아님을 짐작하겠다. 송강이 경기도 여주에 머물고 있을 때, 황해도로 가던 약포가 찾아왔다가 떠나갈 때 송강이 지어서 건넨, 약포와 이별하며(別藥圃, 별약포) 시는 이렇다. ‘서해의 행차 죽주에 들러 알리니/ 온 산 변방 나무들 석양에 시름겹고/ 헤어지는 이 마음 정녕 파초 잎같이/ 산마을 가을비에 밤마다 찢긴다오.’ 서해는 황해도의 옛 이름이고, 죽주는 여주의 옛 이름이다. 송강 정철의 권주가, 그가 45~6세이던 1580년경에 지은 것으로 본다. 홍만종은 순오지에서 이 노래가 이백이 장 길에게 술 권하는 것을 모방하고, 두보의 시를 취해서 지은 것이라고 하였다. ‘한 잔 먹세 그려 / 또 한 잔 먹세 그려/ 꽃 꺾어 산() 놓고 무진무진 먹세 그려...’ 송강가사·문청공유사·송강별집추록유사·청구영언·근화악부등 시조집에 전하는 절구다.

 

이별은 청춘노소 남녀 구별이 없는 조물주가 내린 축복이다. 천지미록(天之美祿)의 제1이 술()이라 하지만, 이별을 순순한 복락으로 순명(順命)하는 것도 천지복록(天之福祿)이리라. 만산홍엽(滿山紅葉). 온 산을 붉고 노란 물결로 넘실거리게 할 이 가을이 다 가기 전에, 떠나갔던 사랑이 되돌아오기를 앙망(仰望)하는 마음이다.



[유차영]

문화예술교육사 / 시인

솔깃감동스토리연구원장






편집부 기자
작성 2019.10.05 12:19 수정 2019.10.05 12: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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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1-30 10:21:54 / 김종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