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승선의 산사기행] 월롱산 용상사




월롱산 용상사

인연 없는 인연이 가장 좋은 인연이다.

 

맞는 말이다. 인연 따위에게 발목을 잡히면 일생이 질척인다. 푹푹 빠지는 진흙탕 길을 걷는 것처럼 괴로운 일이다. 인연을 만들지 않는 것이 가장 좋은 삶의 길이지만 어디 세상일이 뜻대로 되는가. 인연을 만들어야 먹고 살고 먹고 살아야 생명을 부지하고 생명을 부지해야 인간 아니던가. 평생을 이런 아이러니 속을 허우적거리다가 종착에 다다를지 모를 일이다.

 

나는 매일 걷는다. 북악을 걷고 청계천을 걷는다. 조계사 뜰을 걷다가 다시 광화문광장을 걷고 사직단을 올라 인왕산으로 내달리기도 한다. 걸으면서 생각을 하고 걸으면서 사유를 한다. 걸을 때마다 인연이라는 화두에 봉착한다. 인연 하나를 내려놓고 나면 다른 인연이 또 다가온다. 한 평생 만나는 인연이래야 손가락을 꼽을 정도지만 그 또한 거추장스러울 때가 많다. 핏줄로 이어진 인연이야 어찌 할 수 없는 노릇이지만 이제 불필요한 것들로부터의 자유를 누려야 한다. 정자와 난자가 만나 이루어진 정보덩어리인 카르마를 극복해야 한다. 인연을 놓는 일은 그런 일이다.

 

대지가 기지개를 펼 무렵 나는 파주에 십여 평의 주말농장을 분양받았다. 순전히 내 심신의 안위를 위해서다. 땅이라는 완전성과 경작이라는 정서적 불안의 해소를 위해 나는 서울에서 가까운 파주에서 주말을 소비했다. 정확히 말하면 정서적 안정감의 탈출구라고 해야 옳을 것이다. 파주의 땅은 그런 나를 따뜻하게 맞아 주었다. 비옥하지는 않았지만 송글송글 올라오는 새싹을 보면서 정서적 극대감을 느꼈다. 그리고는 무엇인지 모를 안도감에 젖곤 했다.

 

그런데, 나는 불현듯 그런 생각이 들었다. 인연 없는 인연이 가장 좋은 인연인데 자연과의 인연도 함부로 맺는 것은 옳지 않다. 파주의 주말농장을 다니게 되면서 나는 그 땅을 제대로 내 인연으로 만들지 못했다. 얼치기 인연이 되고 만 것이다. 교감을 이루어내지 못한 것은 전적으로 내 책임이 크다. 결국 내 욕심의 결과였다. 내 정서적 안정감을 위해, 도시의 바쁜 일상을 위로받기 위해, 이유 없는 감정놀이를 했다. 반성한다. 마음이 마음을 볼 수 없으니 나는 또 걸으면서 반성하고 성찰했다.

 


 

파주를 들락거릴 때마다 나는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이 평야의 지대에 산사 하나쯤은 있을 것이라고 중얼거리면서 찾아봤지만 좀처럼 산사는 만나기 힘들었다. 네이버를 찾아봐도 마음에 들어오는 산사가 없었다. 그렇게 두 계절을 보내고 나서 파주 시내를 관통할 쯤 용상사라는 이정표를 발견했다. 이정표가 이렇게 반갑기는 처음이다. 아마 나를 위해 자신의 몸뚱이를 내어준 파주의 주말농장에 대한 보상심리였을 것이다. 허허로운 마음을 숨기고 싶었던 내게 용상사로 가는 길은 편안했다.

 

파주와 닿은 인연 덕에 용상사를 오게 되니 인연이란 묘하고 묘한 것인가 보다. 함부로 인연 짓지 않는 것이 가장 좋은 것이지만 나는 흐르는 물처럼 잠시라도 발자국이 닿는 곳이라면 온전한 마음을 주어야 한다고 여겼다. 그랬다. 그래서 몇 개의 군부대를 스쳐 지나면서 나지막한 언덕배기에 있는 용상사를 오르는 발걸음은 가벼웠다. 우거진 수풀 사이로 숨어 있는 돌계단이 인적 드문 곳이라고 알려주는 것 같았다. 평야지대에 놓여 있어 높지도 않은 월롱산에 있는 듯 없는 듯 앉아 있는 용상사는 그저 일없이 살다가 일없이 돌아간 산골 촌부와 닮아 있었다.

 

고려 현종이 거란군을 피해 몸을 숨겼다는 용상사는 난시에 자신의 목숨을 구하게 된 인연으로 임금이 머문 절이라 하여 용상사라고 지었다고 한다. 임진왜란 때는 승병들이 나라를 구하기 위해 큰 역할을 한곳으로 왜군의 시체가 골짜기에 가득해서 무덤골이라는 이름도 얻었으니 역사의 뒤안길에서 수많은 사연을 두고 유유히 시간 위를 걸어와 월롱산을 지키며 파주사람들에게 안식을 주고 있다.

 

태양을 머리에 이고 한낮의 고요를 껴안고 있는 대웅전은 그대로 무심이었다. 아니다. 무명이라고 해야 할지 모르겠다. 너무 고요해서 내가 내쉬는 내 숨소리가 들릴 지경이었다. 이따금 간헐적으로 울어대는 풀벌레 소리가 정적을 깨며 허공으로 날아가고 있었다. 주승은 어디가고 나만 고요와 대적하고 있었다. 나는 이 고요를 이길 수 없어 대웅전 문을 열었다. 끼이익 하며 고요를 깨트리는 문소리가 오히려 반가웠다. 대웅전 부처님도 고요 속에서 나오질 못하고 있었는지 들어가는 내 발자국 소리에 놀라 고개를 살며시 들고 나를 처다 보고 있었다.

 

대웅전을 나와 나는 한갓진 곳에 앉았다. 절집 사람들은 다들 어디를 가셨는지 아무도 없고 햇볕만 내리쬐는데 어디선가 두꺼비가 슬금슬금 내 곁으로 다가왔다. 용상사의 두꺼비도 고요를 참지 못해 기어 나와 내게 말을 걸고 싶었던 것인가 보다. 나는 두꺼비를 바라보다가 고요를 바라보다가 흘러가는 구름을 바라보다가 그렇게 용상사의 시간과 대적하며 놀았다. 어디에도 견줄 수 없는 산사의 즐거움이다. 파주에서 그리고 월롱산 용상사에서의 한낮은 어느 시간별의 천년이었을지 모른다. 그렇게 나의 한낮은 시간의 고요를 껴안고 즐거운 여행을 하고 있었다. 용상사에서 친구가 된 두꺼비가 내게 어느 성자의 게송을 가만히 읊어주고 있었다.

 

강한 바람 불어도 허공 안에 있잖아

높은 물결 넘쳐도 바다 안에 있잖아

뭉게구름 일어도 하늘 안에 있잖아

번뇌 망상 많아도 본성 안에 있잖아

생각 감정 강해도 본질 보면 공하네





전승선 기자
작성 2019.10.07 10:35 수정 2019.10.07 10: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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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1-30 10:21:54 / 김종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