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간세설] 큰 그림에서 보자(II) : 죽음을 사랑해야 삶도 사랑할 수 있지

이태상

 


모차르트가 1787422일 그의 나이 서른한 살 때 그의 아버지에게 쓴 편지를 우리 한 번 같이 읽어보자. (이 편지글은 1864년 출간된 아마데우스 모차르트 서한집에서 옮긴 것이다.)

 

지난 번 편지에 안녕하신 줄 알고 있었는데 편찮으시다는 소식을 듣는 이 순간 몹시 놀라고 걱정됩니다. 제가 언제나 최악의 사태를 예상하는 버릇이 있지만 이번만은 어서 빨리 아버지께서 쾌차하신다는 보고를 받게 되기를 간절히 바라고 희망합니다. 그렇지만 잘 좀 생각해 볼 때 죽음은 우리 삶의 참된 행선지임으로 저는 진작부터 우리 인간이 믿을 수 있는 이 좋은 친구와 친하게 지내왔기 때문에 우리가 죽는다는 사실이 놀랍거나 무섭지가 않을 뿐만 아니라 되레 가장 평화롭고 큰 위안이 되며 (제 말을 이해하시겠죠) 이 죽음이야 말로 우리가 느낄 수 있는 우리의 진정한 지복감(至福感)의 열쇠임을 내가 깨달아 알 수 있는 기회를 주신 나의 하늘 아버지에게 감사해왔다는 말입니다. 제가 아직 젊지만 밤마다 잠자리에 들면서 생각 안 하는 때가 없습니다. 내일 새벽이 밝기 전에 나라는 사람은 이미 이 세상에 더 이상 존재하지 않게 될는지 모른다는 것을요. 그런데도 나를 아는 아무도 나를 접촉해 사귀면서 내가 한 번도 침울해 한 적이 있더라고 말할 사람이 단 한 사람도 없지요. 이처럼 내가 언제나 밝고 명랑하게 행복한 성정을 갖게 된 데 대해 저는 날마다 저의 창조신께 감사하면서 모든 세상 사람들과 피조물들이 다 나처럼 늘 행복하게 삶을 즐기기를 진심으로 바랍니다.

 

(I have this moment heard tidings which distress me exceedingly, and the more so that your last letter led me to suppose you were so well; but I now hear you are really ill. I need not say how anxiously I shall long for a better report of you to comfort me, and I do hope to receive it, though I am always prone to anticipate the worst. As death (when closely considered) is the true goal of our life, I have made myself so thoroughly acquainted with this good and faithful friend of man, that not only has its image no longer anything alarming to me, but rather something most peaceful and consolatory; and I thank my heavenly Father that He has vouchsafed to grant me the happiness, and has given me the opportunity, (you understand me) to learn that it is the key to our true Felicity. I never lie down at night without thinking that (young as I am) I may be no more before the next morning dawns. And yet not one of all those who know me can say that I ever was morose or melancholy in my intercourse with them. I daily thank my Creator for such a happy frame of mind, and wish from my heart that every one of my fellow-creatures may enjoy the same.)”

 

예수도 마음이 가난한 자가 복되다. 하늘나라가 그의 것이다라고 했고, 이순신장군의 생즉사(生即死)' '사즉생(死即生)' '필사즉생(必死即生)' '필생즉사(必生即死)'도 있지 않는가.

 

우리 상상 좀 해보자. 죽지 않고 영원히 산다고, 늙지 않고 영원히 젊다고. 그러면 사는 것도 젊은 것도 아니리라. 그래서 미국의 시인 월트 휘트만(Walt Whitman)도 그의 시 '나 자신의 노래(Song of Myself)'에서 이렇게 읊었으리. "죽는다는 것은 그 어느 누가 생각했던 것과도 다르고 더 다행스런 일이리라. (To die is different from anyone supposed, and luckier.)" 그리고 스코틀랜드의 극작가 제임스 매튜 배리(Sir James Matthew Barrie)도 그의 작품 피터 팬(Peter Pan)’에서 죽는다는 건 엄청 큰 모험 (To die will be an awfully big adventure.)”이라고 했으리라. 그러니 모차르트 같이 죽음까지 사랑할 수 있어야 진정으로 삶을 사랑할 수 있으리라.





편집부 기자
작성 2019.10.10 10:56 수정 2019.10.11 11: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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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1-30 10:21:54 / 김종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