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승선의 산사기행] 운길산 수종사



운길산 수종사

 

시간을 어기는 나이에 들어서자 인생이 급격했다. 순전히 자의적이지만 시와 간사이에는 인간의 숙명 따위는 존재하지 않는다. 모르긴 몰라도 시간이라는 우주나그네에게 인간은 하잘 나위 없는 존재일지 모른다. 이 우주 속에 티끌 같은 존재인 나는 2016년에 무사히 안착해서 오십육 년이라는 시간위에 있었다. 이 담대한 세월을 나는 어찌 할 수가 없다. 그저 아스라할 뿐이다. 헤어진 연인의 눈물처럼 애처롭기도 하고 요절한 가수의 노래처럼 절절하기도 하다.

 

그렇게 시간과 나는 유별해서 서로 친하지 못했지만 나는 여전히 시간을 경외하며 병신년을 맞이했다. 병신년의 첫날이 되던 그날, 두물머리를 지나며 강물이 피어내는 안개의 미명에 젖어서 수종사 가는 길을 잃을 뻔 했다. 북한강과 남한강의 두물이 만나 하나가 되는 두물머리에서 하필 나는 배가 고팠고 길은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저 아스라한 풍경은 절절한 서정을 만들어 내느라 여념이 없는데 나는 고작 배가 고플 뿐이었다. 그래, 삶은 밥이다. 밥이 삶이며 밥이 부처고 밥이 존재다. 밥을 먹어야 하는 인간의 몸이란 존재는 분명 운명의 본령 일게다.

 

사랑이라도 해야 할 것 같은 두물머리에서 나는 잠시 사랑이라는 운명을 생각했다가 이내 배고픔에게 잠식당하고 말았다. 남한강과 북한강의 두물이 만났으니 사랑이라는 스토리텔링이 저절로 떠오를 법도 하겠지만 나는 시간 위를 너무 많이 걸어왔나 보다. 그저 배가 고플 뿐 아름다운 서정도 헤어진 연인의 눈물 같은 그리움도 도무지 떠오르지 않았다. 몸이라는 운명을 끌고 가는 내가 늙은 애마 같아서 혼자 실실 웃고 말았다.

 

두물머리를 풍경으로 밀어내며 운길산 초입에 들어섰다. 고픈 배를 채우기 위해 겨울햇살을 이고 앉아 졸고 있는 식당으로 들어갔다. 내 사악한 몸뚱이는 감정을 저 밑바닥까지 밀어내며 운명의 완성을 꿈꾸고 있었다. 이라는 목숨은 어찌할 수 없되 운이라는 우주의 기운은 스스로 바꿀 수 있는 것이 아니던가. 그러나 나는 운과 명 사이에서 명의 노예가 되고 말았다. 불판위에서 지글지글 익어가는 고기를 바라보며 몸의 낭만이 이런 것이 아닐까 스스로 위로하고 말았다. 위로하면서도 나는 허전하고 허전해서 창문으로 들어오는 햇살에게 한참 동안이나 던져 논 눈길을 거두지 못했다.

 

두물머리에서 고개를 들어 하늘을 보면 멀리 운길산이 보인다. 그 운길산 정수리 못미처에 수종사가 가지런히 앉아 있다. 나는 거추장스러운 것들을 차에다 다 두고 맨몸으로 수종사로 나섰다. 이따금 등산하는 사람들이 무리를 지어 오순도순 걸어가고 가파른 산길을 달리는 자동차들이 매연을 내뿜고 있었다. 나는 잘 닦인 길을 두고 좁은 오솔길을 따라 걸었다. 겨울 가뭄이 흙먼지를 일으켜 세우며 몸으로 달러 붙었지만 툽툽하고 구수한 된장 같은 흙냄새가 좋았다. 오솔길은 그래서 좋다. 명쾌하고 명징하다. 생각 따위에게 점령당하지 않는 즐거움이 오솔길에 있다. 그렇게 한 시간 가량을 걸어서 수종사에 당도했다.

 

아찔하다. 수종사 앞마당에서 내려다보는 두물머리의 풍경은 치명적인 아찔함을 품고 있었다. 이토록 아름다운 풍경에 홀려 부처님을 먼저 뵙지 못하는 건 충분히 용서가 되는 일이다. 대학자 서거정이 노래하고 실학을 꿈꾸던 갓 스물 살의 정약용이 반하고 피의 군주 세조가 사랑한 수종사에게 마음을 내 주는 것은 당연할지 모를 일이다. 북쪽을 달려온 북한강과 남쪽을 달려온 남한강이 만나 무심하게 흘러가는 한강을 바라보면서 생각했다. 인생이란 강물처럼 흐르다가 갈라지고 갈라지다가 다시 만나고 그렇게 바다에 닿는 것이 아닐까.

 


 

예불이 한창인 대웅전을 기웃거리다 자리가 없어 들어가지 못하고 밖에서 삼배를 드렸다. 작고 아담한 대웅보전 안에는 비로자나불이 나직이 앉아 있고 그 옆에 노사나불과 석가모니 부처님이 있는데 가만히 보니 특이하게도 칠성님도 있었다. 다 부처 아닌 것이 없다고 했으니 분별심을 내려놓고 보면 특이할 일도 아닐 것이라고 생각하며 운길산을 넘어가는 봄바람 같은 스님의 염불 소리를 들었다. 나는 다시 앞마당으로 내려와 저 멀리 아스라이 흘러가는 두물머리에 눈을 두고 말았다. 귓가를 맴도는 염불은 어느새 끝나가고 반야심경소리가 내 마음을 끌어당기고 있었다. 나는 앞마당에 있는 약수를 한 잔 떠서 마시고 경내를 찬찬히 둘러보고 산신각으로 올라갔다.

 

운길산 산신령은 참 좋겠다. 저 아찔한 두물머리의 풍경만으로도 천년만년 운길산에 살고 싶을 것 같다. 깨달음이나 해탈 같은 건 잠시 접어 두어도 서럽지 않을 풍경 앞에서 운길산 산신령께 두 손을 모우고 기도를 드리고 있는데 갑자기 아기고양이 한 마리가 뛰어와 내 무릎에 덥석 앉았다. 나는 순간 놀랐지만 아기고양이를 그대로 무릎에 놓고 하던 기도를 계속했다. 기도를 마치고 삼배를 마칠 무렵 아기고양이는 산신각 안을 돌아다니더니 밖으로 나가고 기도를 마친 나도 아기고양이를 따라 나갔다. 아기고양이는 산신각 근처를 이리저리 뛰어다니다가 내 바짓가랑이 사이를 지나다니다가 들고 간 작은 보온병에 관심을 보이다가 야옹거리면서 눈 맞추기를 하다가 하면서 괜히 친한 척을 했다. 나도 아기고양이의 귀여움에 취해 그렇게 한나절을 놀았다. 노을이 내려앉는 두물머리를 바라보며 수종사를 내려오는데 아기고양이가 내게 알 수 없는 미소를 던진다.

 

고양이는 수종사,

수종사는 아름다워

아름다우면 그대,

그대는 고양이…….






전승선 기자
작성 2019.10.14 09:02 수정 2019.10.14 09:02
Copyrights ⓒ 코스미안뉴스. 무단 전재 및 재배포금지 전승선기자 뉴스보기
댓글 0개 (/ 페이지)
댓글등록- 개인정보를 유출하는 글의 게시를 삼가주세요.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2023-01-30 10:21:54 / 김종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