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코스미안 Global Cosmian] 철학적 청년 다리우츠 키나츠를 만나다

티베트를 떠돌다 평창까지 온 폴란드의 유대인

 

산중에서 방금 길어 올린 우물물처럼 맑고 깨끗했다. 수줍은 미소가 그랬고 더듬거리며 쏟아 내는 언어가 그랬다. 평창 숲속에서 만난 서른다섯의 청년 다리우츠 키나츠는 소년 같았다. 아침 안개가 나무와 나무 사이를 구름처럼 휘감는 숲에서 그와 마주앉아 긴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는 연신 자신보다 큰 웃음을 날리면서 수줍어했다.


바람 소리만 가득한 티베트를 떠돌았다. 내면에 흐르는 깊은 성찰을 통해 사람의 마음을 배우고 깊이를 배우고 자연과 세상으로부터 사유를 배웠다. 하지만 영혼이 자유로우면 자유로울수록 마음속은 자꾸 텅 비어 갔다. 그 텅 빈 마음을 찾아 무엇에 이끌리듯 한국에 왔다. 그리고 여기 평창까지 오게 되었다.


폴란드 청년 다리우츠 키나츠는 참 알 수없는 청년이다. 아니다. 그는 우리네 정서를 닮은 구석이 많은 청년이다. 숲의 고요를 좋아하는 것도 그렇고 내면의 울림에 귀 기울이는 것도 그렇다. 자신의 뿌리를 서양에 둔 청년이 동양의 철학에 관심을 두는 것은 이채로운 일이다. 대학에서 전공도 심리학과 철학을 했다. 그는 오래 전부터 마음의 여행을 준비하고 그 실현을 위해 긴 여정에 올랐다. 언제부터인가 불교에 관심을 두고 나서 티베트를 여행했다.


그 곳에서 정신적 스승인 달라이라마를 만나고 다람살라에서 벤자도 린포제, 벤칸드로 린포체를 만났다. 스승들에게 불교를 배우고 동양 철학을 배웠다. 그 지난한 과정을 통해 영혼이 깨달아 가는 눈이 뜨였다. 그 맑은 영혼은 높이 올라 하늘이 되고 바람이 되고 구름이 되고 그리고 마침내는 아무것도 남지 않는 본래의 평화, 그 자체가 됐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마음은 무엇인가를 찾아 다시 떠돌았다. 다리우츠 키나츠는 참 알 수 없는 청년이다.

사랑, 그 하나의 기쁨을 위해 붉은 가사를 둘러쓴 말없는 비구니를 사모했다. 그 비구니의 지혜의 눈동자를 마주하며 폴란드 청년 다리우츠 키나츠는 가슴이 얼어붙었다. 아니 정신이 아득했다. 그러나 티베트 비구니는 그대로 서서 묵상에 잠겼다.
 
미동도 없다. 부처님께 비밀스런 티베트 진언을 암송하는지 움직임이 없다. 입술만 가만가만 조금씩 열고 닫고를 반복할 뿐이다. 그녀, 비구니의 묵상을 깨뜨리지 못한 다리우츠 카나츠는 가슴에 커다란 구멍을 뚫고 말았다. 사랑이다. 이 세상 진리보다도 깨달음보다도 그녀 비구니의 신 부처보다도 아름다운 사랑이다. 다리우츠키나츠는 그렇게 티베트 비구니를 사랑하고 말았다. 서양청년의 가슴앓이는 티베트의 고원을 넘고 히말라야를 넘어 불심을 키우기에 충분했다. 그녀 비구니를 향한 사랑은 그래서 고귀했다. 누가 이 사랑 앞에 종교를 먼저 들이댈 수 있을까. 종교보다 우선하는 사랑이라는 마음은 인간의 처음과 끝이 없는 삶 그 자체가 아니던가.


그러나 끝내 폴란드 청년 다리우츠 키나츠는 비구니의 이름을 밝히지 않는다. 서양 관점의 사고를 벗어나 인간에 대한 예의를 다하는 깊은 심성까지 동양적이다. 동양의 뿌리를 둔 철학적 사유를 연구하고 탐구한 흔적이 역력하다. 어찌 보면 동양을 사모하게 된 것은 그의 인생에 있어 이미 그렇게 정해진 인과인지 모른다. 억겁의 인연이 만들어 낸 윤회를 그가 알까 생각해 보는 동안에도 그는 커다란 눈망울을 이리저리 굴리며 자신의 목소리보다 더 큰 순한 웃음을 자꾸 만들어 낸다. 그녀 티베트 비구니만 생각하면 주체할 수 없는 에너지가 솟아나는가 보다. 사랑은 그래서 종교보다 위대하다.

열정적인, 아주 순수한 열정을 지닌 폴란드 청년 다리우츠 키나츠는 폴란드 여권을 가진 폴란드 출신이다. 태어난 곳은 아니지만 폴란드에서 성장하고 폴란드를 조국으로 삼고 있다. 하지만 어머니는 프러시아 유대인이고 아버지는 러시아인이다. 그래서 가끔 자신이 폴란드인이라고 말하기 힘들어 한다.


한국 사람들의 심성은 폴란드 사람과 닮았다. 폴란드 사람들이 잘살 때와 아주 비슷하다. 서양에서 동양철학을 이야기하면 도통 관심을 두지 않는다. 그러나 한국에서는 관심을 많이 둔다. 서양은 개인주의가 팽배해 있는데 나는 동양의 가족주의를 경험해 보고 싶어서 한국에 왔다.


그는 우리 대학에서 철학과 불교를 공부한다. 한국에 온 또 다른 목적 중의 하나는 한국 전통 가옥 짓기를 배워 보고자함이다. 먼지에 민감한 알레르기가 있는 그가 평창 황토집에서 며칠을 머무는 동안 이상하게도 아주 유쾌하고 알레르기도 없어진 것을 경험했다. 자연이 주는 가장 큰 선물을 그도 알게 된 모양이다. 맑은 숲과 우리 황토의 에너지는 이 이국 청년에게도 약이 된 것 같다. 그는 한국에 십여 년 더 머물면서 공부도 하고 전통 가옥도 짓고 시골도 여행하면서 육체노동의 즐거움을 찾을 것이라고 한다. 그의 수행은 참 독특하고 열정적이다.


폴란드 청년 다리우츠 키나츠를 만나는 동안 내내 웃음이 떠나지 않았다. 자신의 목소리보다 더 크게 웃음을 만들어 내는 순수한 청년과 평창 숲속에서 이야기꽃을 피우는 것은 찰찰찰 흐르는 맑은 시냇가에 놓인 징검다리를 건너는 것만큼이나 즐거운 것이었다.


전승선 기자
작성 2018.07.06 18:41 수정 2018.12.19 17: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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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1-30 10:21:54 / 김종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