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문과 지리 전략가 이순신

저자 이봉수

 

300여 차례의 현장 답사를 통해 밝혀낸 이순신 승리의 전략전술!

이순신 장군이 전장에서 스러진 지 420년이 지났다. 하지만 여전히 수많은 사람들이 이순신의 업적과 리더십에 열광하고 있고, 그의 업적을 리더십이나 인간적인 면에 초점을 맞추어 분석한 책들 또한 꾸준히 출간되고 있다. 하지만 세계 해전사에 기록될 그의 위대한 승리가 과연 리더십이나 인간적인 부분으로만 설명될 수 있는 것일까? 이순신이 이뤄낸 놀라운 승리는 분명 현장의 상황을 정확하게 파악하고 완벽히 장악하는 데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따라서 이순신의 진면목을 제대로 파악하기 위해서는 그가 싸웠던 현장을 이해할 필요가 있다. 이번에 이순신 탄신일에 맞추어 출간된《천문과 지리 전략가 이순신》은 천문과 지리적 관점에서 이순신의 승리의 전략을 분석해낸 최초의 책이다.

우리나라 최고의 이순신 연구가 중 한 명으로 손꼽히는 저자는 이순신의 전략전술을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그가 전투를 치렀던 장소를 직접 가봐야 한다는 믿음으로 지난 20년 동안 이순신의 발자취를 따라 남해의 구석구석을 누비며 조선 수군이 온몸을 바쳐 싸웠던 그날의 현장을 생생하게 되살리려고 노력해왔다. 이순신이 처음 승리를 거둔 옥포해전지에서 마지막 숨을 거둔 노량해전지까지, 지난 20여 년 동안 저자가 직접 발로 뛰며 새롭게 발견한 모든 내용이 총망라된 이 책에서 저자는 지금까지 이순신의 리더십이나 인간적인 면에 감춰져 있던 천문과 지리에 대한 그의 놀라운 통찰과 혜안을 철저한 현장 답사를 통해 밝혀낸다. 그리고 이를 바탕으로 현장의 지리를 완벽하게 활용해 임진왜란의 모든 해전을 승리로 이끈 이순신의 전략과 승리의 비결을 분석하고 있다.

“하늘을 알고 땅을 알면 이기지 못할 싸움이 없다.”

제목에서 알 수 있듯 이 책은 천문과 지리적 관점에서 이순신의 전략을 분석한 것이 가장 큰 특징이다. 남해안의 지형과 이순신의 전적지, 그리고 이순신 함대의 항해 기록을 분석하여 밝혀낸 이순신의 가장 큰 전략은 량梁을 지켜 적의 진출을 막고, 포浦를 공격하여 적을 섬멸하는 것이었다. 좁은 물길인 량梁은 왜군에 비해 병사나 전선에서 수적 열세에 있던 조선 수군이 왜 수군의 진출을 막을 수 있는 최적의 장소였다. 여수에서 한산도로 진을 옮겨 견내량을 지키며 왜군의 서진을 막은 것이 대표적인 예라 할 수 있다. 그밖에도 착량, 사량, 노량, 명량 등의 길목에서 이순신은 조선의 바다를 굳건히 지켜냈다. 반면 적을 공격할 때는 포를 공격했다. 도망갈 곳이 없는 포구의 입구를 막아 적의 퇴로를 차단하고 조선 수군의 특기라 할 수 있는 포격전을 펼쳐 승리를 거두었다. 옥포, 합포, 적진포, 당포, 당항포, 율포, 안골포, 웅포, 장림포, 서평포, 다대포, 부산포, 장문포 등이 바로 왜군에게서 승리를 거둔 장소이다. 전투 준비에서 누구보다 철저했던 이순신이 가장 중요하게 여겼던 것 중에 하나가 바로 적에 대한 정보를 수집하는 것이었다. 이를 위해 바다의 뱃길을 잘 살펴볼 수 있는 높은 산에는 망군을 내보냈다. 경남 고성의 벽방산, 거제도 대금산, 한산도 고동산, 해남 달마산 등이 여기에 해당된다. 거제도 북단의 영등포를 비롯한 중요한 해안포구에도 체탐군이란 정보수집 병사를 내보냈다. 제2차 당항포해전은 지형의 특성을 이용한 해상봉쇄작전으로 적을 독 안에 든 쥐의 형국으로 만들어 섬멸한 예이다. 이처럼 이순신은 해안선이 복잡하고 섬이 많은 남해의 특징을 완벽하게 이용하여 왜군에 맞서 조선의 바다를 지켰다.

저자는 또한 바다의 날씨와 조류, 해류, 지형 등을 분석하여 재미있는 결과를 제시한다. 예를 들면 정유재란 때 부산포의 절영도 앞바다로 출전하라는 선조의 명령을 이순신이 거부한 것은 겨울철 해상의 험악한 날씨와 쿠로시오난류의 흐름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명량해전과 관련해서는 시간대별 조류를 분석하여 새로 밝힌 사실이다. 역류를 마주하고 울돌목에서 버틴 조선 수군이 조류가 바뀌자 순류를 타고 반격을 펼쳐 벽파정자 아래에서 적장 마다시를 사살하고 승리를 거둔 후 엄청난 역류를 거슬러 다시 우수영으로 올라갈 수 없어 진도 남단을 돌아 당사도로 갔다는 것이다. 명량해전 직후에 이순신 함대는 수군 재건을 위해 서해를 유랑하면서 게릴라전을 펼치면서 시간을 벌었는데, 이때 약 20일만 버티면 해상에 혹독한 겨울이 와서 적의 대규모 선단이 더 이상 추격해오지 못할 것까지도 이순신은 간파하고 있었다고 한다. 남해안의 지형뿐만 아니라 조류의 흐름과 날씨까지 모두 파악하고 전투에 임할 만큼 이순신은 천문과 지리를 이용한 전술의 대가였다.

집념 어린 20년 발품과 김정호의 동여도를 통해
420년 세월에 묻힌 우리의 지명을 새롭게 밝혀낸다!


저자가 이순신의 발자취를 따라가면서 가장 어려웠던 부분은 《난중일기》나 《임진장초》 등에 등장하는 지명의 대부분이 현재 지명과 일치하지 않는 것이었다. 결국 저자는 김정호가 그린 동여도를 비롯한 고지도와 현대지도를 함께 가지고 다니면서 기본적인 지명부터 확인해야 했다. 그렇게 남해안 해안 포구와 섬들을 구석구석 찾아다니면서 이순신이 승리한 장소는 물론 하룻밤 정박하고 간 장소들까지 모두 밝혀냈다.

향토사학자들과 지역주민들을 인터뷰하고, 고지도와 대조하여 옛 지명을 새로 찾아낸 곳도 많다. 명량해전 직전 이순신이 해남 이진에서 어란포로 가면서 중간에 들렀던 도괘(刀掛)는 속칭 칼쾡이라고 불리는 해남군 북평면 남성리이며, 정유재란 당시 있었던 흥양 고도해전의 현장인 고도(姑島)는 전남 고흥군 남성면에 있는 우도라는 사실을 새로이 밝혀냈다. 그리고 원균이 최초로 승리했다고 주장한 기문포해전의 기문포도 그동안 어디인지 알 수 없었으나, 부산시 강서구 천성동 대죽도임을 밝혔다. 제2차 당항포해전 당시 어선포는 경남 고성군 회화면 어신리라는 사실도 새로 찾아냈으며, 아자음포와 시구질포의 현재 위치도 밝혔다.

이순신 전적지의 위치를 찾아가는 과정에서 그동안 사라졌던 우리 지명의 새롭게 찾아내기도 했다. 임진왜란 당시 거제도 유자도라고 불리던 섬은 현재의 귤도인데, 이는 섬 이름이 유자에서 귤로 바뀐 재미있는 경우이다. 통영반도와 거제도 사등면 사이의 좁은 해협인 견내량(見乃梁)은 명량처럼 조류가 엄청 난 속도로 흐르는 곳이라 바다에 흐르는 냇물이라 하여 지역민들은 사이에서 ‘갯내’라고 불렸는데, 이 발음을 한자로 바꾼 것이 바로 ‘견내량’이다. 원균이 이끌던 조선 수군이 전멸하다시피 한 비운의 해협인 칠천량(漆川梁)은 옻나무(漆)가 많은 곳에 흐르는 냇물(川)이라 하여 칠천(漆川)이라 불리게 되었다. 이밖에도 판데목이 착량(鑿梁)으로 표기된 것이나 마산합포구 구산면 증도(甑島)를 시리섬이라 한 것 역시 국문학적 어원을 따져 설명하고 있으며, 통영의 거을망포(거을망포, 걸망개), 한산도의 두을포(두을포, 둘포) 등은 이두식 표기의 지명임을 밝히고 있다.

이처럼 이 책은 천문과 지리적인 관점에서 많은 새로운 사실들을 밝히면서도 임진왜란 전반과 이순신의 해전을 시간대별로 상세하게 분석했을 뿐만 아니라 이를 바탕으로 전적지지도를 완성하여 이 책의 본문과 말미에 일목요연하게 정리해 넣었다. 따라서 이 책을 통해 독자들은 지금까지 알 수 없었던 해전 현장에서 바라본 이순신의 진면목을 접할 수 있을 것이다. 무엇보다 당시의 지명을 바탕으로 이순신의 해전 현장을 완벽하게 복원해냈다는 점에서 전문 연구가들은 물론이고 일반인들의 답사여행 길잡이로 단연 돋보이는 책이라 할 수 있다.      

전명희 기자
작성 2018.07.09 10:27 수정 2018.07.09 10: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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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1-30 10:21:54 / 김종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