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간세설] 언감생심(焉敢生心)이어라

이태상

 


()라고 할 수 있는 도는 도가 아니다.’ 25백여 년 전에 살았던 노자가 남긴도덕경을 한 마디로 이렇게 풀이할 수 있는지 모르겠다. ‘진리라고 말하는 진리는 진리가 아니다.’ 이것은 데리다의 해체철학이란 연구서를 펴낸 한국 정신문화연구원 김형호 교수(철학)가 한 인터뷰에서 데리다의 해체주의 사상을 요약한 말이다. 이것은 불교와 노장사상 그리고 원효의 화쟁사상과 맥락을 같이하고 있다.

 

1998년 칸 영화제에서 황금종려상을 수상한 그리스 영화감독 테오 앙겔로풀로스(Theo Angelopoulos 1935-2012)영원과 하루(Eternity and a Day)’1994율리시스의 시선(Ulysses’ Gaze)’을 찍는 동안 급작스런 심장마비로 이태리 출신 배우 지안 마리아 블론테를 잃고 나서 살날이 딱 하루 남았다고 하면 어찌 할 것인가란 생각에서 죽음을 소재로 만들었다고 한다. 죽음을 하나의 경계선 변경으로 다룬 것이다.

 

이 영화는 보는 이들에게 사람이 태어나 병들고 늙어 죽을 때까지 겪고 맛보는 갖가지 희망, 젊음과 향수, 사랑 등의 맥을 짚어볼 수 있는 기회를 준다. 영화가 시작되면서 두 어린 아이가 나누는 대화 속에 한 아이가 시간이 뭐냐고 묻는다. 그 해답은 고대 희랍의 철인 헤라클리투스(Herclitus, c.540-c.480)의 것이다. ‘시간이란 바닷가에서 조약돌 줍고 노는 한 어린 아이라고 한다. 하지만 그보다는 또 다른 고대 희랍의 철학자 파메니데스(Parmenides c. 515-450 B.C.)시간이란 존재하지 않는다는 정의대로 그 당시 65세의 그 자신이 늙어가고 있는 만큼 정말 시간이 존재하지 않았으면 한다고 그는 말했다.

 

살아있음에 감사하면 되지 그 이상의 영예가 무슨 소용이 있느냐는 구상 시인(1919-2004)1998년 내놓은 그의 마지막 시집 인류의 맹점에서 유언 대신 임종고백을 남겨 놓있다.

 

나는 한평생, 내가 나를 속이며 살아왔다.

모두가 진심과 진정이 결한 삶의 편의를 위한 겉치레로서

그 카멜레온과 같은 위장술에 스스로가 도취마저 하여 왔다.

더구나 평생 시를 쓴답시고 기어(綺語) 조작에만 몰두했으니

아주 죄를 일삼고 살아왔을까!

 

2000년에 출간된 '열여덟 산골 소녀의 꽃이 피는 작은 나라'에서 영자는 이렇게 말했다.

 

"아버지가 나에게 삶은 하나하나가 시가 된다면서 일기로 시를 만들라고 하네."

 

영자의 아버지 이연원 씨는 그 후로 강도에게 살해되었고 불교 신자이던 영자는 비구니가 되었다는데 그 뒤 이 강원도 두메산골 부녀의 유고시집 영자야, 산으로 돌아가자가 나왔다.

 

체코의 시인으로 1984년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야로슬라프 세이페르트(Jaroslav Seifert 1901-1986)는 그가 살아있는 동안 써놓은 자신의 비문에 이런 구절이 있다.

수많은 사람이 써 온 수많은 시구에 나도 몇 줄 보태어 보았지만 귀뚜라미 소리보다 못한 것이었음을 잘 알고 있네. 달나라에 사람의 첫발을 내디딘 발자국은 아니었어도 어쩌다 잠시 반짝했다면 내 빛, 내 소리 아니고 반사한 것뿐이네. 나는 사랑했다네. 시를 쓰는 언어를. 그러나 변명은 않겠네. 아름다운 시어를 찾는 것이 살생보다 낫다고 믿기 때문이라네.”

 

스웨덴의 한림원은 1990년 노벨문학상을 멕시코의 시인 옥타비오 파스(Octavio Paz 1914-98)에게 수여하면서 관능적인 지성과 인간적인 성실성을 특징으로 한 드넓게 트인 시야의 정열적인 시인이라고 그를 칭송하면서 다음과 같은 그의 시 한 편을 그의 문학적인 신조로 인용했다.

 

내가 보는 것과 내가 말하는 것 그 사이에

내가 말하는 것과 내가 말하지 않는 것 그 사이에

내가 말하지 않는 것과 내가 꿈꾸는 것 그 사이에

내가 꿈꾸는 것과 내가 잊어버리는 것 그사이에

시가 있다.

 

이를 어쩌면 이렇게 풀이해 볼 수도 있지 않을까?

 

시심(詩心)을 갖고 내가 바라보는 만물의 시정신과

그 억만 분의 일이라도 나타내 보려는 내 문장 그 사이로

그렇게 내가 표현할 수 있는 너무도 보잘 것 없는 시늉과

제대로 형언할 가망조차 없는 무궁무진한 진실 그 사이로

이토록 내가 말할 수도 알 수도 없이 신비롭기 그지없는 현상과

내가 상상하고 꿈꿀 수 있는 환상의 세계 그 사이로

땅과 하늘이 맞닿은 듯 아련히 저 지평선 같은 그 이상 너머로

물안개처럼 피어올라 구름처럼 사라지는 망상의 그림자가

마치 유령이 지나치듯 잠시 도깨비불 번득이는 것

그따위 그것이 모름지기 시라는 것이리라.

 


편집부 기자
작성 2019.10.17 10:04 수정 2019.10.17 1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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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1-30 10:21:54 / 김종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