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간세설] 행복지수와 마당놀이

이태상

 


얼마 전 세계에서 가장 행복감을 느끼는 국민은 파나마, 파라과이 등 중남미 국민이란 조사 결과가 보도되었다. 한국은 하위권인 97, 미국과 중국은 공동 33, 일본은 59위였으며 최하위는 싱가포르로 나타났다. 이는 여론조사기관 갤럽이 148개국에서 15세 이상 국민 1000명씩을 대상으로 일상생활에서 느낀 긍정적 감정을 조사해 공개한 결과에서 드러났다.

 

몇 년 전 한 지인으로부터 들은 얘기다. 중미 파나마로 여행 중 한 선물가게에 들려 행운을 가져오는 장신구 챰(Charm) 같은 게 있느냐고 묻자 나이 든 아메리카 원주민 주인이 씩 웃으면서 묻더란다. '살아있는 것 이상의 어떤 다른 행운을 원하시오?'

 

스위스의 정신병학자이며 심리학자 칼 구스타프 융(Carl Gustav Jung 1875-1961)은 선사시대로부터 지금의 뉴멕시코와 애리조나 주에서 농사를 짓고 살아온 토인부락을 뜻하는 푸에블로(pueblo)란 아메리칸 인디언 거주지로 여행 중 한 추장을 만났다.

 

당신은 아시오? 백인들이 우리 눈에 얼마나 잔인하게 보이는지. 입술은 얇고 콧날은 날카로우며 얼굴은 밭고랑 같이 주름지고 뒤집혀있지 않소. 눈으로는 무엇인가를 늘 노려보며 도대체 뭘 찾는 것이오? 백인들이 항상 초조하고 불안해하면서 무엇을 그렇게 탐내는지 우리는 이해할 수 없다오. 우리가 보기에는 백인들이 미친 것 같소.”

 

이 추장의 말에 융이 왜 그렇게 백인들이 미쳤다고 생각하느냐고 물어보았다. 그러자 추장이 대답하기를 다들 그러는데 백인들은 머리로 생각한다면서요?’ 이에 융은 사람이 물론 머리로 생각하지, 당신들은 뭐로 생각한다는 말이오라고 물었다. 그러자 추장은 자기 가슴을 가리키며 우리는 바로 여기에서 생각한다오라고 대답하더란다

 

여행을 잘 하려면 짐이 가벼워야 한다. 인생여로에서도 마찬가지다. 사람은 머리가 곧 정신이고 따라서 빛이나 공기처럼 머리가 가벼워야 한다. 아무렇게나 굴려도 오뚝 서는 아이들 장난감 같이 말이다. 험난한 세상을 살고 있는 우리 어른들도 오뚝이처럼 머리가 가벼워야 하리라. 뿐만 아니라 머리보다 마음이 가벼워야 한다. 마치 고양이가 야옹하는 장난기가 있어야 한다. 그래서 심각한 체 하는 것은 아직 떫은 때라 하고, 젊어서는 비극을 좋아하다가도 나이 들면서는 희극을 좋아하게 되는가 보다.

 

장난기가 인간의 실존적 짐을 가볍게 해주고, 신화학자 조제프 캠벨(Joseph Campbell 1904-1987)이 말하는 살아있음의 환희(the rapture of being alive)’를 맛보게 해주는 것이라면 이것이야말로 노장철학의  도교, 힌두교, 선불교 및 수피(Sufi)라고 불리는 이슬람교의 신비주의 가르침의 핵심이라 할 수 있으리라.

 

마지막 순간 사형집행관에게 농담을 하는 사형수는 죽임을 당하는 것이 아니고 극복하는 것이다. 어떤 선승(禪僧)이 창밖의 다람쥐가 뛰노는 소리를 들으며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앉으면서 바로 저것이었구나!’하는 감탄사를 남기고 숨을 거두었다고 한다. 이런 일화들을 보면 만화와 우주상 사이에 경계선이 없으며 그러한 변두리 변경(邊境)에서 정신적 영적 갱생에 이르는 출입구가 발견될 수 있음을 말해준다.

 

그래서일까 고대 이집트인들은 사람이 죽을 때 신들은 그의 심장을 저울에 달아 그 무게가 깃털보다 가벼워야 천국에 들어가 영생을 누리게 해준다고 믿었다.

 

스페인의 노벨문학상 수상(1956) 시인 후안 라몬 히메네스(Juan Ram'on Jim'enez 1881-1958)누가 네게 줄쳐져 있는 종이를 주거든 줄이 없는 뒷면에다 글을 쓰라고 충고한다. 세계문학에서 남미문학이 환상적이고 더 흥미진진한 것은 현실적인 인간세계뿐만 아니라 꿈과 신화, 영과 육, 생물과 무생물, 자연계와 영계(靈界),이승과 저승을 다루기 때문이다. 지그문트 프로이드(Sigmund Freud 1856-1939)도 기지(機智)나 슬기란 고난이나 고통을 부정하는 것이라고 했는데 이는 우리가 장난기만 있으면 어떤 괴로움도 우리 삶을 지배하지 못하리란 뜻인 것 같다.

 

()의 눈으로 본다면 입술을 굳게 다문 영웅이나 눈물 짜는 패자보다 코끝이 빨간 광대가 훨씬 더 사랑스럽지 않을까? 세상에서 가장 부러운 사람이 익살꾼이다. 서양의 유머가 인격으로 스스로를 웃기는 일이라면 코미디는 성격으로 남을 웃기는 일이며 조크는 말 자체를 웃기는 말장난이다.

 

우리 한민족의 걸쭉한 입담과 재치, 관객을 울리고 웃기는 마당놀이는 신바람을 불러일으키는 가히 신격(神格)이라 할 수 있지 않을까. 그렇다면 우리 행복지수를 높이기 위해서라도 우리 고유의 마당놀이 한바탕 질펀하게 놀아볼거나.


편집부 기자
작성 2019.10.21 08:17 수정 2019.10.23 08: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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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1-30 10:21:54 / 김종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