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승선의 산사기행] 북한산 연화사




북한산 연화사

 

2,

모호하다. 그리고 절박하다. 모호함과 절박함 사이에서 이월은 꿈꾸다 만 새벽처럼 어리둥절하다. 이제 겨우 서너 발짝을 걸어 놓고 잠시 뒤돌아보면 모호하고 앞을 보면 너무 멀어서 절박한 이월이다. 이월을 사랑하는 자야말로 진정한 로멘리스트 일거다. 이건 진심이다. 일월과 삼월 사이에 가까스로 걸려 있는 이월은 이별에 서툰 첫사랑 그 남자와 닮아 있다. 이월은 아픔을 숨기고 절망의 그림자를 따라 관악산으로 간 그 남자의 뒷모습과 닮아 있다. 이 난데없는 이월의 모호하고 절박함 사이에 끼어 한숨을 짓고 있을 때 문득 지혜의 스승 카릴 지브란의 시를 떠올리며 이월을 위로하고 나를 위로했다.

 

사랑하는 나의 벗들이여

모든 마음을 합한 마음

모든 사랑을 합한 사랑

모든 영혼을 합한 영혼

모든 음성을 합한 음성

모든 침묵을 합한 침묵

시작도 끝도 없는 시간

이 모두를 생각해 보게나.

 

이월은 삼청동이나 인사동의 젊은 연인들 속에서 따스함으로 피어난다. 형형색색의 고운 한복을 입고 종로거리를 활보하는 젊은 처녀들의 생경함이 이월의 맛이다. 젊음은 그래서 좋다. 근래에 젊은이들 사이에서 한복입고 걸어보기 운동이 종로를 중심으로 일어나고 있다. 인사동이나 북촌, 삼청동, 그리고 경복궁에는 젊은이들의 한복물결이 수를 놓고 있다. 참 좋다. 보는 즐거움도 좋고 한복의 아름다움이 거리를 더욱 아름답게 물들여서 좋다. 나는 젊은이들의 한복차림을 눈을 떼지 못하고 마냥 쳐다본다.

 

이월처럼 난해한 계절의 거리를 고운 한복으로 채워주는 젊은이들이 고마워 나도 한번 입어볼까 생각했다. 이월의 어느 일요일, 젊은이들이 수를 놓는 인사동을 지나 나는 북한산으로 갔다. 북한산 언저리를 올라 봄기운을 맡아 볼 수 있으면 좋으련만 아직 봄은 북한산에 당도하지 않았다. 군데군데 잔설이 남은 구기동 골짝을 오르자 종로가 반쯤 눈에 들어왔다. 북한산은 서울의 절대강자이다. 이런 명산을 세계 어디에서 찾아 볼 수 있겠는가. 서울을 품고 있는 이 절대강자의 명산에 발을 딛는 것은 감사하고 감사한 일이다. 그러나 가끔 우리는 잊곤 한다. 너무 가까워서 그 존재를 소중하게 생각하지 못하는 가족처럼 말이다. 북한산 자락을 눈앞에 두고 사는 나는 대한민국의 수혜자이라고 해야 할지 모른다.

 


 

북한산은 풍경이 빼어난 곳에는 다 절집이 들어서 있다. 그냥 무심하게 올라도 어디엔가 절집에 닿을 수 있다. 불국토를 이루었던 북한산의 영화는 사라졌지만 그 흔적들은 곳곳에 남아 옛 영화를 추억하고 한쪽에는 이 아름다운 기슭에 잘 지은 저택들이 저 혼자 잘난 듯 북한산의 풍경을 차지하고 있다. 자연에 대한 인식이 없던 시절, 돈이면 다 되던 우리들 자화상이의 부끄러움이다. 나는 구기동 골짜기를 조금 걸어가다가 연화사를 만났다. 순전히 그냥이다. 거리를 걷다가 옛 친구를 만난 것처럼 그냥 만났더니 더욱 반가웠다. 골짜기를 깔고 앉아 얌전하게 있는 연화사 문을 열고 들어갔다. 일주문이 따로 없는 연화사는 여느 집의 대문처럼 철재대문이 있다. 주지스님이 뉘신지 참 잘 가꾸어 놓으셨다. 깔끔하게 정돈된 대웅전 앞뜰을 보니 주지스님의 마음까지 보이는 듯 했다.


 

아직 이월의 바람이 구기동 골짝을 돌아 연화사를 휘어 감고 북한산으로 달아나고 있었지만 어디선가 봄 냄새가 나는 듯 했다. 분명 봄 냄새다. 얼음장 밑을 비집고 올라오는 아지랑이가 눈앞에 아롱아롱 거렸다. 나는 연화사 마당을 무심하게 한 바퀴 돌고 다시 탑돌이를 서너 번 했다. 이월 햇살은 찬찬히 연화사 마당에 내리고 바람은 높지도 낮지도 않게 불어 왔다. 주지스님이 선정에 들어 있을 오후 시간인가 보다. 가지런히 벗어 논 털신만 이월의 햇살에 몸을 굽고 있었다. 아무도 없는 이 한낮의 고요가 좋다. 절집다운 고요가 좋다. 이따금 지나가는 바람소리만 처마 끝의 풍경을 희롱한다.

 

연화사의 고요만큼이나 나는 연화사에 대해 아는 것이 없었다. 그 흔한 표지석도 없고 안내문도 없는 연화사에서 나와 연화사는 은밀하게 고요를 즐겼다. 바람도 우리들의 은밀한 고요를 질투하는지 어디선가 불현듯 불어와 내 머리카락을 맘대로 흩트려 놓고는 도망가 버린다. 수 없이 많은 세월동안 연화사의 고요와 대적한 사람들의 숨소리가 햇살위에 나직이 내려앉는 같았다. 나는 일없이 대웅전 앞을 서성이다가 탑돌이를 하다가 산 밑으로 보일락 말락 하는 종로를 내려다보다가 그렇게 한참을 연화사에 머물렀다. 그러다가 부처님께 인사를 드리고 연화사를 나왔다.

 

북한산 구기동 골짝마다 이월이 모호하고 절박하게 하늘을 향해 오르고 있었다. 나는 지혜의 스승 카릴 지브란의 시를 가만히 읊으면서 사랑하는 나의 벗들에게 이월은 모호하거나 절박함이 아니라 모든 마음을 합한 마음, 모든 사랑을 합한 사랑이 이월이라고 카릴 지브란처럼 알려주고 싶었다.

 





전승선 기자
작성 2019.10.21 09:02 수정 2019.10.21 09: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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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1-30 10:21:54 / 김종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