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물 탐구] 옴스 엄마와 티베트인 민수 씨

서울 속의 티베트, 포탈라레스토랑

하늘은 티베트인들에게 하늘과 가장 가까운 땅을 주었다고 한다. 야크와 함께 가장 높은 곳에 사는 이들은 지구상에서 제일 순박한 사람들이다. 오늘은 아주 특별한 사람을 만나러 서울 속의 티베트를 찾아 나섰다.


포탈라 레스토랑


서울의 중심부인 청계천변에 티베트 음식 전문점인 '포탈라 레스토랑'이 있다. 티베트인 민수 씨와 한국인 아내가 운영하는 식당으로 한국 속의 작은 티베트라고 소문이 난 곳이다. 사람들은 이 집 여주인을 '옴스 맘'이란 애칭으로 부른다. 세 아이의 이름이 새옴, 대옴, 해옴이기 때문이다. '옴'은 우주의 근본 울림 소리이며 티베트 불교 진언 중에 '옴'으로 시작하는 것이 많다. 큰 딸 새옴이와, 두 아들 대옴, 해옴이가 이들 부부의 가장 큰 희망이다.  민수 씨와 옴스 엄마를 포탈라 궁전에서 만나는 순간, 이들의 운명적 만남은 어쩌면 숙세의 인연 때문일 것이란 확신이 들었다.  일단 두 사람 모두 무척 선량하고 부지런해 보였다. 벽에 걸린 달라이라마 존자의 자비로운 웃음이 마음을 푸근하게 해서 우선 티베트 음식 두어 접시부터 시켜놓고 이들의 사연을 들어보았다.


옴스 엄마와 민수 씨


민수 씨는 2004 년에 네팔에서 우리나라로 왔다고 한다. 산업연수생으로 올 때 큰 돈을 빌려 현지 브로커에게 주고 온 것이 화근이 되어 그의 발목을 잡았다. 체류기간이 만료 되어도 빚을 갚을 길이 없어 불법체류를 한 것이다. 당시 정부에서는 고용허가제 시행을 앞두고 엄격한 법의 잣대를 들이대고 있었다. 비슷한 처지로 쫓기는 삶을 살던 외국인 노동자들이 14 명이나 목숨을 끊었다는 안타까운 소식을 접한 민수 씨는 그 당시 이주노동자 노조를 결성하고 명동성당 앞에서 390일 동안의 농성을 벌였다.


이 때 운명의 여신이 그에게 다가왔다.  옴스 엄마였다. 가장 힘든 시기에 외롭게 투쟁하고 있는 한 인간을 사랑할 수 밖에 없었던 옴스 엄마는 가슴아픈 가족사를 털어놓았다. 대기업에서 노동운동을 하다가 해고 당한 아버지는 노점상이 되어 전전하다가 생존투쟁을 하면서 분신하여 하늘로 갔다고 한다. 티베트의 독립을 위하여 소신공양을 올리며 분신하는 티베트 승려와 아버지의 모습이 가끔 오버랩된다고 한다.


이들 부부는 2006년 12월에 혼인신고를 하고 2007년에 결혼식을 올렸다. 그런데 민수 씨의 조국에서는 2008년에 베이징 올림픽을 앞두고 티베트인들이 대규모 시위를 벌이는 와중에 유혈사태가 나고 말았다. 당시 민수 씨는 중국 대사관 앞으로 달려가 기자회견을 하고 중국의 만행을 규탄하는 성명을 발표했다. 그리고 그 해에 명동에서 세들어 살던 민수 씨는 재개발조합 측의 강제철거에 맞서 싸우다가 공무집행방해로 벌금형을 받았다. 이래 저래 중국정부와 한국정부의 심기를 거스러는 행동을 한 것이다.


어쨌거나 한국에서 결혼하여 세 명의 아이 까지 둔 이들 부부는 당연히 한국에서 살기를 원했고 민수 씨는 2013년에 귀화 신청을 했다. 그러나 벌금형을 받은 전력이 있는 그에게 귀화가 허락되지 않았다. 지루한 행정소송까지 진행했으나 결국 법은 민수 씨의 편에 서지 않았다. 그런데 법은 도덕의 최소한이라는 말이 있다. 수많은 사람들이 이들을 응원한 결과 비록 귀화는 못했지만 비자 연장의 방법으로 이들 부부는 함께 서울에 살고 있다. 정부 당국도 인도적 차원에서 이 정도의 편의는 봐준 모양이다. 사람 나고 법 났지 법 나고 사람 난 것이 아님이 증명되었다.


오늘 서울 한 복판에서 민수 씨와 옴스 엄마를 만난 것은 내게 큰 행운이다.  가장 힘없고 가난한 사람 편에 섰다가 한국에서 일가를 이룬 사람들의 아름다운 삶을 보았기 때문이다. 세찬 바람이 불어도 꺼지지 않는 가난한 여인이 밝힌 빈자일등이 그리운 시절에 청계천변의 포탈라궁에서 작지만 빛나는 등불 하나를 보았다.


정명 기자


정명 기자
작성 2018.07.17 16:23 수정 2020.07.05 11: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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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1개 (/ 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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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덕규님 (2018.08.06 16:55) 
세상에...
이 짧은 기사에 장편영화 한편이 들어 있군요. 놀랍고 감동적이고... 더위가 확 가시는 기사 올려주신 정명 기자에게 고마움을~ 이런 기사를 보면, 취재를 하고 기사를 쓰는 기자도 기자이기 전에 사람이란 걸 포근히 느낌. 사람나고 기자 났지 기자 나고 사람 났나? 하는 <정명정신>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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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1-30 10:21:54 / 김종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