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승선의 산사기행] 북한산 금선사





북한산 금선사

 

눈을 감고 사랑하는 것들을 떠올려 보았다. 그러나 사랑을 사랑하는지 사랑을 위해 사랑하는지 도무지 감을 잡을 수 없었다. 생각해 보니 사랑은 내게 실체 없는 존재였다. 가족을 직장을 삶을 사랑한다고 우겨도 무방하겠지만 나는 무엇이 사랑의 정답인지 선뜻 대답할 수가 없었다. 생각 속을 돌아다니는 편린들을 잡아다가 맞춰 보지만 이 빠진 사발처럼 맞춰지지 않았다. 금선사 숲속을 거닐며 나는 사랑한다고 마음의 빗장을 열어 보았지만 주어는 어디가고 목적어만 남아 사랑은 관념일 뿐이라고 조롱하는 것 같았다. 나는 법구경의 한 구절을 떠올리며 조용히 숲속을 걸었다.

 

사랑에서 근심이 생기고

사랑에서 두려움이 생긴다.

사랑에서 벗어난 이는 근심이 없는데

어찌 두려움이 있겠는가.

 

사실 사랑이라는 말을 입에 달고 사는 현대인들에게 사랑은 생존의 수단일지 모른다. 도처에 사랑 아닌 게 어디 있던가. 사랑이라는 말에 죽고 못 사는 지구인들에게 사랑 말고 무엇이 있단 말인가. 이 지리멸렬한 사랑 때문에 오늘도 누군가는 살고 누군가는 세상을 버릴지 모른다. 온갖 아름다운 단어로 도배된 책의 문장들 속에서 사랑은 신이 되고 사랑은 악마도 된다. 그러나 나는 사랑을 모른다. 죽음도 모르고 삶도 모른다. 그러니 나는 오늘도 길 위에 있다. 다만 내가 알 수 있는 것은 길을 걷고 있다는 것뿐이다. 북한산 금선사에서 이런 나를 내려놓고 햇살아래 가만히 앉아 보았다.

 

그러고 보니 나는 길을 떠날 때가 행복했다. 길은 길을 만난다. 길에서 나는 거추장스러운 것들을 버린다. 진부하고 상투적인 삶을 쳐내고 길에서 새롭고 명쾌한 생각을 얻는다. 굳이 사랑의 정의를 내리자면 길은 내게 행복이며 사랑이다. 길이라는 사랑은 인간처럼 터무니없이 간사하지도 않고 끈질기게 집착하지도 않는다. 내가 떠나는 길 끝에는 언제나 고요한 산사가 있다. 그 산사의 숲속에서 내가 사랑을 선택하는 것이 아니라 사랑이 나를 선택하는 것 같다. 그래서 산사의 숲에서 내게 사랑은 관념이 아니라 실체로 다가온다. 마치 갓 태어난 아이를 받아든 엄마처럼 말이다.

 

길을 따라 닿은 금선사의 숲도 그랬다. 숲에선 정신이 맑다. 정신은 스스로 맑아지면서 그 맑아짐을 환기할 수 있다. 숲에선 모호함도 없고 번로한 것들도 없다. 복잡함도 없으며 생각들의 모순이 사라진다. 그래서 나는 숲의 다른 이름을 사랑이라고 한다. 금선사 숲길을 걸으며 나는 더 할 수 없는 평온함으로 생각을 비워내고 몸의 탁한 기운까지 비워냈다.

 

꽃잎 하나

향기 한줌

손상시키지 않고

오직 꿀만 따가는 꿀벌처럼

어진사람은 사람을 그렇게 대한다.

 

그렇다. 꽃잎 하나 향기 한줌 손상시키지 않고 오직 꿀만 따가는 꿀벌처럼 사람과 사람 사이도 꿀벌의 지혜가 있어야 한다는 법구경의 글을 금선사 숲속에서 떠올린 건 마음이 정화된 증거다. 그 정화된 마음을 가지고 저 산 아래 세상으로 나가 힘들고 지칠 때마다 위안을 받으면 그래도 살만한 세상이 될지 모른다. 혹여 이성이 마비되고 감성도 메말라 증발해 버린다 해도 꽃잎 하나 향기 한줌을 손상시키지 않는 어진 마음만 있다면 말이다.

 

북한산을 머리에 이고 있는 금선사의 숲은 나를 사랑하고 나는 숲이라는 사랑의 대명를 얻었으니 산사에서의 하루는 언제나 옳다. 내가 길을 사랑하는 이유다. 산을 사랑하는 이유이며 숲을 사랑하는 이유다. 금선사에는 어깨를 나란히 하고 조용조용 뜰을 거니는 젊은 대학생들의 맑은 미소가 오후 햇살처럼 찰랑인다. 잿빛 수행복을 입고 가만히 앉아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는 뒷모습이 어찌나 사랑스럽던지 나는 사랑한다고 말하고 싶어 입이 근질근질했다.

 

금선사는 목정굴을 먼저 보아야 한다. 북한산의 정기가 뭉쳐 내려온 목정굴에서 부처님께 먼저 인사를 드려야 마음이 편하다. 신라인들의 성지였던 목정굴은 겨우내 얼었던 물이 흘러내리고 있었다. 어리석은 백성들의 기복을 다 받아준 목정굴의 부처님은 오늘도 변함없이 살포시 웃고 계신다. 이 세상 어리석지 않은 자 누가 있던가. 시대는 변했어도 여전히 어리석고 우매한 이들의 고통은 목정굴에 쌓여 있고 얼음장 밑을 비집고 나오는 맑은 물이 다 씻어 내려 주고 있다.

 

태조 이성계의 왕사였던 무학대사가 절을 지었다고 하니 600여년의 세월을 담고 있는 금선사엔 정조임금과 순조임금에 관한 설화도 많고 일화도 많다. 누누한 세월을 흘려보내면서 얼마나 많은 이야기들이 금선사의 시간을 이어 왔겠는가. 그러하기에 세월이나 시간보다 더 위대한 것은 사람의 마음인지 모른다. 마음 밖으로 나가 가만히 나를 들여다보면 사랑이 보인다. 도무지 이름 할 수 없는 그 사랑 말이다.






전승선 기자
작성 2019.10.28 09:04 수정 2019.10.28 09: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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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1-30 10:21:54 / 김종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