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계봉의 인문기행] 여행의 환타지를 깨라. 북인도 여행 4부

성스러운 갠지스 강과 영혼의 도시 바라나시

카주라호에서 바라나시까지 400km를 버스로 13시간 이동하면서 바라본 생생한 삶의 현장은 60년대 우리 모습과 너무 닮아있었다. 좁은 비포장 도로, 그 도로를 점령한 소떼들, , 돼지, 염소의 방사, 짓다만 수많은 건물들, 초라한 너와집, 휴게소에서 난을 굽는 아이의 해맑은 눈동자.


야무나 강과 갠지스 강(강가 강)이 합쳐지는 알라하바드 다리에서 바라본 석양, 도시 외곽의 도로 좌우로 조성된 거대한 빈민 텐트촌, 홍수가 범람하여 물에 잠긴 갠지스 강가의 마을들. 사행천인 갠지스 강을 따라 버스도 구불구불, 마음도 구불구불 따라간다.

 





강 주위로 화장터가 많이 보인다. 삶과 죽음의 언저리 강가 강. 저물어가는 강가를 배회하는 비루먹은 개들. 어두워져 도착한 바라나시 시내는 수많은 인파와 쓰레기들, 차량들이 내는 경적소리로 가득하다. 힌두교 금식일 기간 동안 도시를 밝히는 화려한 네온사인과 소음에 가까운 음악소리는 마음을 혼란스럽게 만든다.


도로가에 늘어선 걸인들은 주로 젖먹이를 안고 있는 엄마들이거나 눈 한쪽이 없거나 두 팔이 없거나 무릎 아래가 없는 장애인들이다. 마주치는 그들의 눈빛은 분명히 과장된 눈빛인데도 늘 가슴 깊숙한 곳을 후벼 판다. 이들을 외면하고 지나갈 때 이유를 알 수 없는 서러움에 눈물이 흐른다.


 


동트기 전 새벽에 갠지스 강의 일출을 보러 호텔을 나선다. 3천년 역사를 지닌 고도 바라나시. 세계에서 가장 인구밀도가 높고 세계에서 가장 가난한 도시이자 인도에서 가장 성스런 도시다. 마치 이슬람에서 일생에 한번은 메카를 순례 하듯이, 힌두교도들은 일생에 한번은 바라나시를 순례한다고 한다.


시내의 호텔에서 갠지스 강까지 가는 바라나시의 길가에는 인도의 모든 것이 스며있다. 거리는 더럽고 지저분하며 추한 것들이 지천이다. 떼로 몰려다니는 소와 소똥, 그리고 오토바이와 빵빵거리는 차들을 피해서 가야 한다.


바라나시는 약 3,500년 동안 힌두교도의 성지로서 그 명맥을 유지해 왔으며, 현재는 인도 최고의 관광지이기도 하다. 이곳에는 삶과 죽음, 삶에 대한 열망과 체념, 아름다운 초월과 비참한 현실이 어우러져 있다.


노인이 모는 사이클 릭샤(인력거)를 불편한 마음으로 30분 정도 타고 가니 사람들의 영혼을 깨끗하게 한다는 갠지스 강이 나온다. 홍수가 범람하여 바라나시 강가의 가트는 수몰되었고 주변은 소똥, 쓰레기, , 나무들이 한데 엉겨 뒤섞여 있다.


반야심경에 불구부정(不垢不淨)이란 말이 나온다. 형상에는 더러운 것도 깨끗한 것도 따로 있는 것이 아니다 라는 뜻이다.

 

  

 


어둠을 뚫고 아침 햇살이 갠지스 강을 깨운다. 강가는 황톳물에 잠겨있지만 바라나시 여명은 아름답고 성스러운 빛으로 사람들의 가슴속으로 스며든다.


강 건너 저승에서 떠오른 해는 세상을 다시 밝히고 강변 이쪽의 이승에서는 죽음이 연기로 피어오른다. 그리고 이승과 저승 사이를 흐르는 갠지스 강가에서 사람들은 두 손 모아 합장을 하면서 간절하게 기도하고 있다.


 

 

 



새벽하늘의 아름다운 태양 빛을 받으며 거친 갠지스 강에 들어가 황토 물에 목욕을 하는 사람들이 많이 보인다. 인도인들의 목욕문화는 성스러운 종교 의식과도 같다. 그것은 몸을 씻는 것이 아니고 영혼을 맑게 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죽은 뒤에 이곳에서 화장한 후 뼛가루를 강에 흘려보내면 극락으로 간다고 굳게 믿고 있다.

 

4km 강가에는 계단인 가트가 80여개 있다. 화장터, 빨래터, 목욕장, 제사장소로 쓰이는 가트들은 모두 침수되어 토사로 덮여 있고, 갠지스 강의 거친 물결은 강에 나가지 못한 채 부둣가에 매달려있는 나룻배들을 춤추게 한다.



홍수의 여파로 보트 투어가 취소되는 바람에 갠지스 강 일출은 물론이거니와 가트가 침수되어 화장하는 모습과 그 유명한 뿌자 의식도 볼 수 없다. 비공식 루트를 통해 어렵게 강가의 실내 화장장을 소개받는다.


화장장 가는 길에 바라나시의 유명한 미로 도시를 지나는데 이 도시의 숨겨준 모습들이 적나라하게 드러난다. 좁은 골목을 사람들이 양쪽으로 줄지어 지나간다. 가끔은 큰 짐을 실은 수레와 오토바이도 지나가고 심심해진 소도 지나간다. 이 모든 게 1m 폭도 안 되는 좁은 골목길에서 이루어진다. 사람들의 삶이 녹아있는 거미줄처럼 뻗어 있는 골목을 빠져 나올 때쯤이면 부조화 속의 조화가 무엇을 의미하는 지 깨닫게 된다.


바라나시가 카오스(chaos)의 도시임에 틀림지만 그렇다고 혼란만 있는 것은 아니다. 혼돈 속에 질서가 있다. 무질서하게 보이는 현상의 배후에는 모종의 정연한 질서가 존재한다는 카오스는 바라나시에 딱 해당되는 용어다.


 

 


화장장 주위에는 파손된 채 방치된 힌두교 사원들이 눈에 많이 띄었는데, 이곳을 정복한 무굴제국 황제 샤자 한의 아들 아우랑제브가 이 도시의 많은 사원들을 파괴하였다고 한다.

 

 

 

화장장 책임자는 제법 유창한 영어로 소정의 시주를 요구한다. 그리고 사진 촬영과 유가족을 자극하는 말이나 행동은 절대 금지라고 주의를 준 뒤 화장터 내부로 안내한다. 입구에 있는 그동안 한 번도 꺼지지 않았다는 화장터의 불씨, 화장하는 과정, 1인 화장에 소요되는 320kg 나무, 3시간 정도 걸리는 화장시간, 대략 300불 정도하는 화장 비용, 유골수습방법 등 이방인에게 자신들의 장례문화를 열심히 설명해준다.


 


 

화장장 내부에는 창문이 없지만 장작이 타는 열기로 염천이다. 8개의 화장터에는 나무 위에 놓인 시신들이 불타고 있다. 그 사이를 지나면서 삶과 죽음의 경계가 허물어짐을 느낀다. 책임자는 화장터 뒷골목에 있는 허름한 4층 건물을 가리키면서 이곳 화장터로 오기 위해 차례를 기다리는 사람들이 저 건물에 가득하다고 한다.

 

죽음을 대하는 이들의 태도를 바라보니 슬픔만 가득할 것이라 생각했던 예상은 빗나간다. 이곳에는 가는 이를 무표정하게 보내는 사람들만 있다. 눈물을 흘리지도 울음소리를 내지도 않는다. 그저 덤덤하게 사랑했던 이의 삶이 연기가 되어 하늘로 올라가고 육신은 한 줌의 재가 되어 갠지스 강물에 흘러 들어가는 것을 바라보고 있다.

 

삶이 죽음이 되고 죽음이 삶으로 순환되는 순간, 추한 것, 더러운 것, 불결한 것, 아름다운 것, 깨끗한 것, 신성한 것은 모두 이름을 잃고 하나의 실재 속으로 사라지는 그 순간, 세상은 한없이 성스러워 보이기도 한다. 죽음을 가장 가까이에서 마주한 도시 바라나시는 지옥과 극락의 세계를 오가는데, 그 묘한 매력 때문에 오늘도 이곳에는 순례객과 관광객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

성스러운 갠지스 강과 영혼의 도시 바라나시. 가장 인도다운, 가장 인도스러운 도시다.

 


 


 

힌두교의 본향 바라나시에서 근처 사르나트(녹야원, 鹿野園)로 이동한다. 석가모니가 보리수나무 아래에서 깨달음을 얻은 후 같이 수행했던 5명의 형제들과 처음으로 사성제와 팔정도를 설파했던 초전법륜(初轉法輪)의 땅이다. 룸비니, 붓다가야, 구시나가라 와 함께 불교의 4대 성지중 하나인데, 불탑과 사원 터, 남아있는 석주 등 역사의 흔적이 가득하여 마치 야외 고고학박물관 같다.


아쇼카 왕이 설법 장소인 이곳에 세운 다메크 스투파는 커다란 종을 뒤집어 놓은 듯한 모습이다. 강렬한 태양 아래 아름다운 녹지가 펼쳐진 곳에 자리한 43.6m의 붉은 거탑을 자주색 가사를 걸친 라마승들이 돌고 있다.

 


 

 

 

 

평소부터 인도에 와서 꼭 풀고 싶었던 의문이 있었다. 석가모니로 융성했던 불교 대신 왜 힌두교가 인도인들 마음속에 자리할 수 있었던가. 자이나교, 불교, 이슬람교, 힌두교의 정신세계로 이어져온 인도의 실체는 과연 무엇인가.

 

그동안 많은 도시들을 거쳐 오늘 사르나트까지 오는 사이에 의문의 껍데기는 벗겨졌으나 의문의 본질 자체는 원래부터 쓸데없고 공허하며 무의미한 허상이었음도 깨닫게 된다.

 

바라나시 가트 앞의 갠지스 강을 건너가면 항하사(恒河沙)를 만날 수 있다. 불경에 자주 등장하는 이곳은 강가 강(갠지스 강)의 모래라는 뜻이다. 순례자들은 이곳의 모래 한 줌을 움켜쥐고서 갠지스 강의 일출을 바라본다.

 

우리의 삶도 손가락 사이로 빠져나가는 강가 강의 모래처럼 덧없는 것이리라.

 

옴 마니 반메흠.






 

여계봉 선임기자

 
















편집부 기자
작성 2019.10.29 10:35 수정 2019.10.29 11: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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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1-30 10:21:54 / 김종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