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승선의 시를 걷다] 마라도

자연의 멍에를 안고 시간을 걸러내는 섬 ‘마라도’


섬은 흐른다.

갇힘아니라 흐름이다.

아침 하늘가로 흐르는 구름은

모든 살아있는 것들을 불러 모으며

시간과 공간을  털어내고 있었다.

나는 흐르는 섬에서 섬을 바라보았다.

자유도 억압도 무의미한 섬은

인문이 아니라 자연이었다.

인간에게 짐승처럼 사육되기를 거부하는

스스로 그러한 생명이었다.





 

 

결국,

빛의 끝에 도달하고 나서야

빛이 붉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태양은 바다를 감정의 구조 안으로

끌고 와 펼쳐놓고

그 감정의 빛을 훑어서

더 붉게 물들이고는 다시 바다로

산산이 던지고 있었다.



 


 

 

햇덩이를 살라먹는

마라도는 감정의 섬이다.

자연의 원초성과

인간의 감정이 빚어 낸 멍에를 안고

시간을 길러내는 섬이다.

그 시간의 끝은 태양을 향해 진화하며

저 광활한 아침 바다를 건너고 있었다.






태극기가 바람에 펄럭입니다.’

노래 소리가 목구멍을 간지럼 태우며 꾸역꾸역 기어 올라오는데

대한민국 최남단의 가파초등학교 마라분교는 

 나를 보며 잇몸이 다 드러나도록 활짝 웃고 있었다.

그 웃음은 인간과 자연사이의 관계를 밀어내지 않은 채

착한 풍금소리를 울리며 마라도를 지키고 있었다.

그래서 태극기가 바람에 펄럭이는 학교는 홀로 눈부시게 찰랑거렸다.

나도 저 눈부시게 찰랑거리는 학교에 가고 싶었다.



더 이상 등대는
쓸쓸하거나 외로운 사물이 아니다.  
마라도 등대는 당당한 기품으로 우뚝 서서 
역사의 찌꺼기를 걸려내며
날카로운 이성으로 빛나고 있었다.  
그리움도 저 등대처럼 빛나야 자유롭다.  
천 갈래 만 갈래 부서지며
끝끝내 완전한 그리움으로 남아야 한다. 

녀석은 무심했다.  
눈길을 마주칠 틈도 없이 바람처럼  
거침없이 이리저리 잘도 돌아다녔다.
바다와 하늘과 섬이 녀석의 것이기 때문이다.
녀석의 것이 또 하나 있었다.
가파초등하교 마라분교가 녀석의 전용학교로
대한민국에서 녀석만큼 전 과목을 통틀어  
과외 받듯 공부하는 애들은 없을 것이다.
마라도 최남단 초등학교엔
학생이 단 하나 ‘녀석’ 뿐이었다.
나는 녀석을 덥석 안아보고 싶었지만
녀석은 뛰어 노는데 바빠 무심했다.
오! 마라도와 녀석은
서로를 꼭 닮은 개구쟁이였다.


사랑이라는 말은 내 것이 아니라

저 아이들 것인지 모른다.

겨자씨 같은 저 아이들의 순한 눈망울이

사랑이며 자연인지 모른다.

마라도에 오면 그래서 사랑에 감전되어

오랫동안 행복해질 수 있다.

생명이란 사랑이 이 세상에 처하는 자리의 이름이다.

그 자리 마라도는 아이들의 천국이며

아이들은 천국의 수호신이다.

생명 있는 모든 것들의 사랑이

여기 마라도에서 아이들처럼 빛나고 있었다.



햇살에 취해

억새에 취해

먹먹한 그리움마저 삭아 내리는 오후

건널 수 없는 것들과

가 닿을 수 없는 것들의 세상은

풍경으로 비리게 살아서 돌아온다.

나는 기억의 빗장을 닫고

기어이 저 풍경과 한 몸으로 뒹굴고 말았다.

 

바다가 고독하니 개도 고독했다.

저 개는 정의롭지 못한 자들의 세상을 뒤로 하고

하필 마라도에서 고독한 삶의 제왕이 되었을까.

뛰어도 뛰어도 겨우 한 바퀴 뿐인 섬에서

바다는 고독했고 개들은 더 고독했다.

허나 견공이여, 나는 네 고독이 눈부시게 부럽구나.

 

   

노을 앞에 다다라서야

세상에 숨을 붙여 놓는 일이

얼마나 아름다운 일인가 알았다.

바다와 하늘이 서로 마주보며 노을을

품는 것처럼 사는 일이란 사람은

사람을 품고 노을처럼 스러지는 일이다.

노을처럼 저 하늘 절벽을

기어오르는 것이다.

기어오르다가 붉게 떨어지는 일이다.

종교와 시간을 넘어

위대한 자연의 샤먼이 되는 일이다.

그러나 지는 노을은 말없이 바다를 넘어가며

붉은 빛만 던져 주었다.

 

 

소리도 빛도 아닌 것들이

심장 안쪽을 돌아 밖으로 튀어 오를 때

! 하는 가르릉 거림을 멈출 수 없었다.

텅 빈 시선 끝으로 가볍게 내려앉는

시간이 침묵의 틈새에 발을 빠트린 채

적멸로 사위어 가고

나는 절대의 시간을 체념하며

속으로 웃고 말았다.

순간, 사방이 붉어졌다 다시 하얘졌다.

나는 너에게 갇히고 말았다.

어디론가 광속으로 끌려가다가

붉은 빛의 줄 하나를 붙잡고

! 하는 가르릉 거림을 멈추었다.

그 섬, 마라도에서…….

 

   




















편집부 기자
작성 2018.07.19 11:33 수정 2020.07.05 12: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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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1-30 10:21:54 / 김종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