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연강의 인문으로 바라보는 세상] 갈대에게서 배운다

입력시간 : 2019-11-04 10:34:43 , 최종수정 : 2019-11-04 10:35:40, 편집부 기자


 

브로니 웨어Bronnie Ware 내가 원하는 삶을 살았더라면에는 의미심장한 내용이 담겨있다. 그녀는 간병간호사로 일한 경험을 바탕으로 임종을 앞둔 환자들에게 가장 후회되는 것이 무엇인가?”라는 설문을 했다.

 

주목할 점은 환자 중 누구도 일을 더 하지 못해 아쉽다.”거나, “돈을 더 모으지 못해 한스럽다.”고 후회를 한 사람은 없다는 것이다. 많은 환자가 가족과 시간을 보내지 못한 것, 친구와 정을 나누지 못한 것, 자신 내면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지 못한 것, 감정을 충분히 표현하지 못한 것 등에 대한 소회를 밝혔다고 한다.

 

그녀가 인터뷰한 대부분 환자가 이렇듯 재산상의 문제가 아니라 정서, 유대, 감정에 관련된 문제를 풀지 못하고, 안타까움 속에 세상을 하직했다. 이런 점에서, ‘이란 인간의 생존을 유지하는 한 축임이 틀림없지만, 인간의 삶이 일과 물질에 경도될 때에 인간관계와 인간 심리에 치명적인 결과를 초래함은 분명해 보인다.

 

일에 관련하여 재미있는 표현이 있다. 우리가 흔히 알고 있고, 외식업체 광고에서 많이 목격한 TGIF가 대표적인 단어. 원어는 Thank God It’s Friday! 이다. 얼마나 일에 치였으면, “, 신이여 감사합니다, 금요일이군요!”라고 외치겠는가. 정반대로 TGIM도 있다. 일에서 재미를 느끼는 사람들로서는 무료한 주말이 빨리 끝나서 일을 죽어라 하고 싶은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이들은 월요일이 되면 신에게 감사한다. Thank God It’s Monday! (신이여 감사합니다, 월요일을 주셨으니). 이쯤 되면 일에 중독되었거나, 미쳤거나 둘 중의 하나일 것이다.

 

어차피 인간은 거의 한 평생 일을 하다가 삶을 마치게 되어있다. 그 일이 자신의 적성에 맞고 자신이 좋아하는 일이라면, 삶은 진지하고 재미있고 보람될 것이다. 그 후에 맞는 죽음이란, 비교적 행복하거나, 그래도 조금 아쉽거나, 괜찮았다고 말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서양의 문구 중 죽음은 확실하지만, 그 시기는 분명하지 않다.”라는 말이 있다고 한다. 그렇다면 죽음은 내일 올 수도, 더러는 먼 훗날 올 수도 있는 것인데, 문제는 전자처럼 곧 죽음을 맞는다면 무엇을 남겨놓겠다라는 생각은 매우 어리석고 치명적이지 않겠는가.

 

무엇에는 한순간에 담을 수 있는 어떤 가치가 있을까. 마지막 순간에 의미 있다고 생각할 수 있는 어떤 가치를 담을 수 있을까. 잠시 생각한다면 인간이 한평생 끝없이 추구하는 재산이며, 명예 그리고 권위도 다 부질없는 것이 될 수 있다. 마지막 순간을 가치 있게 만들 그 무엇에 과연 이 중 몇 개가 포함될 수 있겠는가.

 

꽉 찬 삶이 아니라 자신에게 공백(여백)을 부여하는 것은 어떨까. 빈 곳을 부여하는 것이다. 그래야 삶을 성찰하고, 부족함을 알고, 사회를 통찰하는 여력이 생길 것이다. 글에서도 예를 든다면, 글자가 가득 쓰여 있는 시는 왠지 가슴에 잘 들어오지 않는다. 마찬가지로, 삶이란 원래 부족한 것이므로, 부족함을 알고 인정할 때에만 마음의 여유와 평안함이 생기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마음의 빈 곳을 남겨놓은 것은, 세상사의 스트레스를 이겨내고 경쟁 사회의 냉혹함과 비인간성을 넘어설 힘을 부여할 수 있다.

 

우연히 한밤에 라디오를 듣다가 미처 몰랐던 억새와 갈대의 차이를 알게 되었다. 억새와 갈대의 차이는 무엇인가. 모양은 비슷하지만, 억새는 산과 들에 자라며, 뿌리가 억세고 촘촘하여 주변에 풀이 잘 자라지 못한다고 한다. 반면 갈대는 강이나 하천 등 습한 지역에 서식하며, 뿌리가 성기어 타 식물과 함께 자라며 군락을 이룬다고 한다.

 

외양은 비슷하나 갈대 뿌리의 빈 공간은 스스로에게 건강을 부여하면서 타자와의 융합. 소통을 허락하는 삶이다. 또한 바람에도 한없이 관대하여 조화를 이루어내는 갈대의 유연함을 생각하면, 우리 인간도 이 같은 생각의 유연함이 필요하지 않을까 싶다. 억새의 억셈보다는, 갈대에게서 배우는 공존의 지혜가 가슴에 와 닿는 이유이다.

 

[신연강] 인문학 작가, 문학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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