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승선의 산사기행] 오사카 흥복사



오사카 흥복사

 

봄비가 내렸다. 봄비가 몸속을 뚫고 지나가자 차가운 통증이 시작되었다. 차가운 것들은 봄에게서 시작된다. 봄비의 몸속에서 차가운 것들이 몸서리치며 기어 올라왔다. 벌써 삼월은 중순을 지나고 있었지만 봄은 여전히 차가웠고 토요일이 되어서야 봄비는 멈췄다. 색이 바랜 검은 코트는 토요일 오후를 닮았다. 나는 검은 코드를 벗어서 걸어두고 색이 바래지 않은 짙은 청색 바바리를 꺼내 입었다. 토요일 오후가 환하다. 봄도 환해졌다. 문득 오사카의 봄이 궁금했다. 나는 여행 가방을 꾸리다가 선운사 동백은 피었을까 하며 혼자 중얼거렸다. 갑자기 붉은 동백이 머릿속을 돌아다녔다. 하필 많고 많은 동백 중에 선운사 동백이 생각났는지 알 수 없었다. 서정주 때문일 게다. 삼월만 되면 동백꽃으로 사람들을 홀리는 서정주의 시 때문일 것이다.

 

선운사 고랑으로

선운사 동백꽃을 보러 갔더니

동백꽃은 아직 일러 피지 않았고

막걸릿집 여자의 육자배기 가락에

삶의 애환에 젖은 애절한 음조

작년 것만 시방도 남았습디다.

그것도 목이 쉬어 남았습디다.

 

삼월이 되면 선운사로 동백을 보러 가고 싶었지만 갈 수 없었다. 출판사 일은 매우 바빴고 나는 겨우내 마른기침을 쏟아내며 밥벌이에 매진했다. 나는 매번 명쾌한 밥벌이를 갈망했지만 한 해 두 해 동백만 피고 졌다. 밥의 완전성은 이번 생애엔 없을지 모른다. 그래서 선운사 동백은 내게 애증이다. 그리움만 넉넉하게 쌓여 기다리는 삼월은 왔지만 내게 봄은 아직 당도하지 못했다. 그래서 나는 서정주의 시집을 뒤적거려 선운사 동구를 읽으며 삼월을 달랬다. 그러던 와중에 일본을 갈 기회가 생겼고 오사카로 떠나기 전날 밤 여행 가방을 싸면서 나는 오사카에도 선운사처럼 동백이 피어있었으면 좋겠다고 혼자 읊조렸다.


      

인천공항에서 오전에 제주에어를 타고 두어 시간 바다를 건너 도착한 오사카에 짐을 풀자 오후였다. 나는 서두를 일도 없는데 복잡한 일본지하철을 여러 번 갈아타고 나라현 흥복사에 도착했다. 마침 일본의 국경일이라 그런지 사람들이 무척 많았다. 그런데 조용하다. 질서도 정연하다. 교육의 힘일까 민족성일까. 일본인들의 침착함과 친절함이 낯설다. 하지만 경외롭다. 그들의 삶의 방식처럼 흥복사는 단아하고 명쾌했다. 작고 왜소한 일본 할머니의 맑은 미소 같다. 남에게 끼치는 피해는 두고 볼 수 없다는 표정의 일본 할머니를 닮은 흥복사의 벚꽃은 아직 피지 않았다. 두 팔을 벌려 하늘을 찌르고 있는 가지만 삼월의 바람을 희롱하고 있었다. 선운사 동백 같은 동백이 흥복사에도 있을까 하고 연신 눈동자를 굴려 봤지만 동백은 찾을 수 없었다. 그래, 서정주의 선운사 동백은 선운사에 있어야 한다. 그래야 동백이고 선운사다.

 

아스카 문화가 만들어 낸 흥복사는 백제의 왕족 후손이 세운 절로 우리나라와 인연이 깊다고 하니 내가 선운사 동백을 생각하며 온 것도 인연이 아닐 수 없는 것이리라. 경내로 들어오자마자 오른쪽 편에 웅장하게 서 있는 오층탑이 눈길을 끈다. 그 높이가 51m나 된다고 하니 탑이 아니라 대웅전 같은 느낌이 들었다. 일본에서 두 번째로 높은 나무건축물이다. 이 오층탑은 다섯 번의 화재로 다 불타버렸으나 1426년에 새로 지어 지금까지 잘 보전되어 오고 있다. 나는 한참을 오층탑 앞에 서서 바라보았다. 부처의 시간이 인간의 시간을 품고 서서 오사카의 하늘을 떠받치고 있는 것 같았다.

 

봄 햇살이 은구슬처럼 내리는 토콘도 기와지붕 처마 끝과 오층탑의 이층처마가 어깨를 나란히 하며 은구슬 같은 햇살을 서로 나누고 있었다. 그 왼쪽 옆에는 국보관이 있는데 이 국보관에는 일본 국가보물인 여러 개의 불상이 안치되어 있다. 그 중에 얼굴 세 개가 달린 아라한상이 유독 마음을 끌었다. 아이 같은 얼굴로 세상의 모든 번뇌를 안고 있는 표정은 보는 사람의 번뇌까지 다 빨아들일 것 같았다. 다시 동금당으로 가보니 그곳엔 유마거사가 인상을 잔뜩 찌푸린 채 있었다. 중생이 아프니 나도 아프다고 한 그의 말처럼 그의 얼굴은 아픈 건지 고뇌하는 건지 알 수 없었다.

 

일본인들의 신앙은 절에 국한되어 있지 않듯이 경내 한쪽 끝에 신사가 있었다. 신앙의 힘이 부처이든 신사의 천왕이든 그 또한 분별할 일이 아니다. 그들은 신사 앞에서 자신의 안녕을 빌며 시간 속을 살아가고 있었다. 절망을 지고 올라와서 희망을 지고 내려가는 그들의 뒷모습은 우리가 살아가는 우리의 모습이 아니던가. 그래서 절이든 신사든 교회든 신앙이라는 사랑은 어느 곳에서도 안녕이 될 수 있을 것이다.

 

흥복사 경내를 제집 드나들듯 활개를 치는 사슴들은 사람보다 먼저 해탈한 표정이다. 도를 아는 듯 한 저 표정 속에 부처가 있었다. 동물과 사람이 경계를 두지 않고 평화롭게 공존하는 흥복사에서 나는 자연과 인간, 그 완전과 불완전의 틈에 빠져 버린 오사카의 삼월을 보았다. 참한 봄이다. 봄이 내게로 왔다.

 

전승선 기자 









전승선 기자
작성 2019.11.11 10:00 수정 2020.09.11 16: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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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1-30 10:21:54 / 김종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