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승선의 산사기행] 오사카 동대사




오사카 나라현 동대사 아래 편의점에서 양산을 하나 샀다. 보랏빛 바탕에 아주 작은 땡땡이 무늬가 있는 양산이다. 한 뼘 정도 되는 작고 앙증맞은 양산은 순식간에 오사카를 사랑하게 만들었다. 아직 양산을 받쳐 들 시절은 아니지만 삼월의 동대사 아래 편의점은 양산으로 나를 단박에 사로잡아 버렸다. 우리 돈 만이천원을 지불하고 나오면서 나는 서울의 여름이 떠올라 입을 열고 삐죽삐죽 나오는 웃음을 참느라 혼났다.

 

양산은 어머니다. 어머니가 양산이다. 하얀 양산 아래 자줏빛 한복을 입고 하얀 고무신을 사뿐사뿐 내딛던 어머니는 항상 먼 하늘을 바라보며 걸으셨다. 어린 나는 어머니의 양산이 갖고 싶었다. 어머니의 양산은 태양을 피하는 것이 아니라 태양을 사랑하는 것 같았다. 그러니까 어머니의 양산은 필연必然도 아니고 우연偶然도 아닌 아주 자연스러운 자연自然 그 자체였다. 나는 양산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했다. 태양 때문이었다. 아니다 어머니 때문이었다. 어머니와 양산 사이로 태양이 내렸고 나는 고독에 길들여진 여름이 두려웠다. 그래서 여름이 오기도 전에 어머니를 닮은 양산을 사고 싶어 안달했다.

 

어머니의 하얀 양산과 나의 보랏빛 양산 사이를 넘어 태양은 오사카 나라현에서 따뜻하게 내렸다. 참 따뜻했다. 이따금 바람이 몰려와 머리카락을 흔들어 놓고 도망갔지만 오래전에 세상을 떠난 어머니의 추억이 동대사 앞에서 양산으로 되살아 티끌처럼 가벼운 질량으로 내게로 왔다. 그랬다. 나는 낯설어진 기억의 문을 열고 양산을 사서 가볍고 가벼워진 어머니를 추억했다. 그게 다다. 그래서 오사카 나라현에 있는 동대사의 봄은 양산 속으로 들어가 따뜻함으로 피어났다. 오랫동안 펴보지 못하고 꾹꾹 눌러 놓았던 어머니의 애증을 놓아버려도 좋을 듯 했다. 하얀 양산처럼 하얗게 사라져버린 어머니의 이름도 이제는 바르게 놓아야 할 것 같았다. 어머니가 떠난 나이에 도달한 나는 아직도 옹졸하고 편협하다. 오사카의 봄 햇살이 그렇게 말하고 있었다.

 



 

사랑하는 어머니 비에 젖으신다/ 사랑하는 어머니 물에 잠기신다/ 살 속으로 물이 들어가 몸이 불어나도/ 사랑하는 어머니 微動도 않으신다/ 빗물이 눈 속 깊은 곳을 적시고/ 귓속으로 들어가 무수한 물방울 만들어도/ 사랑하는 어머니 微動도 않으신다/ 발밑 잡초가 키를 덮고 아카시아 뿌리가/ 입 속에 뻗어도 어머니, 뜨거운/ 어머니 입김 내게로 불어온다/ 창을 닫고 귀를 막아도 들리는 빗소리/ 사랑하는 어머니 비에 젖으신다/ 사랑하는 어머니 물에 잠기신다

 

이성복 시인의 시를 가슴에 품어 보고 싶은 삼월, 어머니는 하얀 양산위 햇살로 내려오고 나는 봄빛을 맞으며 오사카에서 보랏빛 양산을 샀다. 참 잘했다. 그래 정말 잘했다. 이젠 어머니를 놓아드려도 좋을 것이다. 나는 한결 가벼워진 마음으로 동대사 의 대화엄사 문을 통과했다. , 가벼운 발걸음이 좋다. 사뿐사뿐 걸어가는 내가 좋았다.

 

크다. 동대사의 웅장함이 중생을 압도한다. 원효를 사랑했던 일본인들의 사상이 동대사에서 화엄종 본산이 되어 번성했다. 8세기쯤에 신라 고승 원효의 책이 심상에 의해 일본으로 건너가게 된다. 책은 원효의 사상을 이어받는 계기로 작용하고 일본의 많은 스님들과 철학자들이 원효의 삶을 따라 원효사상이 일본에 꽃을 피우게 된다. 참 아이러니하다. 정작 우리는 위대한 원효를 가졌는데도 제대로 연구조차 이루어지지 않고 오히려 일본이 원효를 더 사랑하니 역사는 그래서 재밌다. 원효의 일체유심조만이 우리가 아는 사상의 전부라고 자만하는 동안 역사는 이렇게 바뀌고 말았다.

 

대화엄사 문을 지나 대불전으로 들어가 보았다. 나는 부처님께 삼배를 올리고 싶었지만 사람들이 너무 많아 마음속으로 올렸다. 우리네 절처럼 삼배를 올릴 수 있는 마루가 없다. 그저 신기하게 바라보는 수많은 중생들의 시선만 요란하게 부처님에게 몰려 있고 부처님은 여전히 삼매에 들어 있는지 가늘고 긴 눈은 흔들림이 없었다. 큰절 동대사는 고대 백제를 동경했던 일본인들이 백제를 닮고 싶어 만든 절이다. 요즘 불고 있는 한류의 원조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동대사 건축의 총책임자는 고구려인이 맡았고 비로자나불 주조는 백제인이 맡았으며 대불전은 신라인이 맡아서 만들었다니 삼국이 힘을 합해 동대사를 만들어 일본에 불교를 널리 펼친 것이다.


동으로 만든 이 비로자나불상이 세계에서 제일 큰 부처님이라는데 26만 명의 인력이 투입되어 만든 불상으로 747년 쇼무 일왕이 일본 전역에 있는 동500톤을 모아 여덟 번의 주조로 26년에 걸쳐 만들어낸 세계최고의 역작이란다. 이러한데 네 나라 내 나라를 구별한들 무슨 소용이란 말인가. 차별을 차별하는 것이 불관용일뿐이 아니던가. 우리는 그저 살아남으려고 안 해도 살아남고 죽으려고 해도 죽지 않는 진여를 찾아가는 영혼의 순례자 일뿐이다.

 

오사카 나라현 동쪽에 있는 큰절 동대사에서 나는 어머니의 하얀 양산과 나의 보랏빛 양산 사이의 간극을 넘어 비로자나불의 무심한 미소를 보았다. 그래, 나는 저 무심을 찾아 동대사에 왔는지 모른다. 봄햇살이 내리는 동대사에 말이다.

 


전승선 기자









전승선 기자
작성 2019.11.18 10:39 수정 2020.09.12 22: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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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1-30 10:21:54 / 김종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