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경수 칼럼] 도리깨 소리가 들린다.

 






예전 농촌에서 이맘때면 집집이 도리깨를 내리치는 소리가 끊이지 않고 들렸었다. 도리깨를 만들려면 먼저 어른 키보다 조금 더 길면서 종일 붙잡고 일을 하기에 적당한 굵기의 막대기를 잘라 한쪽 끝에 엄지손가락 굵기의 구멍을 뚫어야 한다. 그곳에 옹이가 있는 짧은 나무토막을 핀처럼 박아 반대쪽 볼펜 길이만큼 튀어나온 곳에 미리 불에 달구어서 잘 구부려둔 1.2m 길이의 물푸레나무를 세 네 개쯤 끼워 넣고 밖으로 빠져나가지 않도록 부드러운 칡이나 끈으로 단단히 동여맨다. 그리곤 물푸레나무 아래로 한 뼘씩 내려갈수록 약간 틈을 벌려 두세 곳을 칡으로 묶는다.

 

그 아래쪽은 나머지 갈래가 평탄치 못한 장소에 있는 곡물을 제각각 두드릴 수 있도록 적당한 길이로 남겨 놓는다. 도리깨 막대기를 잡고 땅바닥을 향해 힘껏 내리치면 갈퀴처럼 생긴 단단한 물푸레나무가 회전하면서 곡물 단을 사정없이 때리게 된다. 이처럼 수없이 반복되는 도리깨의 위력에 바짝 건조된 곡물의 껍질이 터지며 알맹이가 밖으로 빠져나오는 것이다. 도리깨에 물푸레나무를 사용하는 건 가늘면서도 곧게 잘 자란 이유도 있지만 불에 살짝 달궜을 때 잘 구부러져 취급이 쉬워서다. 또 자체 무게 때문에 회전력이 매우 우수하고 땅바닥에 수없이 내리쳐도 나무가 잘 깨지지 않는 장점이 있다.

 

이 외에도 물푸레나무는 탄력이 좋아 예로부터 2~3년생을 잘라 돌을 깨는 석공들과 일반 가정에서 사용하는 망치 자루로 사용했었다. 지금도 산업현장에서 비슷한 용도로 많이 쓰이고 있다. 도리깨는 농기계가 발달하기 전까지 우리의 농촌에서 없어선 안 될 아주 중요한 도구 중의 하나였다. 추수철이 되면 껍질이 있는 모든 곡물은 일단 너른 마당이 있는 집으로 운반해야 했다. 그러기 전에 마당을 쓸어 내거나 튀어나온 돌은 미리 제거하는 것이 좋다. 만약 상당한 양의 비가 내렸다면 마당이 완전히 마를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 땅이 무르면 마당 속으로 많은 낟알이 박혀 들어갈 수도 있기 때문이다.

 

이제 탈곡을 해야 할 곡물을 넓게 펼쳐 놓고 그 위를 사람이 돌아다니며 도리깨로 수없이 반복해서 두드려 대야 한다. 예전 도리깨는 웬만한 농촌의 가정에서 직접 만들 수가 있었기 때문에 한 집에 네다섯 개씩은 늘 갖고 있었다. 농촌에서는 그만큼 흔한 물건이기도 했지만, 두드릴 사람이 많거나 미처 준비를 못 했을 땐 이웃집에서 부담 없이 빌려다가 쓸 수도 있는 도구이기도 했다. 도리깨가 부족하다는 건 사전에 농부의 준비가 부족했다는 뜻과도 같다. 그런 이들은 늘 부지런히 움직이며 열심히 일해 온 농부보다 농작물의 수확량부터 큰 차이가 난다. 때문에 가난하게 사는 건 어쩌면 당연한 건지도 모른다.

 

도리깨질을 할 땐 아이들이 접근하지 못하도록 미리 단속을 해 놓고 두드려야 한다. 혹시라도 허공에서 돌아가는 도리깨에 아이가 맞기라도 하면 크게 다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도리깨질의 회전 반경을 조금 벗어난 곳에서 다른 사람이 같은 방향으로 뒤따라 나가며 도리깨질을 하게 되면 훨씬 더 빨리 끝낼 수가 있다. 그렇게 서너 명이 넓은 마당을 천천히 회전하면서 두드리는 모습을 보는 것도 장관이다. 도리깨질이 어느 정도 능숙해지면 그냥 똑바로 선체 땅바닥을 향해 내리치는 것보다 도리깨의 손잡이를 약간 비틀어 사선으로 힘껏 내리치면 회전력의 속도와 길이가 더해져 곡물을 탈피시키는 효과가 훨씬 높게 된다.

      

서너 개의 도리깨가 돌아갈 때 바람을 가르며 제각기 '!' '!' 내는 소리로도 두드리는 사람의 힘과 능력을 짐작할 수가 있다. 땅을 세게 내리치는 둔탁한 소리까지 겹쳐지게 되면 듣는 이나 도리깨를 두드리는 사람까지 저절로 장단에 맞춰 흥겨운 박자를 탈 수도 있다. 그 소리는 우리 민족 고유의 흥과 혼이 담겨 있는 느낌이 들기도 한다. 도리깨질에 곡물이 어느 정도 떨어지면 그 뒤를 다른 사람이 천천히 따라가면서 낫으로 바닥에 깔린 곡물 더미를 살살 들어 올려 뒤집어 놓는다. 그런 일을 두세 번은 반복적으로 해야만 낟알 껍질이 터지고 깨져서 그 속에 들어 있는 알맹이가 모두 밖으로 빠져나오는 것이다.

 

1년을 힘들여서 지어 놓은 작물에서 곡물을 모두 털어내려면 작물 종류에 따라서는 이러한 일을 여러 차례 또는 며칠을 반복해서 도리깨질만 해야 가능하다. 예전에는 감자와 고구마 그리고 과일 채소류 등을 제외한 거의 모든 농작물은 도리깨를 사용해야 사람이 먹을 수 있는 낟알로 만들 수가 있었다. 그렇다면 그 곡물의 종류를 한번 대충 나열을 해 보자. , 보리, , , 수수, , , 등 수없이 많다. 문제는 도리깨질을 하려면 작물 종류에 따라 밭에서 줄기 채로 베어 지게에 짊어지고 집으로 옮겨 와야 한다는 것이다. 요즘같이 질이 좋은 천막은 물론 마당처럼 잘 다져진 넓고 고른 땅이 예전엔 드물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힘들여 떨어뜨린 낟알은 한쪽에 수북이 쌓아 놓곤 흰 수건을 머리에 둘러쓴 할머니가 키에 조금씩 담아 여러 번을 쳐올려서 잡티와 자잘한 돌멩이를 제거한 낱알만 골라낸다. 우리의 농촌에서 도리깨가 완전히 사라지게 된 것은 불과 30여 년도 안 된다. 도리깨가 농촌에서 처음으로 쓰이게 된 게 언제인지 잘은 모르겠으나 아마도 한 천년은 되지 않았을까 싶다. 이런 훌륭한 도구를 한순간에 몰아낸 것은 바로 '와롱!' '와롱!' 소리를 내며 돌아가는 탈곡기라는 작은 기계다. 원동기를 사용한 좀 더 진화된 기계가 나오기 전까지는 획기적인 탈곡 장비였던 것만은 분명하다.

 

사람이 뒤에서 탈곡기의 페달을 천천히 밟아 주면 U형으로 구부려진 철사가 목재 위에 빼곡히 박힌 둥그런 원통이 돌아간다. 어느 정도 탄력이 붙은 뒤에 작물을 탈곡기 바깥쪽 U형 철사 위에 갖다 대면 신기할 정도로 낟알이 잘 떨어져 나간다. 다만 탈곡기가 고속으로 회전할 때 호기심 많은 어린이는 두 사람이 동시에 밟도록 만들어진 기다란 페달에 잘못 올라서게 되면 탈곡기의 탄력에 가벼운 몸이 위로 들어 올려서 앞으로 꼬꾸라질 수도 있다는 것이다. 이 탈곡기는 책상만 한 크기여서 무게도 비교적 가볍다. 그래서 농촌 어느 곳이나 이동이 자유롭다.

 

그렇다 보니 작물의 수확량이 많더라도 모든 곡물 단을 집까지 지게로 지어 나르던 예전과 달리 탈곡기를 수확 현장으로 직접 옮겨 올 수 있어서 매우 편리해졌다. 그러나 값이 문제였다. 소작농이나 가난한 농부는 단순히 수확만을 위해 그렇게 큰돈을 쓸 수가 없었을 것이다. 때문에 탈곡기는 마을마다 잘해야 한둘 정도 있었을 뿐이다. 우리의 아버지 세대들이 자주 사용해 왔던 도리깨는 재래식 탈곡기와 같이 집집이 경운기가 보급되면서 이젠 잊혀 가는 추억의 농기구가 되었다. [이경수 / 칼럼니스트]


전명희 기자

 

 


편집부 기자
작성 2019.11.21 09:54 수정 2020.09.12 22: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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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1-30 10:21:54 / 김종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