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계봉의 산정천리] 억새가 가을과 만나 은빛바다 이룬 포천 명성산

명성산 은빛 억새는 슬픈 울음소리(鳴聲) 따라 서럽게 춤춘다



원로 가수 고복수 선생이 부른 짝사랑이라는 노래 첫마디는 "~ ~ 으악새 슬피우니 가을인가요"로 시작한다. 가을이 오면 60대 이상 장년층들은 으레 이 가사를 읊조리며 계절의 상념에 빠지곤 한다. 그런데 으악새는 날아다니는 ()’가 아닌 억새의 경기도 방언이라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의외로 많지 않다.

 

깊어가는 가을, 명성산에 은빛 억새가 춤춘다. 흔한 억새라지만 명성산 팔각정 아래 약 6만 여 평의 산 사면을 뒤덮은 억새의 군무는 가히 황홀경이다.


한파 주의보까지 내린 늦은 가을날, 눈에 아른거리는 억새의 유혹을 참지 못하고 길을 나선다.




억새밭으로 가는 등산로 초입의 비선폭포를 지나서 계곡을 따라 가면 물줄기가 제법 우렁찬 등룡폭포를 만난다. 완만한 등산로를 따라 계속 올라가면 성인 남자보다 키가 큰 핑크빛 억새가 고개를 내민다. 여기서 팔각정 아래까지 억새밭이 끝없이 펼쳐진다. 그 사이를 걷는다는 것보다 헤쳐 간다는 말이 적절한 표현이 아닌지.



 

 



명성산에 억새밭이 생긴 까닭은 1950년대 화전민들이 산에 불을 놓아 잡목을 태우고 밭을 일궜기 때문이다. 이후 화전 경작이 금지되면서 명성산 능선은 생존력 강한 억새가 대신 자리 잡았다.



 



억새의 꽃말은 은퇴인데 쓸쓸한 가을의 이미지와 잘 어울린다. 올 여름 공직에서 은퇴한 기자와 같은 처지라 더 애착이 간다.

 

푸른빛이 감도는 하늘과 절묘하게 조화를 이루는 은빛 억새의 물결은 가을을 더욱 깊어가게 한다. 출렁이는 은빛 물결 속을 거닐면 가을의 정취를 온몸으로 느끼게 된다. 화려한 단풍에서 느끼지 못한 수수한 가을의 장엄함을 느낄 수 있다.






 

억새밭 전망대에 서면 동북쪽으로 상해봉, 대성산, 백암산, 동쪽으로 광덕산, 동남쪽으로 백운산, 국망봉으로 이어지는 산그리메를 조망할 수 있다.

 

명성산(923m) 산 이름에는 슬픈 사연이 담겨있다. 부하 왕건(王建)에게 쫓기어 피신하던 태봉국의 왕 궁예(弓裔)가 이 산에서 목숨을 잃게 되는데, 주인을 잃은 신하와 말이 산이 울릴 정도로 슬프게 울었다고 하여 울음(鳴聲)산이라는 이름이 붙여졌다고 한다.


 

 



하산 길에 들린 자인사(慈仁寺)는 깎아지른 듯한 기암괴석을 등 뒤에 놓고 산정호수를 자애롭게 바라보고 있다. 1,100년 전 궁예와 왕건, 그들이 겪은 갈등과 원한을 부처님의 자비로 포용하고 화합하기 위해 절 이름을 지었다고 한다. 작은 것 하나에도 쉽게 화를 내고, 사소한 것이라도 나와 다른 것이라면 경계하는 우리들에게 작지만 큰 절, 자인사는 묵직한 메시지를 남긴다.


 

 

 


호수를 한 바퀴 감싸고 있는 산정호수 수변은 붉은빛 적송들이 호수로 드리워진 약 3.2km에 이르는 데크 길로 되어 있다. 걷는 내내 병풍처럼 둘러싼 명성산을 중심으로 양 옆의 망봉산과 망무봉, 그리고 이들의 반영을 담은 잔잔한 호수가 시선에서 벗어나지 않아 산정호수의 진면목을 제대로 느끼며 편안하게 산책할 수 있다.





 

곳곳이 가을의 끝을 향해 치달리는 요즘, 사랑하는 이와 함께 이 계절의 마지막을 한껏 누리고 싶으면 늦가을의 감성을 뽐내는 명성산으로 호젓하게 떠나 보는 건 어떨까?

 

 

 


여계봉 선임기자

 

 













 










편집부 기자
작성 2019.11.21 10:57 수정 2019.11.21 11: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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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1-30 10:21:54 / 김종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