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승선의 산사기행] 불광산 장안사





불광산 장안사

 

특별히 애정을 두었던 봄이 다 흘러가고 있었다. 매해 찾아오는 봄이 뭐 그리 특별할까마는 종로에서의 봄을 나는 몹시도 아끼고 사랑했다. 도시의 겨울은 더디고 지난했으며 지겨운 겨울코트처럼 질기게 내 몸에 엉겨 붙어 있었다. 나는 아침저녁으로 인사동 거리를 걸을 때마다 한 평 남짓한 화단에 핀 봄꽃들에게 봄의 안부를 묻곤 했다. 봄꽃들은 작은 몸을 곧추세우고 세계 각국에서 여행 온 사람들에게 자신의 존재를 알리고 있었지만 사람들은 그저 낯선 나라의 봄꽃에게 인사 따위는 관심을 두지 않았다. 그들의 여행은 꽃보다 여행이었을 것이다.

 

나의 봄은 인사동 골목 안쪽 깊숙한 곳에 자리 잡은 이층 사무실 베란다에서 시작된다. 소백산 산골서재 텃밭에서 여러 해 살고 있던 도라지, 흰딸기나무, 가시오가피를 모셔와 사무실 베란다에 심었다. 삭막했던 도시의 사무실 베란다에 소백산이 들어왔으니 나는 시도 때도 없이 베란다로 나가 꽃들이 전해주는 소백산의 전언을 듣곤 했다. 소백산을 베란다로 들이고 나서 첫 번째 봄을 맞이한 사월을 나는 특별히 사랑했다. 화랑들이 즐비한 인사동 골목마다 화가들이 그린 그림의 꽃들이 만개했지만 나의 봄은 소백산을 옮겨 논 사무실 베란다에서 완전성을 획득하고 있었다.

 

그런데 사실, 소백산에서 모셔 온 흰딸기나무의 본적지는 남쪽바다 오곡도였다. 몇 해 전 오곡도 여행을 하면서 귀한 흰딸기나무 한 뿌리를 선물 받아서 소백산으로 모셔와 심었었다. 소백산에서 두 해를 거쳐 뿌리를 내린 흰딸기나무는 소백산을 떠나 종로 사무실 베란다로 올 수밖에 없는 사연을 지니게 되었다. 바다의 바깥쪽 섬과 내륙의 안쪽 소백산과 그리고 서울 한복판 종로에서 흰딸기나무의 삶은 부침을 당하고 말았다. 하지만 그 질긴 생명력은 참으로 경이로웠다. 봄바람이 불어대는 사무실 베란다의 좁은 화분 안에서 싹을 밀어내더니 이내 무성하게 잎을 틔워냈다. 나는 흰딸기나무를 보면서 오곡도를 떠나 소백산에 머물다가 다시 종로에 이주해 온 것이 미안하고 고마워 특별히 관심을 집중했었다. 봄은 사무실 베란다로부터 생명을 키워내고 나는 생명으로부터의 사유를 궁금해 하며 문득 떠나고 싶었다. 딸기나무의 고향을 찾아 그곳의 봄기운을 담아와 흰딸기나무에게 안겨 주고 싶었다. 나의 사월은 오곡도로 떠나기에 아주 적당한 봄이었다.

 

나는 흰딸기나무가 온 길을 역으로 되짚어 가보기로 했다. 종로에서 출발해 영동고속도를 타고 원주를 지나 중앙고속도를 갈아타고 한참을 달리다가 풍기로 내려왔다. 그리고 소백산의 아름다운 봄과 마주하며 한참을 바라보았다. 봄이, 생명이 그리고 나의 로망이 거기 소백산에 있었다. 그렇게 소백의 향기에 취해 내륙을 달렸다. 조용하게 흐르듯이 걸쳐 있는 국도를 따라 숱한 작은 마을들을 지났다. 봄은 마을 안쪽에도 있었고 마을 바깥쪽에도 어김없이 가득 차 있었다. 나는 봄의 기운을 한껏 담아 다시 달리고 달려 부산 언저리 불광산에 도착했다. 그리고 아침 안개로 뒤덮여 있는 불광산으로 빨려 들어갔다. 안개가 나를 이끈 것인지 불광산이 나를 불러들인 것인지 모르지만 나도 모르게 정신을 차려 보니 불광산 깊은 골짝에 숨은 장안사에 도착해 있었다. 아마 안개 때문이었을 것이다. 안개는 늘 내게 이런 마법을 걸곤 했었다.

 

봄과 흰딸기나무와 장안사는 어떤 인연을 두고 있는 것일까. 이 무심한 봄의 아침 안개는 알고 있을까. 나는 알 수 없는 의문을 품고 장안사 부처님께 인사를 올렸다. 우연히 들른 장안사 부처님과 나는 인연의 한계를 넘어 감당 할 수 없는 우주의 본성에 다가간 것인지 모른다. 이런 넘치는 생각을 하는 내가 우스워 입가로 삐죽 흘러나오는 웃음을 참느라 혼났다. 장안사 부처님도 나도 봄날 아침을 감싸고 흐르는 안개의 미명에 젖어 있을 뿐이었다. 나는 장안사 부처님께 진심으로 우주의 안녕을 빌었다. 이건 진심이다. 나의 안녕도 아니고 가족의 안녕도 아닌 우주의 안녕을 기도했던 나의 마음을 나도 모를 뿐이다. 조용히 아침 공양을 준비하시는 노스님의 뒷모습을 안개가 감싸고 있는 장안사에서 나는 그랬다.

 


 

무수한 인연을 품고 있는 장안사는 부산 사람들이 특별한 애정을 담고 있는 절이다. 범어사 말사라고 하지만 어쩌면 범어사보다 더 많은 이야기를 담고 있을지 모른다. 일체유심조를 외쳤던 원효가 지은 절이라는데 나는 젊은 시절 모든 것은 마음먹기에 달렸다고 일체유심조를 해석했었다. 아무것도 모르는 젊은 시절이니 그럴 수 있다. 모든 것은 마음먹기에 달린 것이 아니라 마음이 모든 것은 만들어 낸다는 것을 세월이 좀 흐른 뒤에 제대로 알 수 있었다. 달을 가리키는 손가락만 봤던 젊은 날의 오만이 이제 달을 볼 수 있는 나이에 접어들은 것이다. 앎이란 이렇게 시간이 해결해 주는 경우가 허다하다. 지금 알 수 있는 것을 그때는 모르는 것이 어쩌면 당연한 일인지 모른다.

 

부산 언저리에 있는 한적한 불광산에서 속세와 담을 쌓고 고요하게 도를 닦고 있는 장안사의 아침이 내게 모든 것은 마음이 만들어내는 작용이라는 원효의 가르침을 전해준다. 아침 안개가 그러하고 가지들이 서로 엉켜 하늘로 오르고 있는 법당 앞의 단풍나무가 그러하며 보일 듯 말 듯 한 미소를 짓고 계신 대웅전 부처님의 미소가 그러했다. 원효를 생각하는 나와 대웅전 부처님 사이로 작은 새가 침묵을 가르며 하늘로 날아올랐다. 그러자 봄을 몰고 오는 불광산의 바람이 아침 안개를 걷어 가고 나직한 햇살이 경내에 내렸다.

 

나직이 내리는 아침 햇살을 뚫고 불광산 장안사를 나와 다시 길을 달렸다. 길은 통영으로 이어져 있었고 통영에서 미륵도를 향해 달렸다. 척포항에서 엎어지면 코 닿을 곳에 있는 오곡도가 어서 오라고 손짓하고 있었다. 작고 척박한 섬, 오곡도의 봄은 비릿한 바다향에 묻혀 봄꽃들을 피우고 있었다. 나는 딸기나무에게 줄 오곡도의 봄향기를 듬뿍 담아 가방에 넣고 한없이 여리고 아름다운 섬의 몸을 어루만졌다. 태평양 언저리에 수줍게 떠 있는 오곡도는 딸기나무처럼 고집이거나 멸도였다. 오곡도를 떠나 종로에 사는 흰딸기나무도 고집멸도였다.

 

전승선 기자



전승선 기자
작성 2019.11.25 09:54 수정 2020.09.12 23: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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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1-30 10:21:54 / 김종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