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차영의 대중가요로 보는 근현대사]

신대한국 독립군가

일제에 항거한 독립군들의 피끓는 노래

 


 

신대한국 독립군가

 

우리들의 아버지, 그 아버지의 아버지들은 왜 내 땅에서 다른 나라 백성으로 살았을까. 왜 남 나라 말로 이름을 고치고 불러야 했었는가. 왜 만주·간도·사할린 등지에서 일본군을 대적하여 모가지를 걸고 독립군가를 갈창(渴唱)했었는가.

 

1876년 강화도 조약, 1895년 을미사변, 1905년 을사늑약, 1907년 헤이그 밀사 사건·고종 순종 양위·대한제국 군대해산, 1909년 이토오 히로부미 사살, 1910년 경술국치로 이어진 역사흐름은 조선왕조 519, 대한제국 14년의 망멸연표(亡滅年表).

 

이때 나라의 망멸에 분()하여, 1907년 대한제국 궁성시위대와 황성경비대가 폭발한다. 일제 조선통감부의 심장 종로경찰서를 습격한 것. 이에 대한 보복이 81일 대한제국 군대해산이다. 그날 통감부는 동대문훈련원에서 맨손훈련을 한다는 명분으로 장교와 병사를 비무장으로 소집한다. 그리고 군부협판 한진창으로 하여금 순종의 군대해산칙령을 낭독하고, 즉석에서 한 사람씩 명찰과 계급장을 떼어버렸다. 이에 격분한 1대대장 박승환 참령은 현장에서 자결한다. 이때 해산된 군인들이 만주·간도·상해·연해주로 분산되어 독립광복군 70여개 부대의 모체요원이 된다.

 

그때 궁성시위대와 황성경비대는 16천 명, 당시 대한제국 전체 병력 수는 미상이다. 이후 이들이 부른 군가가 용진가·복수가·독립군가·광복군가이며, 대표곡이 신대한국독립군가. 이러한 목숨을 건 절창(絶唱)항일가요 및 기타·광야의 노래·님 찾아 가는 길의 페이지마다에 민족의 결기 불씨로 살아있다.

 

신대한국 독립군의 백만 용사야 / 조국의 부르심을 네가 아느냐 / 삼천리 삼천만의 우리 동포들 / 건질 이 너와 나로다 / 나가 나가 싸우러 나가 / 나가 나가 싸우러 나가 / 독립문의 자유종이 울릴 때 까지 / 싸우러 나아가세 // 너 살거든 독립군의 용사가 되고 / 나 죽으면 독립군의 혼령이 되니 / 동지야 너와 나의 소원이 아니냐 / 빛 낼 이 너와 나로다 / 압록강과 두만강을 뛰어 건너라 / 악독한 원수무리 쓸어 몰아라 / 잃었던 조국 강산 회복하는 날 만세를 불러보세’(가사편집)  

▶ https://youtu.be/g1BliwyKPGM

 

경술국치, 1910년 대한제국이 일본의 부()가 되던 날, 대한제국 고종황제와 일본 메이지 왕은 각각 58세였다. 1852년 생 동갑네기. 한 사람은 나라를 빼앗기고, 다른 동갑네기는 다른 나라를 빼앗았다. 그래서 우리의 아버지들이 독립군가를 통창(統唱)하며 항거한 것이다. 그 때를 생각하면 분하고, 억울하고, 부끄럽고, 가슴 떨리고, 이가 앙다물어 지고, 괘씸한 복심이 분분(忿憤)한다. , 대한제국의 눈물!

유차영 : 시인 / 한국콜마 상무이사


 



정명 기자
작성 2018.07.30 12:51 수정 2018.08.07 22: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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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1-30 10:21:54 / 김종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