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계봉의 인문기행] 진도에 가면 서화가 있고 소리가 있다

2020년 새해에 남도 끝자락의 섬, 우리나라에서 3번째로 큰 섬, 진도를 찾는다. 진도대교를 지나는 차창 너머로 하오의 햇살이 비스듬히 들이친다. 온기를 머금은 남도 하늘의 미소를 보고 있자니 언 몸이 스스로 녹는다. 그러나 울돌목에 부는 예사롭지 않은 바람결에 나그네의 헛된 욕심도 어느새 씻기고 있다.

 

귀가 즐겁고 눈이 즐거운 진도다. 진도에 가면 서화가 있고 소리가 있기 때문이다. 진도는 서화가무(書畫歌舞), 글씨와 그림, 노래와 춤의 본향(本鄕)이다. 요즘 트로트계 인기 스타로 공중파 가요 프로그램을 거의 독식하고 있는 가수 송가인도 바로 진도 사람인데, 이걸 보면 허투루 나온 말이 아닌 것이 분명하다.

 

아리 아리랑 쓰리 쓰리랑 아라리가 났네

아리랑 응응응 아라리가 났네

 

다리를 건너는 차 안에서 흥겨운 진도 아리랑 노래 자락이 절로 흘러나온다. 후렴구가 흥겨운 진도아리랑에는 애(), (), ()의 험난한 삶의 역정 속에서도 표상의 아픔을 삭이면서 그 심층에서는 자신의 삶에 의미를 부여하고자 하는 진도 여인들의 삶에 대한 긍정적 인생관이 담겨 있다.


길이 484m로 국내 최초 사장교인 진도대교. 다리 아래 울돌목에는 아시아에서 가장 빠르고 거친 조류가 흐른다.
망금산(115m) 정상에 우뚝 선 진도타워는 이순신 장군의 명량대첩 승전을 기념하는 진도군 관광의 랜드마크다.




울돌목은 영화 명량(鳴梁)’ 덕분에 더욱 널리 알려진 호국 명승지다. 임진왜란 때 충무공 이순신 및 휘하 병사들이 똘똘 뭉쳐 배 13척으로 300척이 훨씬 넘는 일본 수군을 무찌른 전승지다. 130여 척에 달하는 왜군에 맞서 대승을 거둔 명량해협이다. 울돌목이라고도 불리는 진도와 해남 사이의 해협은 남해의 바다가 밀려와 서해로 가며 거친 강물처럼 요동치고 있다.

 

예향(禮鄕) 남도는 예로부터 학덕이 높은 선비와 묵객을 많이 배출해 왔다. 특히 조선 시대 진도와 해남은 한양과 멀리 떨어진 탓에 유배 온 사람들이 많았는데, 세상과 단절된 이들은 글과 그림으로 세월을 메우고 같은 처지의 주위 사람들과 교류를 활발하게 한 덕분에 학문과 예술은 꽃을 피우게 된다.

 

그 대표적인 곳 가운데 한 곳이 바로 진도 운림산방(雲林山房)’이다. 조선 후기 남종화(南宗畵)의 대가 소치(小痴) 허련(許鍊, 18081893)은 스승인 추사 김정희가 타계하자 고향에 내려와 초가를 지었는데, 안개가 숲을 이룬다고 해서 운림(雲林)’이라 불렀다 한다.

너른 첨찰산 가슴에 살포시 안긴 산방의 기운이 싱싱하고 다사롭다. 서슬 퍼런 한풍이 이곳에서는 순해진다. 산방에 들어서니 제일 먼저 시선을 빼앗는 풍경이 화실 앞의 오각형 연못 운림지(雲林池). 직접 연못 한가운데 돌로 쌓아 만든 작은 섬에는 배롱나무를, 물에는 수련을 심었다. '떠나간 벗을 그리워하다'라는 꽃말을 가진 배롱나무는 스승 추사(秋史), 차로 마시는 수련은 다성(茶聖) 초의(草衣)를 기리는 의미라고 한다.

 

지금의 운림산방은 1982년 허형의 아들 허건이 복원한 것이다.

 



운림산방 옆 화실의 당호로 들어서면 소치의 작품은 물론 그의 스승과 5대 째 화맥을 잇는 후손들의 작품도 볼 수 있다. 특히 부채에 그린 산수화 선면산수도(扇面山水圖)’와 봄이 오기 전 꽃을 피운 고결함을 나타낸 매화도’, 여름비가 내리는 운림산방을 그린 운림각도(雲林閣圖)’ 등은 소치의 전형적 화풍을 엿볼 수 있는 대표 작품이다.


선면산수도는 운림산방이 소재다. 부채의 중앙에는 우뚝하게 솟은 산이, 그 앞에는 집 세 채와 나무 몇 그루가, 그리고 하늘에는 추사체로 쓴 글이 빼곡하게 채워져 있는데, 이는 스승 추사의 품에 안긴 제자 소치의 모습을 연상케 한다.

 

소치에게는 걸출한 멘토 추사 김정희가 있었다. 일찍이 부모를 여의고 상심한 마음을 그림을 그리며 달랬는데, 스승 없이 혼자서 그림을 그리다가 32세 때 추사의 문하로 입문해 본격적으로 서화 공부를 하게 된다. 그의 그림 실력이 일취월장하여 유명해지자, 임금인 헌종과 나란히 앉아 먹을 갈고 그림을 그릴 정도로 영광을 누렸다고 한다.


 

선면산수도. 부채의 형태를 따라 펼쳐진 이 그림은 소치가 57세 때 그린 산수화다.



새해에 운림산방을 둘러보면 날씨가 쌀쌀하지만 따뜻한 햇살의 감촉을 즐기면서 한 해를 여유롭게 시작할 수 있는 영명한 기운을 얻을 수 있다.

 

진도에는 서화만 있는 것이 아니다. 진도 토요민속여행 상설 공연은 이곳의 소리를 대표한다. 진도 주민 21명으로 짜여진 진도군립예술단이 맡는데, 예술단은 전국 군 단위 기초지자체 가운데 유일하게 운영되는 공연단체이기도 하다. 매주 수요일 오후에 진도군 무형문화재전수관에서 열리는 수요 상설공연 진수성찬은 진도군 보유 무형문화재보존회에서 잘 차려 내놓는 문화예술의 성찬(盛饌)이다.



진도군 무형문화재전수관에 가면 진도아리랑과 판소리를 무료로 배울 수 있다.

 


진도 서남쪽에 있는 남도진성(南桃鎭城)은 삼국시대에 축성되었는데 고려 원종 때 진도로 남하한 삼별초군이 대몽항쟁의 근거지로 삼았던 곳이기도 하다. 조선시대에는 왜구의 침략이 잦아져 진도 주민들이 섬을 버리고 내륙지방으로 피해 살았는데, 세종 때 군사조직인 만호부가 진도에 배치되면서 본격적으로 성을 재건하게 된다.



굳건한 성벽에는 몽고와 왜구로부터 나라를 지키고자 했던 삼별초와 진도 백성들의 열정이 고스란히 담겨있다.
남도진성 내부에는 본래 마을이 있었는데 모두 사라지고, 옛 모습을 복원한 관아와 객사 건물만 외로이 남아있다.

 

 

다도해상국립공원의 보석 같은 섬과 어우러지는 해넘이는 가히 예술이다. 우리나라에서 해가 가장 늦게 떨어지는 곳이 바로 진도다. 그 중에서 가학리의 세방 낙조전망대와 급치산 낙조전망대에서 보는 낙조가 최고로 꼽힌다.

 

예전에 여기 오는 길이 너무 좁아서 셋방(細方)이라고 이름 붙여진 진도의 서쪽 끝 일몰 명소 세방 낙조는 진도에서 가장 아름다운 해안도로에 있다. 산허리에 붙은 고개를 돌 때마다 메타세쿼이아와 야자수 가로수가 나타났다가 사라지고, 섬이 떠 있는 바다도 매 순간 풍경을 달리한다.

 

급치산 전망대로 가는 길은 기세가 만만찮은 암봉 동석산을 지나서 이름 그대로 급한() 고개()를 넘어야한다. 전망대에 서면 남도 바다 위로 크고 작은 섬들이 점점이 채워진다. 하늘에 걸린 구름장은 하중을 못 이긴 낮은 천장처럼 곧 무너질 낌새이지만, 바람의 희롱으로 산발처럼 너울거린다.


속절없이 침몰한 세월호의 비극이 드리운 이 바다는 오늘도 말이 없다. 적요한 슬픈 바다를 바람이 한차례 훑고 가면 바람결에 스친 풍경은 전망대에 선 나그네에게 깊은 울림을 준다. 자연이 인간에게 주는 위로다.

 

급치산 전망대에 서면 바다 안개도 쉬어가는 조도, 관매도가 눈앞에서 손짓한다.

 

 

바다로 지는 해는 어느 곳이든 아름답겠지만 섬과 섬 사이로 빨려 들어가는 이곳의 일몰은 그야말로 압권이다.


 

붉은 태양이 바다 깊은 곳으로 내려앉을 때까지 저 장중한 자연의 침묵하는 교향악을 숙연히 바라본다. 해는 점점 붉은 색을 띄면서 온 세상을 붉게 물들이고 차가운 바다 속으로 사라진다. 잦아든 바람처럼 마음이 평온해진다.

 

전망대에서 내려서는 길옆에 철 잊은 동백나무가 진초록 동백 잎 사이로 붉게 빛나는 탐스런 꽃을 피우고 있다. 남도에서 흔히 보는 동백꽃이지만 한 겨울에 마주하니 피어있는 꽃도, 떨어진 꽃도 새삼 붉고 처연하다.

 

산자락에 얹힌 바다안개처럼 무심히 어쩌지 못한 삶의 서러운 사연들도 진도 아리랑 노래 자락처럼 접어두는 것이 어떠하리.




 

여계봉 선임기자

 

 













 




편집부 기자
작성 2020.01.08 10:09 수정 2020.01.08 1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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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1-30 10:21:54 / 김종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