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9프로젝트] 해미읍성의 호야나무

강경래



해미읍성의 호야나무



순교자의 피로 물든 슬프고도 아름다운 바다마을, 서산 海美邑城에는 호야나무라 불리는 회화나무가 있습니다. 회화나무는 비교적 발음이 어려워 지방마다 여러 가지 이름으로 불리는데, 회나무, 해나무 등으로 다양하게 불립니다. 안개비가 내리는 4월의 하순은 생각보다 훨씬 추웠습니다. 읍성 내의 입장객이라고는 나와 여학생 세 사람뿐이니 조용하다 못해 을씨년스럽기까지 합니다.


역사에 병인박해(1866)로 기록된 가톨릭 순교자는 1~2천명으로 추정하는데, 조선 전체 순교자가 8천명 정도였다고 하니 이곳의 교세를 짐작할 만합니다. 읍성 중앙에 위치한 감옥 앞에는 회화나무 한 그루가 서 있는데, 이 나무는 형틀이라는 얄궂은 운명을 가졌습니다. 당시 조정은 교인들에게 배교를 강요했고 불응하는 사람들을 호야나무 옹이 부근에 철사를 매어 고문하고 죽이는 형틀로 사용 했던 것입니다.

세월이 흘러 해미읍성 주변은 순교성지로 지정되고, 호야나무는 비극적인 운명에서 벗어나 "가톨릭 보호수"로 지정되었습니다. 주변의 나무들은 새 잎으로 물들어 가는데 반해, 350살 쯤 된 호야나무는 그 나이에 걸맞게 펼쳤어야 할 가지들이 없이 가톨릭 교인들의 애달픈 죽음과 함께 자신의 가지를 스스로 떨궈낸 듯 앙상한 모습입니다. 같은 자리, 같은 땅에 자라는 나무인데 어떻게 이런 생장의 차이를 보일 수 있을까요? 생물학적으로는 도저히 설명이 되지 않습니다. 호야나무는 피 비린내 나는 순교의 현장을 목격한 유일한 증인입니다.

반면에 동헌 앞의 느티나무는 세상의 어떤 나무보다 화려한 부귀영화를 누린 듯, 무성한 가지를 사방으로 고르게 뻗친 풍요로운 자태를 지녔습니다. 이 나무는 동헌을 드나들던 권세가들을 지켜보던 나무로 늠름하고 화려한 행색을 한 사람들을 위해 시원한 그늘을 제공해 주는 운명을 지닌 나무였을 겁니다. 하지만 이 느티나무가 몇 걸음 떨어진 호야나무에서 죽어간 사람들의 비명을 듣지 못했을 리가 없습니다. 어떻게 보면 당사자인 호야나무보다 지켜볼 수밖에 없는 느티나무가 더 고통스러웠는지도 모를 일입니다.

그래서 저 느티나무도 견디기 힘들어서 저렇게 호야나무 쪽으로 온 몸을 숙여서 비틀어져 있는지... 해미읍성은 호서좌영으로 인근 12개 군영을 관할하고 재판권을 행사하는 곳이었고, 성종 때 축조한 석축 읍성으로 한때 이순신 장군도 이곳에서 해안 방어의 임무를 수행했던 곳입니다. 지금과 달리 읍성을 축조할 당시의 해미읍성 바로 앞은 바다였습니다. 물길을 따라 수많은 이야기와 역사의 흔적 들이 아름다운 바다마을... 海美

 

 



 

 


 

 

 

 

 

 

 

 

 

 



편집부 기자
작성 2020.01.11 09:17 수정 2020.01.11 09: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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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1-30 10:21:54 / 김종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