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9프로젝트] 파란 꽃에게 보내는 편지

강혜림




어느 날 매미가 되어버린 사내가 있었다. 그가 바로 나다. 나는 매미가 되었고 이제 나는 어느 시점까지는 매미로써 살아가고 있다. 나는 우연히도 매미의 힘을 빌려 그리 짧지 않은 1년이란 시간을 두고 인간으로서의 삶을 버린 채 매미로 살고 있는 것이다.


뜨거운 여름이 오면 매미는 고목 나뭇가지를 붙들고 슬피 울어야했다. 매미가 슬피 우는 사연은 아무도 몰랐다. 사람들은 매미의 울음을 여름이면 들리는 그저 그런 소리로만 알고 있었다. 그러나 까닭은 있었다. 그렇게 슬피 우는 매미는 1년 동안을 서럽게 울다가 고목나무 밑에서 매미의 생()을 마감하는 것이다.

매미의 일생이 1년이 되는 날, 매미는 그 여름철이 끝나갈 쯤에 서럽게 울었던 울음소리와 같이 영원히 사라지는 것이다. 나는 왜 매미가 되었을까? 1년 동안만 사는 매미로써 살아야만 했을까매미가 서럽게 울어야했던 그 감정 그리고 쏟아질 것 같은 그 고백, 그래서 나는 더 이상 인간으로서 남아 있을 수 없게 된 것이다. 꿈에서 환상에서 그리하여 나는 꼭 한번만의 사랑을 위하여, 매미가 된 것이다. 매미의 울음, 그 매미의 울음은 오직 매미만이 가질 수 있는 처절한 감정이었고 피어린 절규였다. 매미는 울었다. 나는 다른 암컷매미에겐 아무런 관심이 없다. 내가 인간의 껍질을 벗고 탈바꿈을 하면서까지 매기가 된 이유는 단 하나밖에 없는 것이다. 매미가 되어야만 사랑할 수 있는 운명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매미는 아침부터 어두워질 때까지 쉬지 않고 울어댔다. 그랬다!


매미는 여름에만 꽃피우는 파란 꽃을 사랑했었다. 그 파란 꽃은 매미가 울고 있는 고목나무의 언덕너머에서 요요한 모습으로 피어 있었다. 파란 꽃은 여름철 내내, 매미의 울음소리를 들으며 낮에는 파란 꽃을 피었고 저녁에는 별빛을 받으며 사랑의 향기를 피웠다. 나는 매미가 되었다. 매미의 운명은 참으로 안타깝다. 같은 암컷의 매미를 사랑하지 못하고 그렇다고 다른 매미들처럼 짝짓기도 못하는 것이다. 암컷의 매미를 사랑하는 감정도 없었고 매미의 본능인 짝짓기도 못하면서 오직 다른 세계에 있는 파란 꽃을 사랑해야하는 운명에 그렇게 부르르 부르르, 몸을 떨면서 울어야 했다.


매미와 파란 꽃도 자연계속의 생명체이다. 서로 다른 운명으로 사랑할 수밖에 없었겠지만 매 순간 압박해 오는 운명적인 사랑을 매미와 파란 꽃은 알고 있는 것이다. 서로가 사랑할 수 있는 시간은 1년이다. 1년이 지나면 매미의 일생은 끝나는 것이고 파란 꽃도 동시에 가을낙엽 속으로 사라지는 것이다. 인간의 삶은 허구가 아니고 실제로 보여 지는 것이다. 그러한 삶속에서 지나고 나면 알게 될 매미와 파란 꽃의 사랑은 분명 운명적이었다. 서로가 시한부사랑을 뻔히 알면서 왜 사랑할 수밖에 없었는지 세상에 하나뿐인 슬픈 이야기는 이렇게 만들어지고 있는 것이다.


분명, 사랑은 두 가지이다. 이루어질 수 있는 사랑도 있지만 이루어질 수없는 사랑도 있는 것이다오늘은 찜통더위로 가는 삼복지절의 하나인 초복(初伏)이다. 매미는 파란 꽃을 향하여 아침부터 울어댔다. 매미는 닥쳐올 앞으로의 위기감보다 사랑하고 그리운 감정으로 파란 꽃을 부르고 있는 것이다. 고목나무 밑으로 파란 꽃이 찾아왔다. 역시 파란 꽃은 신비하고 향기로웠다. 그러나 그토록 푸르고 향기로웠던 파란 꽃도 밤새 잠을 못 잤는지 얼굴이 푸석푸석하고 창백한 기운이 엿보였다. 매미는 울음을 멈추고 파란 꽃을 정답게 맞이했다. 매미와 파란 꽃은 고목나무 밑을 떠나 오랜만에 오붓한 둘만의 테이트 길로 들어섰다.   

 

잘 왔어, 근데 어디 아파요? 얼굴이 너무 안 됐어.”


매미는 파란 꽃의 손목을 잡으며 안쓰러운 듯 말을 건 낸다. 그러나 파란 꽃은 아무 말이 없다. 여름날의 뜨거운 열기가 후끈 달아오른다. 어느 덧 매미와 파란 꽃은 맑은 물이 흐르는 실개울 가에 도달했다. 흘러가는 물소리가 무척 정겹다.

 

! 이젠 어떡해요, 앞으로 한 달 후면 우리는 끝이에요. 오늘이 7월 초복(初伏)이니 한 달 후, 8월 말복(末伏)에는 우리들의 사랑도 끝이에요.”


파란 꽃은 얼굴을 파묻고 어깨를 들썩이며 서럽게 흐느끼는 것이다.


그래요, 우리들이 만난 지도 벌써 1년이 되었구려, 그러나 난 절대로 후회하지 않아요, 1년 동안 당신을 위해 마음껏 울었었고 그 울음의 떨림이 당신의 사랑으로 내 가슴속에 영원히 남을 거니까요.”


매미는 파란 꽃의 어깨를 살며시 두들기며 애써 눈물을 삼키는 것이다.


내가 뭔데 당신은 매미가 되어 나를 이렇게 힘들게 하는가요? 그러나 사랑이란 걸 당신 때문에 알게 되었고, 늦게나마 그 사랑 때문에 행복을 알았습니다. 그러나 우리들의 사랑은 1년이었어요, 1년의 사랑 때문에 당신은 왜 매미가 되어 내가 가진 운명과 같이 하는지요?. 흑흑흑


파란 꽃은 매미의 품속에서 서럽게 울고 있다. 매미는 자신의 생명이 끝나는 날 사랑도 끝난다는 결별의 날을 알고 있었지만 행복했던 추억을 더듬으며 그리고 1년 동안 파란 꽃을 사랑했던 행복을 되새기며 소리 없이 울고 있는 것이다. 인간에게 주어진 예측된 운명이 싫어서 꼭, 매미가 되어야만 파란 꽃을 사랑할 수 있다는 또 다른 운명을 받아들인 나! 비록 나에게 있어서 이루어질 수없는 사랑을 알면서도 한 번만의 사랑을 위하여, 기꺼이 1년 동안의 사랑과 나의 생명을 바꾼 것이다. 나에게 있어서 파란 꽃은 생명 이상의 귀중함이요, 영원함이었다. 그것이 내가 찾는 사랑이었고 내 생애에 한 번 있는 큰 사랑이었기 때문이다.


매미는 중복(中伏)을 맞는다. 오늘따라 울어 제키는 매미의 울음소리는 고목나무의 뿌리가 흔들릴 정도로 멀리 멀리 퍼져 나갔다. 무엇을 경고하려고 하는지 그 울음소리는 파란 꽃이 있는 언덕너머까지 가슴 곳곳을 파헤치는 슬픈 격랑으로 이어졌다. 매미는 알고 있다. 앞으로 20일 후면 자신의 생명이 끝나는 걸 알고 있다. 앞날의 운명을 알고 있는 매미, 그리고 사랑했던 파란 꽃의 기억들을 갈무리하여 아무도 모르게 자신의 일생에 묻어야하는 매미!


남들은 전혀 짐작조차 하지 못하는 파국이나 변화의 도래를 본능적으로 감지하고서 (나는 매미가 되어서 내가 겪어야하는 아픔을 미리 알고 있지만), 때로는 비장한 사명감으로, 때로는 고통스런 체념으로 속절없이 온몸으로 울고 있는 매미, 그게 바로 나였다. 물론 인간들은 앞날의 운명을 모른다고 하지만 자신의 운명적인 사랑을 미리알고 파란 꽃을 사랑할 수밖에 없었던 그 매미는 오늘도 우주공간 어느 구석에 파묻혀 밤새도록 파란 꽃에게 편지를 쓰고 있다.


손이 아프도록, 손이 부르트도록, 나중엔 쓴 글씨가 눈물에 어리어 지워질 때까지 파란 꽃에게 사랑의 편지를 쓰고 또 썼다. 그러나 매미는 자신이 가진 본래의 형태를 찾지 못하고 하늘만 보고 슬피 울어대면 자신의 사랑이 무조건 파란 꽃에게 전달되는 줄 알았다. 그러다 문득 정신을 차려보면 매미의 일생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걸 알았고 왜- ‘한번만의 사랑을 위하여매미가 되어야만 했는지?


그래서 그 매미의 울음은 너무나도 슬펐고 마냥 눈물이 나는 것이다. 때로는 사랑이란 고대신화 속에서 나오는 별들의 이야기처럼 아니 사랑의 파랑새를 찾으려고 목숨까지 버리는 숭고한 사랑의 전설이 결코 남의 이야기가 아니란 걸 매미는 알고 있는 것이다그래서 나는 그 숭고하고 신비한 사랑을 찾으려고 매미가 되었다. 결국 인간적인 모든 것을 떨쳐버리고 사랑을 위한 명실상부 매미가 되고자 했다.


오늘도 파란 꽃을 향한 매미의 울부짖음! 목숨까지도 버릴 그 매미가 부르짖는 처절한 절규는 하늘 끝까지 전달되는 영혼의 메아리처럼 깊게 울려 퍼지고 있었다. 드디어 8월로 접어들었다. 매미에게 완전한 정적의 시간이 닥쳤다. 모든 생명들이 자기들의 모습을 보일여고 아침부터 발버둥 칠 때에 매미는 그 정적의 시간 속에서 숨을 죽이고 있었다. 이젠 마지막으로 매미에게 주어진 온 힘을 다하여 고목나무를 붙들고 울어야 했다.

그것은 파란 꽃을 사랑했던 매미의 숙명이었는지 모르겠다. 파란 꽃을 사랑한다고 울어야할 매미의 일생은 이미 정해져 있었고 탈바꿈하여 매미가 되었던 이유는 실제로 너무 힘들었고 슬픈 일이었다.


시간은 멈추지 않았고 어느 덧, 매미와 파란 꽃 앞에 이별의 상자가 놓여있다. 그 상자 속에는 사랑을 위하여 살았던 1년의 시간들이 열정과 추억을 오가며 잊어야할 흔적을 담뿍 안고 있었다.


언제나 밤하늘을 보면 아스라이 먼별에서 온 것처럼 당신의 영혼은 너무 청순하고 아름다웠어, 당신은 신비함이었어! 그래서 나는 당신을 밤하늘의 별빛이라고 불렀어, 근데 세월이 너무 빨라. 내가 언젠가 당신에게 행복은 아침이슬 같다고 했지, 이슬은 금방 사라지는 것처럼 행복도 금방 사라지니 항상 옷깃을 여미면서 잘 지켜야 한다고 했지


매미는 파란 꽃의 두 손을 꼭 붙잡으며 뜨거운 눈물을 흘리고 있는 것이다. 매미의 품속에서 흐느끼고 있던 파란 꽃은 매미에게 작별의 키스를 하는 것이다.


하늘나라에 가서도 잊지 못할 거예요, 당신과 나의 사랑은 잊혀지는 추억이 아니라 여름날, 빗줄기 내리면 당신을 그릴 것이고- 가을날, 낙엽지면 당신의 고독이라고 생각할 것이고- 겨울날, 땅에 바람이 부는 날이면 당신의 그리움으로 생각할 거예요


왜 매미는 자기의 일생을 1년의 사랑으로 바꾸었는지? 인간의 일생이 아니더라도 한번만의 사랑은 위대하고 거룩했기에 나는 기꺼이 매미가 되길 원했었고 언덕너머 파란 꽃을 일생의 사랑으로 여겼다. 비록 그 사랑이 매미의 일생인 1년밖에 사랑할 수밖에 없었다 하더라도, 그렇게 아주 먼 세월이 흐른다 해도 여름날이 오면 매미의 울음은 신비한 파란 꽃의 사랑을 부르듯 오늘도 고목나무가지에 붙어서 울고 있을 것이다. 인간의 탈을 버리고 매미가 된 나에게 왜, 매미가 되었냐고 묻는다면 나는 이렇게 말할 것이다.


아니야, 비록 아프고 1년밖에는 살지 못했지만 1년 동안 파란 꽃과 사랑을 나누었다는 것이 내게는 너무 소중해!”


어느 날 고목나무 밑에 죽어있는 매미의 형체위에 파란 꽃도 나란히 죽어있는 모습이 발견되었다.

 

 

 

 


편집부 기자
작성 2020.01.18 09:41 수정 2020.01.18 09:47
Copyrights ⓒ 코스미안뉴스. 무단 전재 및 재배포금지 편집부기자 뉴스보기
댓글 0개 (/ 페이지)
댓글등록- 개인정보를 유출하는 글의 게시를 삼가주세요.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2023-01-30 10:21:54 / 김종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