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승선의 산사기행] 금강산 건봉사




금강산 건봉사

 

 

고성에서 길을 잃었다. 욕망으로 치장된 도시를 떠나 강원도 땅을 밟았을 땐 오월이었다. 욕망에 시달렸던 도시의 시간들을 털어내느라 수선을 피워대며 무작정 고성으로 달렸지만 고성 어디쯤에서 길을 잃고 말았다. 어깨를 마주하고 바다를 향해 뻗어 있는 산자락 밑으로 고만고만한 마을들이 사이좋게 앉아 있는 길을 따라 달리다가 나는 문득 생각했다. 이쯤에서 눌러 앉아 살아도 좋을 것 같았다. 저 산 깊은 골에 들어가 작은 집 하나 지어 살면서 바다로 들로 산으로 싸돌아다니면 세월은 더디 갈지 모른다. 생각과 생각 사이의 징검다리를 건너는 사이 금강산 건봉사라는 작은 이정표가 눈에 들어왔다.

 

고성에서 다시 길을 찾았다. 오월의 바람은 높게 흐르면서 향기로운 꽃향기를 실어 나르느라 정신이 없는데 나는 도시의 욕망에 시달렸던 고단한 마음을 어디에다 부려놓을까 고심하며 금강산 건봉사로 무작정 향했다. 하늘을 걸어가는 한낮의 태양이 한여름보다 더 뜨겁게 내리쬐는 무심한 산길을 걸으며 나는 하릴없이 생각 속을 들락거렸다. 나와 나 사이를 생각이라는 욕망덩어리가 서로 이간질 시키며 삼라만상의 고뇌를 만들어 내고 있을 때 금강산 끝자락에 고즈넉하게 앉아 있는 건봉사가 눈에 들어왔다.

 

수수만년 아름다운 산 못 가본지 몇몇 해

오늘에야 찾을 날 왔나 금강산은 부른다.

 

노래처럼 그리운 금강산은 아니다. 금강이라는 언어가 주는 묘한 느낌에 설렐 뿐이다. 몸통은 북한에 있고 발가락만 고성에 붙어 있는 금강산이지만 그래도 그게 어딘가. 건봉사가 있지 않은가. 건봉사가 앉아 있는 금강산이면 됐지 않은가. 생각 하나가 일어나면 우주가 열리고 생각 하나가 소멸하면 우주가 사라지는 법이라는데 나는 즐거이 금강산 건봉사로 걸어 들어갔다.

 

본당에 들어가는 마지막 문인 불이문을 지났다. 불이문, 나는 늘 불이문不二門이 궁금했다. 절집에서 마주치는 이 불이문은 진리는 둘이 아닌 하나의 근원이라는 것쯤이야 삼척동자도 다 아는 일이지만 저 상징의 문을 통해 해탈의 길로 나간 이들의 뒷모습은 아름다웠을까. 개체성을 벗어 버린 존재의 가벼움이란 얼마나 형형한 것일까. 윤회와 부활이라는 유전자 복제과정을 다 여읜 자들의 사랑이란 대체 얼마나 자유로운 것일까. 나는 금강산 건봉사의 불이문을 지나면서 나에게 묻고 또 물었다.

 

나는 절집의 고요가 좋다. 수줍음 많던 첫사랑의 눈빛을 닮은 고요를 나를 절집에서 느끼곤 한다. 그래서 절집의 고요를 찾아온 것인지도 모른다. 대웅전으로 올라가는 계단위에 쌓여 있던 오월의 고요가 내 발자국 소리에 놀라 사방으로 흩어진다. 미안해지는 발자국을 사뿐히 올려 들고 대웅전 부처님께 합장을 했다. 천 년간 변함없이 보일 듯 말 듯한 미소를 머금은 부처가 나를 고요하게 내려다본다.

 

I am

 

이 자기 이름을 아이 엠이라고 했던가. 천국에 가는 사람보다 천국을 만드는 사람이 되라는 말은 금강산 건봉사와 잘 맞는 말인 것 같다. 신학대전을 쓴 토마스 아퀴나스는 신은 갈망하는 사람 안에 있다고 했는데 욕망의 소리에 끌려가지 않고 만일동안 기도하던 건봉사 스님들이 육신의 허물을 벗고 맑은 정신만 등공해 부처님의 연화세계로 들어간 것처럼 나는 건봉사 대웅전에 기대 가만히 아이 엠을 되뇌어본다. 내 안에 있는 천국을 내 스스로 경영해 보는 완전함의 그 자체를 갈망하면서 다시 아이 엠을 생각해 본다.

 

대웅전에 가득 쌓이는 고요를 차마 깨트릴 수 없어 댓돌 위에 가만히 앉아 있는데 어디선가 나타난 고양이 한 마리가 사뿐사뿐 걸어간다. 나는 고양이가 흩트려 놓은 고요를 밟으며 고양이를 따라 갔다. 부처님 치아사리가 봉안된 법당 앞 안내소로 들어간 고양이는 세상 편안하게 누워 나를 나직이 내려다보고 있었다. 녀석, 팔자도 좋다. 사무 보는 보살님들의 사랑을 독차지하며 유유자적 살고 있었던 것이다. 네가 나보다 낫다. 인간사 고뇌 짊어지고 힘겨워하는 나보다 네가 성불은 먼저 하겠구나. 나는 팔자 좋은 녀석을 부러워하며 적멸보궁으로 올라갔다.

 

신라의 아도화상이 창건하여 유유히 내려오다가 도선국사와 나옹선사 그리고 임진왜란 때 나라를 지킨 사명대사가 주석했고 근세엔 만해가 수행을 했던 건봉사는 염불과 선, 교의 수행을 갖추고 금강산 자락에서 고요하게 고성 사람들의 신심을 키워나가고 있다. 적멸보궁에는 사명대사가 부처님의 진신 치아사리를 봉안한 사실이 분명하게 기록되어 있는데 부처님의 치아사리는 세계에 15과뿐이라고 한다. 그중 건봉사에 12과가 있고 스리랑카 불치사에 3과가 있다고 하니 보물중의 보물이 아닐 수 없다. 나는 적멸보궁을 오르며 나도 적멸에 이를 수 있을까. 적멸한 세계로 들어갈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을 하면서도 왠지 웃음이 났다. 햇살 때문이었다. 적멸보궁과 한바탕 뒹굴고 있는 햇살을 보며 나도 적멸하고 싶었다. 갑자기 그리운 금강산 노래가 입가를 열고 나왔다.

 

누구의 주제련가 맑고 고운 산…….






전승선 기자
작성 2020.01.20 09:17 수정 2020.01.20 09: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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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1-30 10:21:54 / 김종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