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간세설] 하여가(何如歌)와 단심가(丹心歌)

이태상

 


요즘 한국에서 유행하는 말로 그린일베좌음이 있다. 아마도 녹색 베레모를 착용하는 미육군특수부대 그린베레에서 따 온 것 같은데, 네이버의 이미지 색인 그린(Green)’과 극우성향 온라인 커뮤니티인 일베(일간베스트)’의 합성어로 네이버 뉴스 댓글의 내용이 주로 우파 성향을 띤다고 해서 붙은 이름이란다. 그 반대로 다음은 좌파성향의 글이 많아 좌음으로 불린다고.

 

인간을 이성적 존재로 보는 주류경제학과는 달리 비이성적이라고 규정하는 행동경제학에서 사용하는 인지적 편향이라는 개념이 있다. 보고 싶고 믿고 싶은 것만 보고 믿다 보면 확증 편향이 된다는 것이다. 따라서 일편단심 독선독단적이 될 수밖에 없으리라.

 

우리 말에 배알이 꼴린다는 표현이 있다. 아니꼬워서 견딜 수 없다는 뜻으로. 하지만 꼴릴 배알이라도 좀 남아있는 편이 낫다고 할 수도 있지 않을까.

 

시인 김지하의 글 오적(五賊)’이 실리는 바람에 폐간되고 말았지만 월간지 [思想界]의 당시 발행인 부완혁 선생님이 나에게 무보수 게릴라 편집장일을 부탁하시면서 글 쓰는 사람들 가운데는 집권세력에 의해 발탁되기 위해 고의로 정부를 맹비난하는 글쟁이들이 있으니 이런 사람들을 경계해야 한다고 하셨다.

 

옛날 젊어서 잠시 해본 신문기자 시절 동료 기자 중에 유난스럽게 비분강개하며 위정자들을 헐뜯던 친구들이 얼마 후에 해외공보관이다, 정부대변인이다, 청와대비서관이다 하며 권력 핵심의 주변 인물로 등장했다가 정부 여당의 전국구의원이나 장,차관으로 출세가도를 달리는 걸 보아 왔다.

 

이씨왕조를 세운 이성계를 비롯하여 일정시대 친일한 인사들처럼 영어속담대로 이길 수 없거든 가담 합세하라는 처세술에 능한 사람들이리라. 우리나라 역사를 돌아볼 때 이 몸이 죽어 일백 번 고쳐 죽어 백골이 진토되어 넋이라도 있고 없고 임 향한 일편단심이야 가실 줄이 있으랴라는 단심가의 정몽주를 이상주의자라 한다면 이런들 어떠하리 저런들 어떠하리 만수산 드렁칡이 얽어진들 어떠하리 우리도 이같이 얽혀서 백 년까지 누리리라하고 한 하여가의 이방원은 현실주의자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여기서 우리 한 번 생각 좀 해보자. 윤동주처럼 일찍 죽는 것과 이광수 같이 오래 사는 것, 어느 쪽이 더 좀 성숙하고 현명하며 도통한 경지일 것인가를. 흔히 청소년 시절 현실주의자라면 산 송장과 같고 중장년에도 이상주의자라면 저능(低能)의 지진아 (遲進兒)라고 하지 않나.

 

현대자동차 창사 이후 초창기(1968)에 공채되어 내가 잠시 기획업무를 볼 때 당시 사장 비서로 있던 아가씨 말이 생각난다. ‘앞으로 결혼하게 되면 온종일 윗사람 밑에서 절절매거나 비실대다 넋도 혼도 다 빠져 파김치가 되어 밤늦게 귀가하는 남편보고 절대로 바가지 긁지 못할 일이라고.

 

하긴 한국 사회에서 출세하려면 자전거를 잘 타야 한다지만, 자전거 타듯 강자나 윗사람에게는 고개 깊이 숙여 네 네굽신거리면서 아랫사람 약자는 짓밟는 그런 일은 다반사이리라. 그렇다면 유유자적하는 수밖에 없겠구나. 몸은 그럴 수 없다 해도 마음만이라도 말이다. 옛 선철(先哲) 말씀 한두 마디 되새겨 보자.

 

금은 광()에서 캐내고 옥은 돌 다듬어 만들어진 것이니 변화를 거치치 않고는 참됨을 구할 도리 없으리라. 음주하는 곳에서도 도인을 만날 수 있고 가무하는 곳에서도 신선을 만날 수 있으니 고야(高雅)할지라도 범속(凡俗)을 떠날 수 없어 세속에 처하되 세속에 물들지 말지라.

 

부귀하면 남들이 나를 받드나 그것은 내 부귀를 받드는 것이고 빈찬하면 나를 멸시하나 그것은 내 빈천함을 멸시하는 것으로 근본적으로 나를 받드는 것도 멸시하는 것도 아니니 좋아할 것도 언짢아할 것도 아니리라.

 

부귀공명 다 허례허식과 허세요 허상이니 얻어도 기뻐하지 말고 잃어도 걱정하지 말라. 마음밖에는 딴 세상이 없으므로 극락은 결국 자기의 마음속에 있는 경지라는 유심정토(唯心淨土)속맘 마음씨 마음자리에 있는 것이다.

 

애오라지 배알부터 추스르고 볼 일이리라.

 

 

 


편집부 기자
작성 2020.01.23 09:54 수정 2020.01.23 1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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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1-30 10:21:54 / 김종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