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윤정 칼럼] 대안적 진실과 블록체인


진실이 무엇이냐?” 2천 년 전 빌라도가 예수께 물은 질문이다. 이 질문은 그보다 훨씬 앞서 인류가 존재한 역사만큼 오래된 질문일 것이다. 19세기까지 수천 년간 서양의 철학적 사고는 절대적 진리를 증명하고자 했다. 20세기에 들어서며 합리적 이성에 기반한 절대적 진리를 추구하는 모더니즘에 반대하여 다양한 시각과 비이성적 인식, 상대적 진리 등을 수용하는 포스트 모더니즘이 일어났다. 80년대 말, 90년대 초에 대학을 다닌 나는 움베르토 에코의 <장미의 이름>, 밀란 쿤데라의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 등을 읽으며 포스트 모더니즘을 논했고, 왕가위 감독의 <중경삼림>을 보고 포스트 모더니즘에 취했었다.

 

진리는 절대적이어야 한다는 수천 년의 사고를 깨고 상대적 진리에 눈을 뜨게 한 포스트 모더니즘은 미술에서 시작되었다. 지난 12월 스페인 남부로 가족여행 중 피카소가 태어난 곳인 말라가에 들러 피카소 박물관을 둘러보았다. 한 사람의 한 시각에서 바라본 단면을 그려온 기존의 미술의 틀을 깨고 다양한 시각에서 바라본 입체적 표현을 한 입체파의 대표 화가인 피카소. 그가 그린 바이올린이나 여인은 전 방향, 위아래에서 바라본 입체를 2차원 평면에 표현한 것이다.

 

어떠한 실체나 현상을 보는데 여러 시각을 담아 더 본질에 가깝게 이해하는 포스트모더니즘은 진리는 모두 상대적이라 주장하며 절대적 진리를 부인하고 사람들의 판단을 흐리게 하는데 오용되기도 한다. 최근에는 이에서 더 나아가 대안적 진실이라는 새로운 용어로 거짓을 진실로 둔갑시키는 일들이 버젓이 일어나고 있다. 2017년 미국 대통령 취임식 때 저조한 인파를 미 역사상 최대인파가 모였다고 어처구니없는 거짓말을 하고는 대안적 진실이라 둘러댄 이후 이러한 현상은 이제 나의 모국 한국에서도 일어나고 있다.

 

조국과 그 가족의 비리 사태로 거짓과 진실의 경계를 알 수 없게 된 한국을 바라보며 진실이 무엇인가를 판단하는 것이 얼마나 힘든 일인가 새삼 생각한다. 기원전 10세기 두 갓난아이, 밤새 질식해 죽은 아이와 살아있는 아이를 놓고 두 여인이 지혜의 왕으로 소문난 솔로몬을 찾아가 진실을 가려달라고 했을 때처럼 인류사는 이제까지 권력을 가진 자의 판단에 따라 진실이 결정되어왔다. 그 결정자가 지혜로운 솔로몬과 같으면 천만다행이지만, 많은 경우 그렇지 못해 세상은 부조리와 불의가 넘치는 곳이 되어왔다.

 

사실 확인을 할 수 없어 부조리가 넘쳐나는 세상을 줄이고자 블록체인이 도입되고 있다. 솔로몬의 판단을 요구한 사건의 경우 블록체인을 활용하여 신생아의 ID를 기록한다면 이런 일은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이런 일은 기원전에나 있었지 현대에는 없을 터라고 생각한다면, 난민이나 자연재해로 혹은 세상에 태어났어도 신분증이 없어 자신이 누군지 증명할 수 없는 이가 전 세계에 10억이 넘는다는 걸 상기해야 한다. 또한, 토지대장에 블록체인을 도입하여 효율성 증가뿐 아니라 자연재해로 문건이 없어지거나 부정부패로 토지를 강탈하는 일들을 막을 수 있다.

 

대학 총장이 표창장을 주었느냐 위조했느냐 하는 사실 논쟁도 모든 증명서, 논란이 될 수 있는 공문서에 블록체인 기반의 디지털 문서를 도입하면 논란의 불씨를 없앨 수 있다. 2015MIT와 블록체인을 기반으로 한 자격증명시스템을 개발하는 스타트업 회사 러닝머신 (Learning Machine)이 함께 개발한 블록증명(Blockcerts)은 미국뿐 아니라 2017년 말타에서 시도되어 유럽위원회에서 2019년에 발행한 <디지털 정부를 위한 블록체인>에 상세히 나와 있다. 싱가포르에선 2019년부터 싱가포르 국립대학 등에서 오픈써트(OpenCerts)라 불리는 블록체인 기반 증명서를 활용하고 있다.

 

한국에서도 블록체인 기술이 널리 활용되어서 이권에 따라 거짓이 대안적 진실로 둔갑하고 온 사회가 이를 두고 소모적 논쟁에 휩싸여 정신이 혼미해지는 이런 터무니없는 현실이 되풀이되지 않기를 간절히 소망한다.





[송윤정]

세계은행(워싱턴 D.C.) 금융전문가

2015년 워싱턴문학 수필부문 신인상

삼정회계법인 / 삼일회계법인

서울대학교경영대학원 국제금융 석사

 

 



 

 


편집부 기자
작성 2020.01.28 10:18 수정 2020.01.28 10: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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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1-30 10:21:54 / 김종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