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계봉의 산정천리] 잊혀진 물길, 조강(祖江)과 염하(鹽河)를 아시나요


 

염하와 조강을 아시나요?

 

천리 길 한강 대장정을 끝내는 마지막 통과의례가 이 두 물길이다. 밀물 때는 서해 바닷물이 거세게 밀고 올라오는 역류로 부풀어 오르고, 썰물에는 막혔던 숨통이 탁 터지듯 쏜살같이 서해바다로 휩쓸려드는 탁류로 늘 숨이 가쁘다. 겉으로는 고요하되 속은 뜨겁게 흐른다.



김포의 주산 문수산에 오르면 염하와 조강, 두 물길을 바라볼 수 있다.




한남정맥의 최북서쪽에 위치한 문수산(文殊山)은 해발고도는 376m로 사계절 경치가 아름다워 김포의 금강산이라 불린다. 정상에 오르면 산 아래에 염하와 조강이 유유히 흐르고, 염하 너머로 강화도, 조강 너머로 손에 닿을 듯 북한 개성의 송악산까지 볼 수 있어 산행과 더불어 외세 침략과 분단 역사의 아픔도 느낄 수 있다.

 

문수산 들머리로는 산림욕장, 김포조각공원, 성동검문소 옆 남문이 있는데, 오늘은 주차가 용이한 산림욕장에서 산 오름을 시작한다. 침묵으로 가득한 겨울 산 속살로 들어서는 첫걸음은 언제나 허허롭다. 계곡에 부는 차가운 겨울바람이 옷을 헤집고 파고든다. 발길을 재촉하여 산등성이에 올라서니 나뭇가지 사이로 조각난 햇살이 환하게 웃으며 산객을 반긴다.

 

산림욕장에서 시작하여 산성에 올라 문수산 정상을 밟고 북문으로 하산하는 산성일주 코스(6km, 3∼4시간)는 경치가 좋고 난이도가 낮아 부담 없이 산행을 즐길 수 있다.

 


 

문수산에는 조선 19대 숙종(肅宗) 20(1694)에 바다로 들어오는 외적을 막고 강화도 방어를 위해 쌓은 문수산성이 있다. 고종 3년인 1866년 병인양요 때 프랑스군과 전투를 벌인 격전지여서 외세의 침략에 저항한 옛 조상들의 숨결을 느낄 수 있다.

 

복원된 문수산성 성곽. 축성 당시 총 6km로 북문, 서문, 남문이 있었으나 병인양요 때 소실되었는데 현재 북문과 남문은 복원되었다.

 


남문과 장대를 잇는 성곽에 올라서면 사위가 트이면서 김포와 강화도 일대가 한 눈에 들어온다. 문수산은 김포 월곶면 김포평야에서 솟아오른 산으로 한남정맥의 대미를 장식하는 산이다. 문수산에 오르면 서쪽으로 강화도가 한눈에 들어오며 강 건너로 마니산, 혈구산, 고려산이 보인다. 강화대교 아래로 강화도와 김포를 가로지르는 염하가 빠르게 흐르고 있다. 조강 물길이 머무루섬을 지나 곧장 나아가면 강화 교동도 쪽 강화만, 왼쪽으로 돌면 염하(鹽河).

 

소금강을 뜻하는 염하는 밀물과 썰물로 바닷물과 강물이 드나든다. 북쪽으로 시야를 돌리면 한강과 임진강이 만나 서해로 빠져나가는 물길, 강과 바다가 접하는 광경을 보게 된다. 강 건너로 북녘 땅인 개성을 지척에서 굽어볼 수 있다. 시야를 오른쪽으로 더 돌리면 애기봉과 오두산전망대, 그리고 강 건너 북한 개성땅과 송악산이 아련히 보인다.

 

정상의 장대는 2016년 팔작지붕 형태의 목조건축물로 복원되었다.

 


 

문수산은 그리 높지 않은 산이지만 주변이 평야지대이고 구릉이 낮은 서해지역이기 때문에 주변 조망이 사방팔방 아주 뛰어나다. 해발 376m의 정상에는 장수가 주변 정세를 파악하여 지휘하던 장대가 있다.


문수산성이 오래전부터 서해를 거쳐 염하를 따라 올라오는 배와 대동강과 예성강을 따라 평양, 개성 등지에서 서해안을 따라 내려오는 배를 감시하는 군사적 요충지로, 삼국의 최전방이었다는 사실도 장대 근처에서 복원 공사 중 발견된 삼국시대 유물로 확인되었다.



김포와 강화도를 가로지르는 좁은 바닷길 염하는 유속이 빨라 북방 오랑캐의 침입으로부터 피난수도 강화도를 오랫동안 방어할 수 있었다.


 

장대를 내려서서 북쪽으로 길을 잡으면 능선을 따라 멋스럽게 쌓은 석성이 이어져있다. 이 길 오른쪽으로 파주 오두산 전망대와 애기봉, 그리고 한강에서 분기된 조강이 잘 보이는데 때마침 밀물 시간이어서 한강물이 도도하게 소용돌이를 일으키며 차오른다. 강물에 실린 갯내음이 강바람을 타고 이곳 능선까지 풍기는 듯하다.


장대에서 북문으로 이어지는 산성 가는 길은 호젓하기 그지없다.

 


 

이윽고 북문과 보구곶리로 갈라지는 삼거리가 나오는데, 북문 내려가는 반대쪽으로 길을 잡으면 한남정맥의 마지막 지능선을 타게 된다. 삼거리에서 1시간 정도 오르막과 내리막을 반복하면 안성 서운산에서 시작한 한남정맥의 마지막 지능선은 마침내 조강에 몸을 담그면서 기나긴 지맥의 여정을 끝낸다. 소나무 숲이 끝나는 전망대에 서면 임진강이 도도히 흐르고 무인도인 유도와 북녘 개성 땅이 바로 코앞에서 손짓한다.


문수사 찾아 가는 길은 인적 끓긴 산길이다. 신라시대 고찰로 고려 풍담대사 승탑이 유명하다.



문수산은 백두대간 속리산에서 분맥하여 안성 칠장산, 용인 함박산, 군포 수리산을 거쳐 온 한남정맥의 지맥이다. 한강이 합수하는 곳 파주의 오두산과 김포의 문수산은 마주하며 기봉해 있다. 오두산은 철원 백운산, 포천 운악산, 의정부 도봉산으로 이어져 온 백두대간 식개산에서 뻗어 내린 한북정맥이다. 가까운 발치에 있는 오두산과 문수산은 한강에 몸을 담구면서 한남정맥과 한북정맥의 지맥으로서 소임을 마치게 되는 것이다.

 

전망대 바로 앞에 보이는 강이 한반도 중부 내륙의 모든 물길을 담아내는 할아버지 강’, 바로 조강(祖江)이다. 김포반도 하성면 연화산과 파주 교하의 오두산 사이가 시작점으로, 북한강과 남한강을 합쳐 도도히 흘러온 한강과, 한탄강물을 이끌고 온 임진강이 합쳐지는 두물머리다. 서해 쪽으로 좀 더 흐르다가 북한 개성을 지나온 예성강까지 받아들이니, 그 품은 매우 넉넉하다.


전망대에서 한강과 조강, 임진강이 만나는 세물머리와 유도가 있는 서해바다 입구까지 고깃배가 드나들고 황포돛배가 다니던 그 때 그 시절을 떠 올려본다.

 

 

지구상에서 유일한 분단국가의 서부전선 조강 너머는 북한 황해북도 판문군(옛 개풍군)이다. 강 한가운데로 금도 없이 휴전선이 지나간다. 거기에 조강이 흐른다. 이 경계의 강변에서 한강 물길이 서해바다로 스러지는 마지막 모습을 보는 산객은 그저 서글프다.

 

1.5너비의 조강을 사이에 두고 북녘 땅이 손에 잡힐 듯 가깝다. 개성 송악산도 아스라이 보인다. 발아래로 용강리와 보구곶리 코앞에 떠있는 유도(留島)가 있다. 한강에서 떠내려 오던 섬이 멈춰서 머무른 곳이라 하여 이름 붙여진 머무루섬. 전쟁 전까지 사공들이 쉬어가는 주막이 있었다고 하는데 지금은 중립지대여서 아무도 들어갈 수 없다. 인적 끊긴 섬은 저어새, 가마우지 등 새들이 주인이다.

 

애기봉과 문수산 사이 월곶면 조강리에 저 유명한 조강포가 있었다. 조강포는 서해 뱃길과 한양, 개성을 잇는 수운의 요충지였다. 항상 뱃사람과 나룻배를 기다리는 손님, 장사꾼들로 떠들썩했던 포구였다. 서해안에서 올라온 배들은 이곳에서 만조를 기다렸다가 밀물에 배를 태워 단숨에 한양으로 갔다.

 

강 하나를 사이에 두고 갈 수 없는 우리의 땅을 가까운 발치에서 바라봐야 하는 현실의 아픔이 차가운 강바람에 실려 비수처럼 가슴을 헤집고 파고든다. 유도 너머 강화만으로 떨어지는 노을빛이 일품이라는데, 황혼에 물들어가는 애수에 젖은 북녘 땅을 차마 마주할 자신이 없어 그만 돌아서고 만다.

 

 

산행 날머리에 있는 북문. 구한말 외세의 침략에 저항한 흔적이 남아있는 곳이다.



산에서 내려온 인적 끓긴 보구곶리 마을은 흑백의 풍경화처럼 쓸쓸하다. 바닷물과 강물이 밀고 썰면서 뒤집어놓은 보구곶리 개펄은 햇빛에 반사되어 유난히 반짝거린다.

 

염하와 함께 시간의 강물은 흘러 어느새 하루가 저물어간다.

 




여계봉 선임기자

 


















 






편집부 기자
작성 2020.01.29 13:02 수정 2020.01.29 2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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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1-30 10:21:54 / 김종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