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계봉의 산정천리] 이화령과 조령, 두 고개 품은 백두대간 조령산



산에 길이 있다는 귀띔인가. 산은 그렇게 우리를 이끌어 조령산 들머리인 이화령까지 오게 만든다. 코로나 바이러스 여파로 계획된 한라산 눈꽃산행이 취소되는 바람에 아침 일찍 조령산 산행 들머리인 이화령을 찾는다.


산은 세속에 있지 않으나 세속을 씻어준다. 그리하여 세속을 진창으로 만들고 있는 신종 코로나도 이곳에서 저절로 씻겨나간다.

 

연풍에서 문경을 가기 위해 넘는 이화령 오르는 길은 산은 협하고 계곡은 수려한데 인적 드문 산촌 마을에는 스산한 정적만이 감돈다. 가파른 고갯길 비탈을 넘는 자동차 엔진소리마저 숨이 차다.

 

나는 새도 쉬어 넘는다는 험준한 새재를 품에 안은 조령산은 이화령(523m)과 조령(642m) 두 고개 사이로 크고 높은 능선들이 첩첩산중 줄기를 이루면서 충청북도 괴산군과 경상북도 문경시의 경계가 된다.


이화령에서 바라본 충청도 괴산 연풍면. 이화령은 괴산과 문경을 나눈다.


산자락에 두 개의 터널이 생기며 옛길이 되어버린 이화령 주차장에는 아무도 없다. 추운 겨울날 백두대간 종주꾼 외는 편리한 터널을 두고 구불구불 산길을 찾는 이가 없는 것은 어쩌면 당연하다.

 

이화령은 일제 때 열린 고갯길이다. 이화령은 조선시대까지엔 지금과 같은 그리 큰 고개는 아니었다. 그 길 줄기도 지금과는 조금 달랐고, 이름도 똑같지는 않았다. 옛날 충청도 연풍(延豊)에서 경상도 문경으로 넘는 고갯길이었으나, 그 북쪽의 조령(鳥嶺)이 워낙 잘 알려져서 이용자가 그리 많은 편은 아니었다. 중부지방과 영남지방을 연결하는 주 교통로는 새재라고 불리던 조령이었는데, 산세가 험준하여 일제 강점기 때 이 고개 남쪽에 이화령을 만들고 3번 국도를 이었다.


‘백두대간 이화령' 표지석을 경계로 한쪽은 경상북도 문경, 나머지 한쪽은 충청북도 괴산이다.

 


 

이 고개는 조령산(鳥嶺山)과 갈미봉(葛味峰)이 맞닿는 안부에 위치하는데, 여기서 물줄기가 각각 낙동강권, 한강권으로 나뉘어 흐르는 것이다.

 

주차장에 차를 주차한 후 백화산과 조령산의 백두대간을 이어주는 터널을 지나 이화정이 있는 왼쪽으로 길을 잡으면 조령산 산행이 시작된다.

 

이화정 아래 산행 안내판. 이화령을 지난 대간은 조령산, 신선암봉, 깃대봉을 지나 조령으로 내려선 후 다시 허리를 곧추세우고 마패봉, 부봉, 탄항산으로 이어진다.

 


늘어선 굴참나무 사이로 완만한 산길을 걸어가면 잠시 후 멈춘 풍경 속으로 빠져든다. 무심하게 좌정하고 있는 바위들과 몸을 뒤틀면서 하늘을 쳐다보고 있는 숲의 주인 소나무들은 마치 동안거에 들어 용맹정진 중인 스님 모습이다.

 

새들이 떠나 고요해진 숲 속에도 결이 있다. 가만히 귀 기울이면 나뭇가지에 깃든 청량한 바람과 발걸음에 부서지는 낙엽이 나지막하게 숲의 적막을 두드리고 있다.

 

소나무 숲길을 지나면서 솔내음을 한껏 들이키고 있는 듯 없는 듯 이어진 산길로 접어들어 약간 가파른 비탈길을 한동안 오르면 숲의 정적을 깨고 산 위에서 청량한 물소리가 들려온다. 아직 얼지 않은 조령샘에서 백두대간 기운이 담긴 시원한 약수 한 사발을 들이키자 거칠어진 숨소리가 차분해지고 갈증은 이내 사라진다.

 

가슴시리도록 맑은 조령 샘물은 대간 종주꾼들의 마음까지도 적셔준다.

 


 

조령샘에서 정상에 이르는 나무데크 길은 잣나무 숲으로 둘러싸여 있다. 좌선한 나무들, 침묵이 흘러내리는 산자락들, 묵중한 바위들. 오직 길을 오르는 우리 발걸음 소리만이 산속의 고요를 깬다. 나무데크를 올라서면 헬기장이 나오고 여기서 작은 고개 하나를 넘으면 조령산 정상이다.

 

해발 1,026m 조령산 정상에 올라서자 사계가 확 터지며 맞은편 주흘산이 기다렸다는 듯 힘 넘치는 골격 능선을 드러낸다. 조령산 이름은 조선시대 영남과 한양을 잇는 영남대로의 중요한 길목이었던 문경새재 조령에서 유래되었다.



이화령에서 끌어올린 고도는 조령산을 정점으로 여기서부터 조령까지는 내리막이다.
정상 표지석 뒤에는 ‘새도 쉬어가는 鳥嶺山’이란 글귀가 적혀 있다.



정상 아래로 150m 정도 내려가면 전망대가 있다. 문득 나타난 낭떠러지에서 신선이 거처하는 절경과 마주친다. 정면에 불쑥 솟은 봉이 신선암봉, 동쪽으로 주흘산, 북으로 신선암봉과 부봉 사이로 월악산까지 보인다. 대간은 여기서 1,000m대로 끌어올린 고도를 뱉어내고 내리막의 중력에 몸을 던진다. 여기서부터 거친 암릉을 끝없이 오르내리며 위험을 감수해야하는 대간 종주자들은 이곳에 서서 신선의 땅을 바라보며 보상을 받는다. 절묘한 바위산 줄기와 선비 같은 소나무가 신선계의 풍경을 그려낸다. 한국산의 매력을 압축한 절묘한 산경에 두 눈을 타고 황홀한 쾌감이 번져 나온다. 그 겹겹의 능선이 살아 움직이니 소스라치는 기쁨과 놀라운 감동으로 온몸은 전율한다.

신선암봉과 깃대봉은 난공불락의 철옹성으로 백두대간 최대의 난코스로 손꼽힌다.



조령을 지난 대간은 마패봉, 탄항산, 하늘재, 포암산으로 마루금을 이어간다.



 

조령산의 험준함은 신선암봉 자락에 들어서야 본색을 드러낸다. 겨울에 가면 안 되는 산이 있다. 거대한 바위 근육에 눈과 얼음이 보태지면 난공불락의 철옹성이 된다. 발 아래로 까마득한 절벽이 펼쳐지고, 얼어붙은 바윗길을 고정 로프만 붙잡고 아등바등 오르내려야 된다. 따라서 이 구간에서 사고를 당하는 빈도가 제일 많기 때문에 겨울에는 가급적 이 코스 산행은 피해야한다.


문경새재 조령 3관문. 대간 산줄기는 신선암봉과 928봉을 거치면서 거친 용틀임을 하다가 조령 제3관문으로 내려서서 잠시 숨을 고른다.

 


 

조령에는 동장군의 쩌렁쩌렁한 고함 같은 삭풍이 날을 세우고 있다. 조령(鳥嶺)은 문경새재의 새재를 말하는데, 옛날에 한양으로 과거시험을 보러 가는 영남의 선비들이 사랑해 마지않았던 고개다. 당시 영남에서 한양 가는 큰 고개는 3군데였는데 풍기에서 단양을 넘는 죽령(竹嶺)으로 가면 죽죽 미끄러지고, 김천에서 영동을 넘는 추풍령(秋風嶺)으로 가면 추풍낙엽처럼 떨어지는데, 문경에서 괴산으로 가는 문경새재를 넘어가면 말 그대로 장원급제하는 경사스런 소식(聞慶)을 기대할 수 있다 하여 과거 수험생들이 많이 넘던 고개다.

 

옳거니 그르거니 상관 말고

산은 산, 물은 물, 그대로 두라

하필이면 서쪽에만 극락이랴

흰 구름 걷히면 청산인 것을

 

임제선사(臨濟禪師)의 선시를 암송하면서 조령 3관문에서 연풍 쪽 새재 길로 내려오다 보니 어느새 숙소인 조령산 자연휴양림이다.

 





여계봉 선임기자

 















편집부 기자
작성 2020.02.08 11:22 수정 2020.02.08 11:48
Copyrights ⓒ 코스미안뉴스. 무단 전재 및 재배포금지 편집부기자 뉴스보기
댓글 0개 (/ 페이지)
댓글등록- 개인정보를 유출하는 글의 게시를 삼가주세요.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2023-01-30 10:21:54 / 김종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