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경수 칼럼] 자연인 삶이 부러운 당신

 




사람은 본인 의지와 상관없이 출생하여 저세상으로 갈 때도 딱히 정해진 기약이 없다. 누구는 운이 좋게 으리으리한 부잣집에 태어나 도련님 대접을 받는가 하면, 또 다른 이는 삼시 세끼 걱정을 해가며 소년 소녀 가장으로 살아가기도 한다. 세상 참으로 불공평하고 고달픈 게 인생사다. 그런데도 대다수 사람들은 마치 천만년을 살 것처럼 부지런을 떨어 대며 자기 몸이 상하는 줄도 모르고 일만 죽어라 한다. 최근 재미있는 얘기를 들었다. 평생 땀을 흘리며 열심히 일한 개미는 늙어 허리디스크에 걸려 고생하고, 시원한 나무 그늘에서 노래만 부른 베짱이는 훌륭한 오페라 가수가 되었다고 한다.

 

그동안 비난의 대상이 되었던 베짱이가 이젠 시대가 변하여 부러운 존재가 된 것이다. 이쯤에서 우리 대한민국 가장들은 자신이 걸어온 길을 뒤 돌아볼 필요가 있다. 나는 과연 누구를 위해 이토록 열심히 살아가는 걸까 하고 말이다. 사랑하는 아내와 금쪽같은 자식을 위해서인가? 그렇담 당신은 지금까지 직장에서 또는 자신의 사업체에서 열심히 일한 뒤 밤늦게 집으로 들어갔을 때 가족으로부터 수고했단 말을 몇 번이나 들었는가 묻고 싶다. 혹시 그런 것은 고사하고 집에서 잠깐 쉬고 있을 때 아내로부터 살림을 안 거든다거나 그리 많지 않은 신용카드 사용금액 때문에 업신여김을 당하진 않았는지 궁금하다.

 

사회적인 통념상 남자가 고개를 숙이고 살아가는 것이 훨씬 편하고 현명하단 말들을 많이 한다. 그렇지만 짧은 생을 놓고 보면 대한민국 남성처럼 불쌍한 이가 없다. 가족을 위해 이른 새벽에 눈만 뜨면 집을 나가 몸을 혹사시키며 열심히 살아가고 있음에도 어찌 된 영문인지 아내의 권리는 하늘 높을 줄 모르고 올라가기만 한다. 요즘 한 집 건너 하나씩 있는 커피숍엔 오전 10시만 되면 주부들이 친구와 아점 겸 수다를 떨기 위해 자리를 지키고 있는 것을 흔히 볼 수 있다. 그런 주부들이 아침 일찍 출근하는 남편의 식사나 제대로 챙겨 줬을까 하는 의문이 드는 건 왜일까.

 

요즘 어지간한 남편은 아내의 등쌀에 못 이겨 급여를 통째로 맡기고 부동산 등기까지 다 해주고 살아간다. 그러고도 자기 뜻대로 돈도 못 쓰, 아내가 해주는 대로 먹고, 입혀 주는 대로 입고, 좋아하는 취미 생활조차 맘대로 못하며 살아간다. 직장에선 종일 상사에게 혹사당하고 집에서 아내한테 또 갑질을 당하는 모양새다. 그러다 보니 여성의 수명은 급격하게 늘어가는 반면 이런저런 스트레스만 잔뜩 받게 되는 남편들의 건강은 오히려 악화된다. 요즘 건강이 갑자기 나빠진 가장의 변명은 대부분이 암이. 수천 종류나 되는 암에 한 번 걸렸다 하면 그 집안 경제 활동은 곧 끝나버린다그때 가서 지나온 삶을 뼈저리게 후회해 본들 무슨 소용이 있을까 싶다. 건강은 건강할 때 지키란 말이 있다.

 

''내 몸은 내가 잘 알아!''

 

그러면서 평소 병원 한번 가질 않고 잔병을 키우는 미련한 가장들이 있다. 반면 몸에 약간 이상이 생기기만 하면 곧바로 병원을 찾는 엄살쟁이도 있다. 과연 누가 더 현명한가. 누구든 자기 몸속에서 기회만 엿보고 있는 잠재적 암 덩어리를 키워 죽도록 고생만 하다 일찍 세상을 뜨고 싶진 않을 것이다. 이제 대한민국에서 무슨 일을 하건 먹고 살아가는 문제는 거의 다 해결이 되었다.

 

누구라도 하루만 열심히 땀 흘려 일하면 좋은 쌀 반 가마니 정도는 살 수가 있다. 밥만 축내는 소가? 아니라면, 그 정도의 쌀로도 엔간한 가정에선 몇 달은 충분히 견딜 수가 있다. 요즘 대한민국 남성들은 나는 자연인이다’ TV 프로를 왜 즐겨 보는 걸까? 삶이 힘들고 고달픈 자신도 언젠가는 산으로 훌쩍 떠나고 싶어서 일 것이다. 물과 공기 좋은 곳에서 새소리를 벗 삼아 먹고 싶을 때 먹고, 자고 싶을 때 자면 되기 때문이다. 그곳에선 어느 누구의 방해도 안 받는다. 그 주인공 대부분이 과거 사업에 실패했거나 암에 걸려 죽기 일보 직전까지 갔던 사람들이다. 큰 고난과 시련을 겪지 않은 이가 없다.

 

그렇기 때문에 건강을 되찾은 지금 그동안 잃은 손실을 만회하기 위해 얼른 사회로 나가 더욱 열심히 살아가야 한다. 그런데 그들은 모든 것을 포기하고 아무도 없는 산에서 살아간다. 왜일까? 다 필요 없다는 걸 죽음 직전에 가서야 깨달은 거다. 인생 막다른 곳에서 그동안 피땀 흘려가며 이룩해 놓은 것들이 자기와는 아무런 상관이 없다는 것을 직접 경험했기 때문이다. 거기엔 배우자와 자식도 일부 포함된다. 어느 누구도 아픈 남편과 아버지를 따라 산으로 들어와 살지 않는 것만 봐도 금방 알 수가 있다. 자연인은 도시에서 살아가는 우리들이 평소 느끼지 못한 것을 스스로 깨닫고 실천하는 사람이라고 보면 된다.

 

그들은 아무런 욕심도 없이 자연이 제공한 푸른 산나물만 뜯어먹고도 행복한 삶을 살아가고 있다고 말한다. 우리가 알고 있는 자연인은 과거에 자신이 이룩해 놓은 것을 모두 잃거나 몸이 아파 죽음의 문턱까지 다녀온 사람들이다. 천만다행이라면 우리는 아직 늦지 않았다는 거다. 그런데 우린 모든 것을 잃고 죽음 직전에 산을 찾은 자연인을 왜 부러워하는 걸까? 그들보다 조금 더 일찍 산으로 들어가면 그동안 모아둔 재산과 건강도 잃지 않고 더 행복하게 살아갈 수 있는데 말이다. 혹시, 우리의 끝없는 욕심 때문은 아닌가. 하긴 집안의 가장이 몇 년을 성실하게 살아가지 않으면 곧 어떻게 될 것 같긴 하다.

 

그러나 아내와 자식도 닥치면 스스로들 살아가게 마련이다. 요즘은 중학생만 되어도 다 자랐다고 부모 말도 안 듣는 자녀가 수두룩하다. 이런 자식을 대학까지 교육시키고 난 뒤 서른이 넘도록 품 안에 계속 끼고 살 필요가 있을까 싶다. 성인이 되면 못 이기는 척 고삐를 놓아주는 이가 오히려 현명한 사람인지도 모른다. 대한민국보다 훨씬 더 잘 사는 선진국에서도 나이 스물만 되면 자식을 독립시킨다는데 우리라고 못 할 이유가 없다. 조금 더디긴 하겠지만 자기 스스로 하나씩 깨달으며 세상을 살아가는 것도 그렇게 나쁘진 않을 것이다. 끝으로 당신의 삶은 행복한가 라는 질문을 던져본다. 오늘 아침 현관문을 나설 때 당신의 등 뒤엔 누가 서 있었나?

 

아내가 서 있었나? 자녀가 있었나? 아니면 아내와 아이들이 함께 웃으며 배웅하고 있었나? 위의 모습 중에서 어느 것이 가장 바람직한가. 그것도 아니라면 당신은 오늘 아침 혼자였을지 모른다. 그렇다면 당신은 그동안 가족에게 어떤 대접을 받는 사람이었냐고 묻지 않을 수 없다. 혹시 엘리베이터 문이 닫히기 전에 '!' 하는 현관문 소리는 얼마나 자주 들었나. 당신은 그럴 때 어떤 느낌이 들던가. 아침이 즐겁지 않은 당신, 자연인은 왜 혼자 산에서 지내고 있는지 곰곰이 생각해 볼 때이다.




이경수 칼럼니스트 26ks@naver.com




편집부 기자
작성 2020.02.11 11:03 수정 2020.02.11 1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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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1-30 10:21:54 / 김종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