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9프로젝트] 백약의 으뜸, 만병의 근원

곽흥렬




바람 한 점 없는 한여름 날이다. 집 안에서 손도 까딱하지 않고 가만히 앉아만 있는데도 한증막에 갇힌 듯 숨이 턱턱 막힌다. 몸이 천근만근처럼 무거우니 마음마저 덩달아 처지는 느낌이다. 내처 실내에서만 어정거리다 어스름이 내릴 무렵에서야 기분전환이라도 할 겸 산책을 나선다. 현관문을 열고 바깥으로 나서는 순간, 후텁지근한 열기가 마당에서 훅 끼쳐 온다. 낮 동안 펄펄 달구어진 대지가 채 식지를 못했는가 보다.


모퉁이 하나를 돌아 갈림길이 나오는 지점에 이르렀을 때였다. 저쪽 멀리 오른편 길가 쪽으로 희끄무레한 물체 하나가 시야에 들어왔다. 며칠 전까지만 해도 없었던 물건이다. 그새 누가 갖다 놓았을까. 어떻게 보니 거적때기 같기도 하고 어떻게 보니 비닐 뭉치인 성싶기도 하다. 무얼까? 또 그 못 말리는 호기심이 발동을 한다. 물체 쪽으로 조촘조촘 발걸음을 옮긴다. 의심쩍은 것이 있으면 기어이 확인을 해야만 직성이 풀리는 고약한 성미 탓이다. 가까이 다가가는 순간, 역한 술 냄새가 확 풍겨왔다.  

 

물체의 정체는, 다름 아닌 웬 낯선 중년 남자였다. 후줄근한 바지에다 빛바랜 점프 차림의 입성이 그간의 이력을 말해준다. 대체 얼마나 들이부었기에 완전히 인사불성이 되었을까. 인기척에도 죽은 듯이 전혀 반응이 없다. 주위에는 게워낸 음식물이 널브러져 있고 아랫도리로 실례를 한 흔적까지 역력하다. 부끄러움 같은 건 아예 개한테 던져줘 버렸다. 사람이 사람으로서의 존엄성을 팽개친 채 하나의 쓰레기 덩이가 되어 있다.

모임자리에 가면 흔히들 남자가 한잔씩은 해야 사나이답다며 술 마시기를 반강제적으로 권유 받곤 한다. 이럴 때 나는 누룩 냄새만 맡아도 벌써 얼굴이 빨개지는 체질 탓에 좀생이 취급당하기 일쑤다. 사내자식이 되어서 술 한 잔도 못 마시느냐며 핀잔을 듣다 보면 자존감에 상처를 입는다. 이러한 상황이 내겐 적잖은 스트레스였다. 한편으론 술 잘 먹는 것이 뭐 그리 대수인가 싶은 언짢은 마음도 없지 않았다.

중국 속담에, 술은 백약의 으뜸이자 만병의 근원이라는 말이 있다. 술을 두고 한 명언 가운데 이만큼 정곡을 찌르는 표현이 또 있을까 싶다. 무릇 세상만물이 하나같이 양과 음, 긍정과 부정의 양면성을 지녔을 터이지만, 술만큼 평가가 극과 극으로 엇갈리는 경우도 흔치는 않으리라. 술이야말로 양날의 칼 같은 존재이다. 적당량만 취한다면 모든 약의 으뜸이기도 하면서 도가 지나치면 만병의 근원이 되어버린다. 술은 신이 인간에게 내린 최대의 선물이라고들 하지만, 동시에 세상 대부분의 사건사고는 또한 이 술 때문에 일어난다고 해도 그다지 지나친 표현은 아닐 것이다.


중국사람 진수가 편찬한삼국지의 위지魏志 동이전東夷傳에는 우리 민족의 특성을 두고 속희가무음주俗嬉歌舞飮酒라고 표현한 구절이 나온다. 풍속에 술 마시고 노래 부르면서 춤추기를 즐겨한다는 뜻이 아닌가. 진수의 지적처럼 우리는 예부터 술과 노래와 춤을 무척이나 좋아한 민족인 것 같다. 모였다 하면 술을 마시고, 술만 마셨다 하면 노래를 부르며, 거기다 자연스럽게 춤까지 곁들인다.


이런 까닭으로 하여 우리나라는 술에 관해서 무척이나 관대한 정서를 갖게 되었는지 모르겠다. 술을 마시고 운전을 해도 다른 나라들에 비하여 처벌 수위가 현저히 낮다. 이슬람 국가인 이란에서는 음주를 했을 때 적발되면 보통 태형이 내려지고, 세 번 이상 어겼을 시에는 최대 사형까지 언도한다고 한다. 특히, 음주운전의 경우는 무관용 원칙을 적용해서 처벌할 만큼 술에 대해 매우 엄격한 것으로 이름이 높다.


이란보다 더 시퍼런 나라들도 있다. 불가리아의 경우 초범은 훈방을 하지만 재범자는 교수형에 처하는가 하면, 심지어 엘살바도르 같은 나라에서는 단번에 바로 총살형을 시킨다는 것이다. 우리도 얼마 전부터 윤창호법이라는 음주운전 관련 규정이 만들어져서 시행되고는 있지만, 제대로 자리가 잡히기까지는 아직도 갈 길이 멀었다 싶다.


술을 바라보는 시각은 동서양이 극명하게 다르다. 동양에서는 술이 낭만과 풍류의 상징이었다면 서양에서의 술은 해방과 일탈로 치부된다. 그래서일까, 우리나라나 중국 같은 동양권은 술을 긍정적으로 노래한 시가들이 많다. 일테면 주선酒仙이라 불리는 이태백은 술 한 말에 시를 백 편이나 썼다는 이야기가 있는가 하면, 조선의 명재상이었던 김육 같은 분은 자네 집에 술 익거든 부디 날 부르시오. 내 집에 꽃 피거든 나도 자네 청해옴세. 백년 덧 시름 잊을 일을 의논코자 하노라.”라고 읊었다. 그에 반해, 서양 속담에는 악마가 바쁠 때 대리인으로 술을 보낸다.”거나 술이 들어가면 지혜는 빠져나간다.”라는 말이 있다. 이로 미루어 보면 동양에 비하여 서양은 술에 대한 평가가 아주 박한 성싶다.


술이라는 것이 본시 그렇다. 한 잔이 두 잔이 되고, 두 잔이 석 잔이 되는 게 이 술이라는 요물이다. 그래서 일찍이 법화경法華經 같은 경전에서도 술을 두고, 처음에는 사람이 술을 마시고 다음에는 술이 술을 마시며 마침내는 술이 사람을 마신다고 경계하였는가 보다. 술을 먹으면 무엇보다 말이 많아진다. 말이 많으면 쓸 말이 적다는 이야기처럼, 말이 많아서 좋을 것은 아무것도 없지 않은가. 말을 많이 하다 보면 자연히 실수를 하게 마련이다. 평소 얌전하여 색시 같다는 소리를 듣는 사람 가운데 술만 들어갔다 하면 성정이 백발십도로 돌변해 버리는 이들도 심심찮게 본다. 이것이 술이 지닌 위력이라고나 할까.


세상 모든 경우가 다 그러하듯 넘치면 모자람만 못한 법, 술 역시 적당량을 취한다는 것이 그 무엇보다 중요하리라. 이 적당량이라는 기준이 참으로 어렵고 모호한 일일 터이지만.


나같이 술 못 먹는 사람도 좀생이 소리 듣지 않고 제대로 대접 받는 나라, 그런 열린 세상을 꿈꾼다.

 

 

 

 


편집부 기자
작성 2020.02.12 10:10 수정 2020.02.12 1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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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1-30 10:21:54 / 김종현기자